춘천 가는 길 (최종회)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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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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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는 길 (최종회)
2021-10-14 오전 11:42 조회 529추천 5   프린트스크랩

강촌역 다음은 김유정 역이다.
 애초에 아내와 나는 김유정 역에 가보려고 했었다.
글의 제목도 [김유정 역 가는 길]로 정했다.
춘천에 수없이 다니면서도 김유정 역은 그냥 지나치기만 했었다.

 예비지식을 위하여 도서관에서 김유정 전집 두 권도 빌려다 보았다.
김유정님의 소설도 재미있었지만 그의 일생이 소설보다도 더욱 흥미로웠다.
할아버지 때에는 몇 만석의 거부였는데 아버지 대에 와서 그것이 몇 천석으로 줄어들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은 방탕한 생활로 그 재산마저 탕진시켰다.
 재산을 나누기 위하여 형을 찾아갔지만 형은 화로를 뒤집어엎으면서까지 횡포를 부리고 결국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았다.
아무리 가부장적인 시대이지만 형의 처사가 내 가슴에 분노를 불을 지폈다.
 책을 읽으며 욕설을 한바탕 해댔다.
 착한 동생은 그대로 물러나와 버렸으니.
가난한 작가님은 치질과 폐병까지 얻어 고생을 한다.
그 외에도 박녹주란 명창에게 마음을 빼앗겨 요즈음 말로 스토커처럼 매달렸지만 결국 사랑을 얻지 못한다.
박녹주가 돌아가신 어머님처럼 생각되었기에 그렇게도 매달렸던 것일까?
애절함의 백미는 29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친구에게 쓴 편지 [필승 전]이다.
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돈 백 원이 필요하다며 번역 일을 부탁한다는 요지의 편지였다.


동백꽃이나 봄 봄처럼 유명한 작품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짤막한 소설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 잘 차려입은 아가씨가 극장에서 나와 골목길로 접어든다.
그 길 한 가운데에 눈길을 끄는 작은 상자가 놓여있다.
아가씨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 상자를 집어 든다.
그 상자는 화려한 포장지로 겹겹이 싸여있다.
포장지를 한 겹씩 벗겨내고 드디어 뚜껑을 연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똥 덩어리였다.
당황한 아가씨와 왁자하니 웃음을 터뜨리면서 청년들 서 너 명이 골목에서 나오고 소설은 마무리된다.]


김유정 역에서 나와 우선 닭갈비로 배를 채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으니까.
그 다음에는 김유정 문학관을 찾았다.
생강나무가 곳곳에 심어져서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문학관을 들러본 다음에는 실레마을을 거닐었다.
저 앞에는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금병 산이 듬직하게 누워있고, 길옆에서는 맑은 도랑물이 파랗게 돋아난 풀숲사이로 졸졸졸 흘러내렸다.
마을에는 기념관 외에도 작가와 관련된 많은 건축물들이 보였고 특히 마음을 푸근하게 한 것은 후배작가들이 걸어 논 플래카드이었다.
거기에는 고 작가에 대한 사랑이 넘쳐흐르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문학관에서의 울컥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느낌을 가졌다.
아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여 최대한 짧게 한 바퀴 돌아보고는 다시 역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서 여행기를 쓰기위하여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쓸 수가 없었다.
 떠나기 전에는 그렇게도 자신이 있었는데.
나의 잡문이 고 작가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컴퓨터를 껐다.
혹시나 갑자기 다시 쓰고자 하는 만용이 생길지 몰라서 포스트잇을 컴퓨터에 붙여 놨다.
거기에는 ‘가벼이 쓰지 말자’는 문구를 새겨놓았다.


두 달 후인 5월에 친구들과 함께 다시 김유정 역을 찾았다.
원래의 목적지는 가평이었다.
친구 한 명이 산나물이 나는 계곡을 잘 안다고 하여서 산나물을 채취하고자 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하여 그 계곡까지 운행하던 버스노선이 폐지가 되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친구들에게 내가 김유정 역을 추천했다.


김유정 역에 내렸을 때에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꼭 여름 장마 같았다.
 30분가량을 꼼짝없이 역에서 머물다가 비가 잦아들었을 무렵에야 역에서 나왔다.
 만약 나물을 채취하러 산에 갔었다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하였다.


역시 먼저 닭갈비 식당을 방문하여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면서, 친구들과 날씨 이야기며 주변의 풍경이 볼만하다는 등 여행의 즐거움을 느긋하게 즐겼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기념관을 비롯하여 동네의 여러 곳을 산책하였다.
 친구 중에는 국어교사 출신이 있어서 김유정 작가의 여러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비록 황사로 인하여 희뿌연 날씨였지만 그래도 시골이라 그런지 공기가 상쾌하였다.
저녁까지 그 곳에서 먹은 다음에 서울로 향했다.


아내와 딸과 함께 김유정 역을 지나가는 지금은 8월이다.
우리는 남춘천역에서 내렸다.
역 앞에는 나의 단골 닭갈비집이 있다.
이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동동주이다.
 젊었을 때 아내가 친척 아가씨를 작은 회사에 취직시켜준 일이 있다.
그 답례로 아가씨가 집에서 담근 동동주를 두 병 가득 가져왔다.
지금까지 마셔본 술중에서 그 것이 가장 맛있는 술로 기억된다.
 이 단골집의 동동주는 비록 그 술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진짜 동동주이다.
서울의 식당 중에는 어느 지방의 막걸리를 동동주라고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이를테면 유사 동동주인 셈이다.
나는 단골집의 동동주를 한 모금씩 홀짝거리면서 진짜 동동주와 유사 동동주의 차이가 무엇인지 음미해보았다.
그 차이는 아마도 막힌 것과 통하는 것의 차이일거라고 결론을 지었다.
유사 동동주는 한 모금 마셨을 때 어딘가 막힌 것 같은 기분인데 진짜 동동주는 한 모금 입에 들어온 순간에 나와 나 외의 우주를 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인간이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했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동동주의 효모가 그 인연의 끈을 이어주는 것은 아닌지.


식당에서는 젊은 청년이 혼자 서빙하고 있었다.
예전에 보이던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손님들은 그 청년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 삼촌은 손님들에게 아주 부드럽고 상냥하며 친절하게 대했다.
 후식 커피까지도 타다가 주었다.
나는 감탄했다. “종업원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친절할 수가 있을까?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구나!”
식사를 다 마친 후에 나는 그 삼촌을 불렀다.
그리고 덕담을 한 마디 건넸다.
 “프로는 아름답다는데 삼촌은 프로 +알파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청년은 그 식당주인의 아들이었다.
코로나로 식당 운영이 어려워지자 아들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부모님을 돕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점심을 마친 우리들은 공지천변을 거닐었다.
공지천이 북한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걸어간 후 길가에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편의점의 의자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춘천을 빙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보이고 천변 너머에는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관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춘천은 감투의 고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에는 춘주성의 전 병사와 성민들이 옥쇄하면서까지 몽골군과 싸웠고, 6.25때에는 서울이 순식간에 점령당한 반면 춘천은 상당기간 동안 방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냉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불어오는 강바람이 상당히 시원하게 느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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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령제 |  2021-10-14 오후 12:58: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막힌 것과 통하는 것의 차이, 프로 +알파 즐감했습니다.  
자포카 |  2021-10-14 오후 10:57: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세련되지 않지만 투박한 진짜 글 잘 읽었습니다.
 
삼소조직 |  2021-11-26 오후 5:59: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편안하세 술술 읽히는 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글이 무척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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