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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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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는 길 3
2021-10-11 오전 10:43 조회 235추천 6   프린트스크랩

가평에서 사고가 있었다.
가평의 어느 산길에서 국군장병 여러 분이 트럭 전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그 중에는 육군 하사였던 우리 아버님도 끼어있었다.
아버님은 그 때 운전을 하지 않고 대신 부하가 운전을 하였다고 전해 들었다.
그 사고의 여파가 어린 나에게는 한 때 모든 슬픔의 원천 이었다.


넷째 작은 아버지는 역전의 용사셨다.
 6.25전에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신 후 수원 비행장에서 맥아더 장군을 호위하였고, 국군의 북진 시에는 금강산을 거쳐서 청진까지도 가 봤다고 하셨다.
그 작은 아버지가 우리 아버님이 근무하던 부대에 면회를 가봤다고 하셨다.
그 때 작은아버지의 계급은 아버지보다 한 계급 높은 중사셨다.
 부대원들에게 우리 형님을 잘 부탁한다고 절절히 당부를 하셨다.
그런데 그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으니.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작은 아버님 내외가 서울에 올라오시면 우리들이 승용차로 모시고 포천의 이동갈비와 막걸리를 대접해 드린 것이 보은 이라면 보은이랄 수 있겠다.


아버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와 함께 면회 가던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네 살 무렵이었다.
 밤에 덜커덩거리며 기차는 철교를 건너고, 강물에 비치던 일렁이던 불빛들. 포장마차 선반에 쌓여있는 호떡을 사달라고 조르던 기억.


어머니가 면회 갔을 때 아버님은 벌을 받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알몸으로 연 못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는 기합.
운전병이었든 아버님이 트럭에 있는 휘발유를 파이프로 빨아 빼돌리다가 들킨 것이었다.


아버님의 형제분들에 관하여 간단하게 한번 정리하고 싶어진다.
첫째 큰 아버님은 청년 때 공사장에 가서 일을 하셨다.
그 때에는 일을 한 후에 돈을 주는 것이 아니고 밀가루를 한 포대씩 주었다고 하였다.
 일을 마친 큰 아버님은 밀가루를 들고 오다가 소변이 마려워서 제방 위에 포대를 놓아둔 채로 제방 밑에 가서 일을 보았다.
그런데 일을 본 후에 올라와보니 아뿔싸! 밀가루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냥 집에 가면 몹시 혼날 것이 두려운 큰 아버님은 그날로 가출을 하셨다.
 지금의 세종 시 부근에서 살던 큰 아버님은 부산으로 내려가 영도에 터를 잡으셨다.
둘째 큰 아버님은 일제 때 징용을 나가셨다가 해방이 되어 무사히 고향에 돌아오셨다.
농사를 지으시면서 거름을 마련하기 위하여 망태기에 매일 개똥을 주워 담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무척 부지런하고 인자하셨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키가 컸던 우리 아버지는 셋째.
넷째는 아까 말씀드렸고, 막내 삼촌은 군데에 간 후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한 동안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한 참의 세월이 지나간 후에 삼촌은 나타나셨다.
그리고 또 한 참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본인 입으로 실토하셨다.
북파공작원 이었다고.


아버님은 청년 때 불가에 관심이 있으셨다.
불경을 배우려고 스님을 집에 모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스님이 홀로되신 할머니를 넘봤던 모양이었다.
 소식을 들은 아버님은 지게 작대기를 들어 스님을 때려서 내 쫒았다고 하였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늘 그 점을 아쉬워하셨다.
그때 스님을 때려서 내 쫒은 벌을 나중에 받으셨다는 것이었다.
 만약 아버님이 그 때 너그러이 불심을 베풀어서 그 스님을 용서해주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님이 스님이 되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가평을 지난 기차는 굴봉산, 백양리로 내 달렸다.


강촌역을 지날 때면 차창 밖에 내다보이는 삼악산의 고고한 자태가 일품이다.
차에서 내려서 경치를 감상하고 다음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늘 생길지경이다.


강촌에는 문배마을이 있다.
예전에 직장동료들과 함께 찾아간 적이 있다.
강촌역이 강 옆에 있을 때 일이다.
우리들은 저마다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출발하였다.
자전거 길이 잘 가꿔져 있어서 별로 힘든 줄을 몰랐다.
자전거를 주차장에 맡겨놓고는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심산유곡이었다.
 계곡을 따라가던 길이 왼쪽으로 꺾어지고 약간 오르막이 되면서 눈앞에 폭포가 보였다.
등산가들이 겨울에 빙벽훈련을 하는 구곡폭포이다.
폭포를 구경하고는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야했다.
경사는 져 있지만 길은 넓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한 참을 올라가자 산 능선이 보였다.
그 능선을 넘자마자 주변의 경치가 순식간에 변하였다.
능선을 넘기 전에는 주변에 깊은 계곡이 내려다 보였었다.
그런데 능선을 넘어서서 조금 더 내려간 순간 우리는 밭고랑 길에 들어서 있고, 저 앞에는 논이 보이면서 주변에는 온통 야트막한 야산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심산유곡은 어디로 간 것인가?
너무도 신기한 변화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변화를 전에도 겪은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무사 백동수가 수련했다는 진동계곡에서 조침령 터널을 넘어섰을 때였다.
 터널을 넘기 전에는 주변이 온통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그런데 터널을 넘어선 순간 깊은 계곡이 눈앞에 보이고 저 멀리에는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변화는 대관령에서도 경험했다.
강릉에서 굽이굽이 산을 올라 깊은 계곡과 높은 산들을 보다가 대관령 터널을 지나 용평에 접어든 순간 주변의 풍경이 야트막한 야산으로 변하는 모습을.
요컨대 문배마을은 고원지대인 것이다.


문배마을엔 도토리묵과 닭백숙과 동동주를 파는 가게가 몇 군데 있다.
그 곳의 동동주는 한 번 마셔보면 무척 심심하다.
이거 마셔서 취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홀짝 홀짝 마시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대취하게 된다.
 그 날 우리 동료들은 비탈길을 내려갈 때부터 고꾸라지기 시작하여 강촌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다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지경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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