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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 강화도 7 )
2017-06-03 오후 12:13 조회 2800추천 3   프린트스크랩


전라도 일대를 휘젓고 다니던 자랄타이의 본군은 다시 강화도를 공격하기위하여 북상하였고 충주지역에서 활개 치던 선봉부대도 이에 합류하기위하여 강화도로 향했다.


갑곶 강 너머에 까마득하게 모인 몽골군을 보면서 고려군은 결사항전을 각오하고 수비대책을 강구하였다.
몽골군은 각종 공격 장비를 전진시키면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 해가 뜨자 힘든 하루를 예상하며 갑곶 강으로 향하던 고려 군사들은 두 눈을 의심하였다.
그 많던 몽골군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김수강은 카라코룸에서 몽케칸과 마주 앉아 있었다.
몽케가 고려의 출륙환도와 국왕의 입조 지연을 힐책하였다.
김수강이 반박하였다.
“예컨대 사냥꾼이 짐승을 좇아 동굴로 들어간 것과 같으니, 활과 화살을 가지고 그 앞에 버티고 있으면, 곤경에 빠진 짐승이 어디로부터 나올 수 있겠습니까? 또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독한 추위에 온 땅이 얼어붙으면 풀과 나무가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대 칸이 들어보니 모두 맞는 말이었다.
의연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김수강을 보자 불현듯 대 칸의 머릿속에 강순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 혹시 그대는 강 순기를 아는가?”
“예,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몽케칸은 사신을 보내 자랄타이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명령했다.


1257년 고려는 해마다 몽골에 파견하던 신년 하례 사절단인 하정사를 파견하지 않고 세공을 중지하였다.
몽골군은 이를 구실로 고려에 다시 침입하였다.
 이 때 고려는 최항이 죽고 그 아들 최의가 새로 집정이 된 시기였다.
몽골군은 동북 계와 서북 계를 휩쓸고 다녔다.
이에 고려조정에서는 또 다시 김수강을 사신으로 보내 출륙과 친조를 약속하였고 몽골군은 선철군 후입조의 설득에 따라 고려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최의를 살해하고 정권을 쥔 김준이 몽골에 대한 무력항쟁을 선포하자 다시금 몽골의 침략이 있었다.
몽골군은 충청도 이북지역을 휩쓸고 다니며 곳곳을 초토화시켰다.
고려에서는 강화를 서둘렀다.
끈질긴 고려의 저항에 지친 몽골도 한결 완화된 조건인 태자의 입조만으로 강화하기로 협약하였다.
협약에 따라 몽골군이 철수함으로써 몽골의 고려침략은 드디어 끝을 맺게 되었다.


몽케칸을 알현하기위해 카라코룸으로 향하던 고려의 태자 왕전 일행은 몽케칸이 남송정벌을 위하여 남쪽으로 향했단 소식에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 동안에 고려의 고종이 승하하고 다시 한 달 후에는 몽케가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태자 왕전은 당황하였지만 군권을 쥔 쿠빌라이에게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쿠빌라이에게로 향했다.
왕전일행을 맞은 쿠빌라이는 감격하였다.
당태종도 정복하지 못했던 나라의 태자가 자기를 찾아왔으니 이는 천운이라고 생각하였다.
쿠빌라이는 이 때 동생 아리크부카와 대 칸 자리를 다투고 있는 상태였다.
태자 왕전은 쿠빌라이와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귀국하여 고려의 제 24대 왕위(원종)를 계승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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