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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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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 강화도 8 )
2017-06-04 오후 12:25 조회 2798추천 3   프린트스크랩


고려에서는 임연이 김준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다가 임연이 병사하고, 그 아들 임유무가 지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임유무가 원종의 계책에 따라 암살되자 고려의 무인정권은 종식을 고하게 되었다.


무신정권이 종말을 고하자 고려 조정은 문신들의 세상이 되었다.
문신들 중에는 다시는 무신정권이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신들의 뿌리를 제거하기위하여 홍다구와 결탁하여 고려의 군권을 몽골에 넘기려고 획책하였다.
고려의 군권이 몽골에 넘어가면 고려의 장정들이 원나라의 군인이 되어 남송과의 전쟁에서 화살받이가 되는 것이었다.


삼별초는 이 사태를 막기 위하여 김방경 장군과의 회담을 마련하였다.
강화도 왕궁 근처의 객잔에서 김방경장군과 배중손 장군이 협의하여 고려의 군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비밀 회담이기 때문에 호위는 이원배와 강순기 둘만이 맡기로 하였다.
이 정보를 획득한 문신일행은 자객 단을 조직하였다.
30명의 인원을 배정하였다.
자객 단 대장 이철규가 불만을 표시하였다.
 “강순기란 놈이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인원을 20명쯤 더 늘려야 되겠습니다.”
문신일행이 맞받았다.
 “그놈 칼만 요상한 것을 차고 멋 부리고 다니는데 이원배의 뒷배로 신의군에 들어 간 놈이 무슨 실력이 있겠어? 걱정 말게.”
이철규는 무언가 꺼림직함이 가슴에 남았지만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고 물러났다.


객잔에서 의견이 오고갔다.
“김 장군 어떤 일이 있어도 고려의 군권은 유지되어야합니다.”
 “예, 당연하지요. 그런데 문신들과 원 나라 다루가치들의 요구가 너무 드셉니다. 어떻게 그들의 요구를 무마해야할지 걱정입니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자객들이 들이닥쳤다.
앉아있던 두 장군이 일어날 틈도 없고 이원배도 아직 칼을 빼들지 못한 상태였다.
자객 서 너 명이 두 장군에게 칼을 휘두르려고 하였다.
순기의 칼이 칼집에서 빠지는 동시에 두 놈의 허리를 갈랐다.
순식간에 뺄 수 있는 것이 반월도의 특징이었다.
 순기의 칼은 그대로 흘러 또 한 자객의 목을 쳤다.
두 장군이 일어섰고 이원배도 칼을 빼들었다.
 좁은 방안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몇 년 전 부하라의 시장에서 순기가 당했듯이 자객들이 속수무책으로 순기의 칼날에 쓰러져갔다.
 삽시간에 자객들의 숫자가 이십 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아직도 수적으로는 자객들이 우세하였다.
 자객들은 계속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쓰러지는 것은 자객들뿐이었다.
자객들 숫자가 다섯으로 줄어들자 눈치를 보던 이철규가 밖으로 도망쳤다.
나머지 네 명의 자객도 칼을 버리고 그대로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김 장군 우리가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 볼 테니까 장군은 꼭 고려의 군권을 유지해주시오. 장군만 믿겠소이다.”
 배중손은 김방경을 호위하여 육지로 보냈다.


며칠 후 배중손 장군이 승화후 왕온을 추대하여 새로운 왕권을 선포하였다.
순기는 어쩔 수 없는 추세라고 생각하였다.
삼별초가 희생되어 고려의 군권이 유지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었다.
삼별초가 몽골에 대항하여 싸우는 동안에 고려의 군사력은 점점 강해질 것이 분명하였다.
이제 더 이상 고려의 소년들은 몽골에 잡혀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쑥쑥 자라주면 그대로 고려의 군사력이 될 것이 아닌가?


삼별초군이 완전히 희생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남송이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삼별초와 남송과 일본이 연대하면 승리의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1270년 6월 3일 삼별초군의 새로운 항쟁지 진도로 향하는 천 여척의 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강화도를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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