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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법문 끝내기에서 포석까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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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2016-12-09 오전 9:17 조회 3870추천 2   프린트스크랩








근대사에서 현대사까지 상세한 고찰을 한 시리이즈로
강준만 교수의 28권 저술이 기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대사의 제 1권이 대출 중이라서
주변의 다른 책들을 틈틈스럽게 보고 있다.
백범일지도 그런 맥락에서 보게 된 것인데
주변을 둘러보니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고종 편이 마침 대원군의 치세에서 시작하고 있어서
안성의 맞춤이었다.



대원군이 집권한 것은 63년의 지금 쯤이었다.
그러니까 대략 만으로 153년 전 쯤이다.
쇄국정책이라는 말로 통칭되기엔 이미 서구열강의 활약이 알려진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신정변의 주역들에게 멘토가 되었다는 박규수라는 사람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가가 되는데
아마도 박지원 시절부터 이미 서구의 부강함이 알려진 것 같다.
그 박규수의 사랑방이 젊은 개화파의 산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원군의 치세기간은 그보다 조금 앞선다.

호포제실시, 서원의 점진적 철폐, 김씨 세도정치의 약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걸친 척화론 등을 거치다가
76년에 강화조약으로 강제개항을 당했는데
이때엔 대원군이 10년의 치세를 마치고 고종이 친정하던 시기라고 한다.
고종과 나이가 비슷하던 민비가 전략적 아이디어를 고종에게 많이 제시했다고 하며
고종의 사랑을 받던 이 상궁과 그 자제가 함께 죽은 것으로 보아
민비의 투기가 의심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체로 대원군의 개혁정치로 민생은 상당히 소생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개항을 하기엔 준비가 너무 부족했지만
점차적 개항을 시작했어야 하는 시기인 듯하다.
프랑스나 미국의 경우 지역이 멀기 때문에
중국을 대하듯이 강하게 점령하려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랬다면 신흥강국이면서 이웃인 일본에 의한 과도한 폐해가 적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말하자면 민생을 살리고, 서구와의 친교 등이 좋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경복궁 재건이다.

지금의 시기에서 생각해보면
경복궁을 재건하더라도 급하게 서둘 일은 아니었다.
당시 이 하응 집권기에 경복궁이 완성된 것을 보면
그보다 시간을 길게 해서 다른 일들과 보조를 맞추어나가면서
민생개혁이나 서원철폐, 개항 등을 병행했다면 전체적 조화를 이루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또 하나 천주교박해라는 문제가 있는데
이건 좀 대원군 입장에선 처치곤란한 사태이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수교요청의 이면에 포교를 강제하는 종교제국주의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척화의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천주학으로 국민정신이 혼란될까 두려운 심리가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프랑스와의 수교는 위험성이 있는 셈이었고
일본은 정한론의 입장이 이미 깔려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미국과의 수교를 우선시하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민비와 고종이 애비를 몰아내는 심리는 인지상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성년이되면 자연히 자신의 사람값을 하고 싶을 것이고
아내의 입장에서도 그런 심리를 함께 하는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 나았을테니
대원군과 고종부부 사이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세대 간의 갈등으로도 이해가 된다.



백범일지는 하권으로 들어갔더니 주로 상해에서의 임정기간을 다루고 있다.
책의 표현대로 하면 벤또폭탄의 주인공인 이 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와 의기투합하는 장면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으로 레닌을 찾아가 독립군자금을 요청해서는
자신들이 착복하는 장면 등 다양한 사태가 상세하게 서술되고 있다.
아마도 비교적 안정적 입장에 있었다고 하는
미국의 운동가들의 입장에서 중국의 임정이 어떻게 보였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이따금 접한 자료들을 보면 미국운동가들의 입장에선 상해임정의 어지럽고 무질서함 때문에 애초에 별로 활약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말을 접한 적도 있었는데, 그 맥락이 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봉창이나 윤봉길 등의 활동으로 우리 나라의 입장에 크게 호응을 얻어서
당시 중국의 장개석 등과의 대면을 통한 지원도 가능했었던 것 같으니
무어라고 말하기 힘든 것 같다. 다만
이미 당시에, 즉 일제 기간에 미국 쪽 사람들은 democracy를 지원하고
중국 쪽에선 상대적으로 공산주의 세력이 강했는데
다만 김 구와 같은 이들은 그야말로 독자적 안목으로 사태를 볼 줄 알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만, 당시 중국 내의 독립운동가의 난맥상을 보려면 백범일지를 꼭 읽어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임오군란 무렵부터 이후의 여러 측면들이 정말 손에 잡힐 듯이 기술되어 있고
혈혈단신 의로운 마음 하나로 세상을 헤쳐가는 청장년 김구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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