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스키야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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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법문 끝내기에서 포석까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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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스키야
2016-09-05 오후 10:59 조회 3727추천 4   프린트스크랩








홍수환과 권투를 해서 4전 5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준
카라스키야가 한국을 온다고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당시 방송을 직접 보았다.
당시 그 시합엔 유독 3다운 ko패가 없어서
홍수환은 네 번 down될 수 있었고
당연히 진 것으로 여겨졌다가 홍수환의 불굴의 투지로 이겼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이기고
챔피언 먹었다는 말로 이미 유명해졌던 홍수환은
다시 무적의 카라스키야를 물리쳐서 기적의 사나이가 되었었는데
그 카라스키야가 파나마의 국회의원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찾는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다 hungry 정신으로 무장되었던 전후의 일들이다.
가난과 재건, 애국심 등으로 여념이 없던 시절에는 극적인 일들이 많았는데
황영조가 몬주익의 언덕을 치달리던 장면도 그 맥락일 것이다.
당시 너무나 애를 쓴 탓인지, 황영조는 그 후 곧 은퇴를 하고 말았고
이후 친구인 이 봉주의 느린 인내를 끝으로 한국의 마라톤은 매우 느려지고 말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조 훈현의 잉씨배 우승과 이후의 이창호 시대도 조금 달리 보이기도 한다.
조 9단이 비록 일본 유학파라고 하나
그 역시 역사의 와중에 있었고
그가 귀국 후 일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것도 한국 현대사의 일부이다.
그래서 조훈현이 한국의 유일한 왕좌에 올라 있었지만
조치훈의 명인 타이틀을 더 쳐주었던 것도 역사의 일부가 아니지 않다..
당시 조 훈현의 나이도 불과 서른에 미치지 못했으니
당시의 패배를 인생의 패배로 인식했을 가능성도 많았고
따라서 잉씨배에서 그 귀한 참가권을 사용해서 우승을 한 그로선
그간의 모든 일들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며
게다가 이 창호가 자라고 있었으니
조만 일본에 배우고 빚진 모든 일들에 대한 보답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 창호라는 괴동의 뜻밖의 약진으로 그의 모든 인생구상은 망가져 버렸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조 훈현 9단에 대한 이러저러한 설왕과 설래가 있을 수 있으나
그의 인생 자체도 참 쉽지 않은 roller coaster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우리는 누구나 미리 배운 채로 세상에 오는 것이 아니다.
와서 살며 배우며 사랑해가면서, 또한 그처럼 전도를 모르는 채로 고군분투해온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데
다들 그렇게 암중모색을 해나가고 있는 중임을 모르므로
다툼이 더욱 커지기도 한다..


이 세돌의 경우도 크게는,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10대 중반에 부친이 떠났다면, 그 나마 형제간의 우애가 의지처였을 것이고
섬소년의 기질은 당연히 스무 살까지 다듬어지지 않았을 것이니
본인에겐 자신이 당연했을 것이고,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문명의 훈습이 약한 괴팍한 소년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이후에 그가 바둑의 실력은 강해졌겠지만, 이미 바둑적으론 조이 사제의 그늘이 깊은 시절이었을 것이고,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국기원이나 기사회의 존재도, 문명보단 자연에 가까운 그에겐 공연한 짐으로 계속 작용했을 수도 있다..

누구나가 어쩔 수 없었음을 알면
조금씩 더 상황을 용인하고,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의 오류를 인정하기 쉽겠지만
대개는 그 단순한 이치를 알기 힘들어서, 과거에도 내가 옳았고
따라서 지금 내가 더 옳다고 말하는 경향이 많다.. 게다가 현실은 진행 중이므로
타이밍에 안맞게 사과를 하면 그것이 또 불편함을 가중할 염려도 있기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흔할 것이다.


그러고보면 boxer 홍 수환도,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4전 5기의 신화를 직접 목도할 수 있게 해주었고
챔피언을 먹으면 저 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국제전화로 뉴스에도 나온다는 별천지를 구경시켜주었으니, 가히 한 사람의 선구자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그 승리 하나로 대한국민은 만세를 불렀었는데
그러고보면
이번의 박인비라든가, 김연아, 박태환, 박세리 등이 그 맥을 쭉 이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만에 카라스키야와 홍수환의 일을 떠올리며 글을 써보니
희망의 빛이 새삼 솟는 듯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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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pan |  2016-09-05 오후 11:4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4전오기 그땐 열광했었죠....
그리고 그후에 한국복싱은 부흥하고 이젠....
다음엔 홍수환의 국회 나들이 엑션은 아닐런지.....  
육묘법문 홍수환의 나이가 곧 칠순이라는데
국회라니요?
왠 엉뚱한 망상을.. ^^
팔공선달 |  2016-09-06 오전 12:27: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때 진 카라스키야는 지금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이긴 홍수환은 그 이후 계속 지는 인생을 살고 있으니... 지금도 협회에서 잡음이 .
이창호의 의외의 조루성 몰락에도 존재감은 여전한데 여러 부분에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이세돌은 왠지 향이 없는 조화 같은 느낌은 무엇인지.  
육묘법문 향기가 풍부한 생화같은 이 세돌을
향이없는 조화처럼 느끼는 선달님은 왜 인지? ^^
팔공선달 글게요.^^
아마도 인위적인 듯한 향에 거부감이 있거나 개성만으론 뭔가 아쉬움이 코를 막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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