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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의 죽음(4)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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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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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의 죽음(4)
2016-08-10 오후 1:19 조회 1733추천 4   프린트스크랩

4. 인도차이나

고향집에서 얼마간 쉬고 난 루이는 대위로 승진하면서 인도차이나로 전속을 명받았다.
푸른 지중해의 물결을 헤쳐가면서 루이는 가슴이 설레었다.
 마르코폴로의 여행기에서 읽었던 동방으로 가게된 것이었다.


인도차이나에서의 생활이 평화로울 것 같지만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중에도 군사적으로 는 일본군이 점령했지만 내정은 프랑스의 비시정권에 의하여 식민지로 통치되던 인도차이나는 비시정권이 끝난 1945년 3월 베트남제국, 캄보디아왕국, 라오스왕국으로 나누어 독립을 선포하였다.

이어서 베트남에서는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자 호치민이 주도하는 배트민이 봉기하여 베트남제국의 황제 바오다이를 퇴위시키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연합국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하여 북위16도선 이북은 중국의 국민당군, 이남은 영국군이 맡아서 프랑스군이 당도하기까지의 치안을 담당하고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실시하였다.
이때 일부 일본군들이 무기를 베트민에게 넘겨주고 이들의 훈련까지도 도와주었다.


루이는 사이공에 진주하게 되었다.
날씨가 몹시 더웠지만 나무그늘 밑은 그런대로 시원하였다.
처음 보는 열대의 경치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다.
 베트남인들은 체격이 작고 말랐지만 강건하고 다부지게 보였다.
외곽지대는 베트민 게릴라들의 준동으로 삼엄한 경계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였지만 치안이 유지되는 시내 일부는 걸어 다녀도 되었다.
에펠이 설계했다는 건물과 노트르담 성당을 구경하였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본 성당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았지만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베트남에 파견된 프랑스 병력은 육군은 선발대 2개 사단을 비롯하여 제3기계화사단과 제9식민지 사단, 해군은 전함 (리슐리에) 경순양함 (글로와르) 대형구축함 (르 트리옹판) 항공모함 (베어른), 공군은 수송기와 전투기를 중심으로 약 100기 이었다.


1946년 2월 28일과 3월 6일 프랑스와 베트민 간에 프랑스연합 인도차이나 연방의 일개 국으로서의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독립과 통킹지방의 프랑스군 진주를 인정하는 협약이 체결되어 당분간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남부의 농장 경영권자들의 이권을 우선시한 프랑스는 1946년 3월 26일에 베트남 남부에 괴리국인 코친차이나 공화국을 성립시켰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퐁텐블로에서 진행되던 호치민과 프랑스 임시정부와의 회담이 9월에 결렬되고 말았다.
드골이 사임한 후에 구성된 프랑스의 임시정부는 여 야를 막론하고 프랑스 식민지문제에 대하여 양보하는 정당이 없었다.


1946년 11월 20일 밀수선 단속으로 유발된 총격사건이 구실이 되어 11월 23일에 프랑스 해군이 함포사격을 가함으로써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막이 올랐다.


루이는 급히 하이퐁으로 전출되었다.
 사이공에서 구축함에 올라 하이퐁으로 향했다.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빨리 내려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해야했다.


우세한 화력을 바탕으로 쾌속 진격한 프랑스군은 하노이를 비롯하여 후에와 다낭을 손에 넣었다.
 베트민군은 농촌과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저항을 계속하였다.
베트민군은 도시 주변에도 많은 땅굴을 파서 요새화 하였다.


루이는 베트민군의 매복에 걸려 총상을 입은 병사들과, 지뢰 및 함정에 빠져 부상당한 병사들은 물론이고 말라리아에 걸린 병사들도 치료하였다.
부상당하여 괴로워하는 병사들을 보면서 루이는 과연 프랑스의 식민지배가 올바른 일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하였다.
평화협정이 유지되는 동안 온순하게 보였던 주민들의 표정이 전쟁이 계속되면서 싸늘하게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도 루이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전세는 프랑스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끊임없는 게릴라들의 준동으로 교두보는 좁아지고 공산화된 중국으로부터 베트민 군에게 무기가 공급되어 베트민군의 화력이 점점 강해져갔다.
이 난관을 타개하고자 프랑스는 북쪽 접경지역인 란손을 공격하기로 했다.
기계화 부대와 더불어 낙하산 부대를 투입하여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


낙하산 부대의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이들의 치료가 문제가 되었다.
진지에서 강하지점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의무진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부상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전장에 버려졌다.
소식을 들은 루이는 중대결심을 하였다.
자기가 직접 낙하산 강하훈련을 받은 후 공수부대와 함께 적진에 투입되기로 한 것이었다.


공수훈련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내었다.
훈련을 마친 루이는 제 2공수여단의 병사들과 함께 적진에 투입되었다.
 교두보에 의료막사를 치고 부상당한 병사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냥두면 죽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루이는 공수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이들을 치료할 수 있게 해준 하느님에게 감사하였다.
부상당한 병사들은 루이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처럼 여기고 고마워하였다.


공수작전을 마치고 교대를 위하여 귀대하던 병사들에게 사건이 발생하였다.
농촌에 숨어있던 게릴라들이 이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세 명이 죽고 다섯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공수부대원들이 반격을 가하자 게릴라들은 농촌마을로 숨어들었다.
 마을을 포위한 프랑스군이 게릴라들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양민들은 손을 들고 나오라고 권했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포병대에 연락하여 마을을 포격해달라고 요구하였다.
포격이 이루어지고 게릴라를 포함하여 마을 주민들은 모두 몰살을 당하였다.


작전이 모두 끝나고 루이는 귀대하였다.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밀림을 뚫고 행군을 하였다.
길도 없는 밀림에서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가시덤불에 찔리기도 하면서 전진을 계속하였다.
갈증이 심하면 야자열매를 따서 마시었다.
밍밍한 것이 시원하지는 않았으나 갈증은 해소되었다.
 파괴된 마을을 지나쳤다.
시신들에 파리가 엉겨 붙어 참혹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루이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루이에게 레종도뇌르 훈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인도차이나 파견 병력의 교대 계획에 따라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르세이유 항구가 가까워지면서 프랑스 땅이 보이자 루이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배 뒤쪽으로 가서 실컷 울었다.
 팔 다리를 절단당하여 울부짖는 병사들의 모습과 증오에 찬 주민들의 표정, 포격으로 파괴된 참혹한 마을의 풍경이 루이의 눈앞에서 맴돌았다.

계속

┃꼬릿글 쓰기
육묘법문 |  2016-08-10 오후 2:33: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도지나까지 왔다 가는군요..
나중에 책이 나오면 각주와 지도도 제공해주시기 바랍니다.
 
짜베 거의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찾아썼습니다. 아이고 책을 내는건 그저 상상만하고 있습니다. 저는 완전초보라서요.
youngpan |  2016-08-10 오후 11:21: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전쟁은 참혹하죠..  
짜베 프랑스가 욕심을 안 부렸으면 지금쯤 인도차이나에서 어는정도는 대접을 받지 않을까요?
youngpan 욕심과 조절이 국가의 과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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