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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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들판에서 만나 골목길을 부비며 지내다 골목길에서 헤어지는 건 아닐까요.?
모처럼 이청선생의 다른 헤어스타일을 본 듯 합니다. ^^
youngpan |
모를 인연의 줄로 다시 만나기도 하고스리..
달님이 타이젬의 작품을 읽어본다면 다른 자락을 볼수 있을겁니다..
이청님 소개 좀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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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靑 |
코사노스트라를 말씀 하시나보네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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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한잔 하세요.. ^^
李靑 |
딸기 참위 포도를 좋아하고 사과 복숭아등은 싫더라고요. 식성이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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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KB리그가 몹시 기다려 지는데... 뭔 문제가 있는 건가요?
하긴 일반 바둑팬들은 알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겠지요.
youngpan |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알흠다운 꽃도 피기까지 얼어죽지 않고 DNA/RNA가 변질되지 않고 기다림이 성사
될때 피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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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靑 |
그런건 아니고요. 운영방법이 조금 더 발전하자는 의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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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만에 뵙습니다 . "주역해고 "신판 출간 하셨는지요 ?
공부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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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게신가 그대
자객행 |
余素不能奕棋 非徒不能 亦不慾爲也.
十五六之歲 往少年會. 大張此技 芳觀四圍 每下一子
必大誼共曰(영처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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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답장을 신부름하는 사람에게 받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냅니다, 꽃샘 추위에 편안하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고질병인 치질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날씨가 좋지않은 것은 이곳도 매한가지입니다. 이곳은 두견주로 이름이 난 고을, 진달래꽃 꺽을(술을 담그려)날은 기다리며 나는 바둑으로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그대가 볼 때 이곳은 바닷가의 궁벽진 곳이고 땅은 얼어 녹지 않고 밤이면 돌덩이 같은 얼음이 얼고 아침이면 손이 저릴 정도이지요.
지난번 말한 세곡으로 말하면 답이 없어오. 빌려준 곡식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곡식도 상품을 요구하면서 독촉이 엄혹하니 백성들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독촉을 하지 않으면 관장들이 곤경에 처하니 진실로 관장들의 고민은 세곡이지요.
돌아가는 신부름꾼에게 몇가지 물품을 함께 보네니, 수령 여부를 다음 인편에 알려주시요.
이만 줄입니다.
(方以未承 覆爲鬱 郵人惠書 就審春寒 爲幸良至 余痔疾 近日略得減 風日之不好 此中亦然 杜花之間 尙邇杏漠 此所杜酒有名邑 而折待杜花 手談之克節 君以見 況絶漢窮溟 凍土未盡
夜中爲石氷 朝冷指痛 傳書之納穀 不答 借穀不可促納 其入穀又佳穀不擇捧 督太過 民生苦穿空 不督 官卽困亂 眞與官苦 納穀也. 歸郵人 送負物故去矣 未知果傳至 否 次郵書言之爾 餘不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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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선생님 건강하게 잘 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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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 지역역사연구서 면천에서 조선을 읽다 출간.
박지원 미공개 간찰과 구한말 충남서북부지역 희귀 사진자료등 공개.
소설가이자 한문연구가인 이청(56)이 면천에서 조선을 읽다라는 책을 출간한다. 이청은 조선의 군 관아지였던 면천과 그 일대의 역사의 현장을 자료 위주로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학계에도 도움이 될 수준의 자료집을 의도했다고 한다. 일례로 이청 본인이 발굴한 아래의 연암 박지원선생의 미공개 간찰만 봐도 그렇다. 이 간찰은 이청이 10년전 한 고서상에게 구한 간찰로 학계에도 처음 공개 하는 내용이다.
연일 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는지 그립고 궁금하오. 나는 이곳에서 몸이 좋지 않아 걱정이지만 그립던 차에 편지를 받고 보니 위로도 되고 가까운 시간에는 내려오지 못한다니 섭섭하기도 하네. 연전에 충청감영에 간 것은 몸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부득이 아픔을 참고 간 것이고 돌아와 통증이 더해 혼났다네. 관아의 일이라는 것이 온갖 잡무로 쉴 틈이 없어 괴롭지만 공무를 소홀이 할 수 없기에 관 둘 수도 쉴 수도 없으니 걱정일세. 나는 책읽기가 취미이고 바둑 등은 그리 마음에 두지는 않았지만 이 더위를 견딜만한 것으로 그만한 것도 없기에 향리의 고수를 불러 그럭저럭 시간을 보네고 있으이. 편지에 주자의 일(주자가 남강에서 고을 원을 할 때 제자를 지도했다는 고사를 말하는 듯)을 운운 하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고 웃었네. 지금 이곳 충청도에 그런 목민관은 없다네. 가까운 날에 내려온다니 다음 편지에 날자를 밝혀주면 기쁘겠네. 이만 줄이네. -면천관아에서.
(近日苦熱. 啓處如何 溯又懸 余此中病憂一樣 懸企方切 書至雖慰 近日不果來 良以爲悵 向日之金營 非病少愈 乃忍苦而作耳. 旣歸免添病 衙堂長直 雜事有坌㗒之役 則苦役 然而公簿不得不强意繙繹 不失其密案 不息不退兩難也. 余讀書之好奕碁之嗜 泊然無婴精 而消遣之資實無好道故理耳. 鄕碁來往 憒粗遣 案之朱子所行語云云 可可撲掌. 今日湖中之間 未必有其人邇 不往來日 更因書及之爲佳. 餘不具. 沔衙之書.)
이청 해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바둑을 한차례 언급을 했다. 그의 아들 박종채는 자신의 아버지가 바둑을 둘 줄 알았으나 잘 두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겨 박지원이 바둑을 이해하고 즐기기도 했다는 것이 증명된다. 조수삼도 글에서 박지원이 연행길에서 중국인들과 바둑을 두며 해학을 보여준 대목을 언급 한 적도 있다.
그러던 1980년대 발굴된 박지원의 간찰에서 집에 있는 바둑책을 찾아 근무처로 내려 보내라는 내용이 등장 박지원이 애기가임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위의 간찰은 박지원이 스스로 지역의 바둑고수를 불러 대국을 했음을 밝히고 있다.
금영은 충청도 감영을 말한다. 박지원이 면천 군수시절 충청감영은 공주에 있었고 박지원 재임기간 관찰사는 한용화 이태영 김기영이었다. 박지원은 이들 관찰사중 이태영 김기영과 상당한 친교가 있었다. 박지원은 이때 몸에 병이 있었던 듯하다. 면천군수를 사직한 후 불과 5년후에 사망한 것을 보아 그렇다.
이 간찰의 수납자는 미상이다. 면천에 박지원의 지인들이 무상으로 드나들어 그들중 한명으로 추정된다. 다만 군기를 의미하는 향기라는 용어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 바둑만한 것이 없다(박지원의 다른 간찰에도 등장)는 박지원의 바둑관이 흥미롭다. 그리고 충청도의 수많은 목민관중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목민관은 없다는 의미의 발언등이 주목된다. 박지원은 이때 호론 낙론의 대립으로 남당 한원진을 외면하는 충청도 목민관들의 행태를 보고 실망을 한적이 있어 이 당시의 소회로 여겨진다.
이 책은 이런 내용으로 30꼭지로 구성된다. 일제강점 시대 일본인 당진군수의 후손에게서 구한 희귀 사진 자료 10점도 함께 수록 공개되기도 한다. 이청은 '선' '마음'등의 불교소설과 '물처럼 바람처럼 ' '동천홍'등 역사소설과 '은허문자로 본 주역'등을 출간 했고 중국 복단대 고문자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 하는 등 고문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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