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없음과 도량
2016-04-28 오전 6:12
조회 4209추천 4 프린트｜스크랩
|
|
|
|
요 며칠 간은
일없음이라는 주제의 시간적 측면이 자꾸 떠올랐고, 그리고
어제오늘은 온갖 견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도량이라는 황벽선사의 관점이 눈에 띄었다.
글이 어떻게 되어갈지 모르겠지만
한번 써보려고 한다.
완릉록이라는 선어록을 보면
道場者 祇是不起諸見
라는 표현이 나온다. 공감이 가는 말이었고
비슷한 일화도 들은 기억이 났다.
요즘은 좀 잠잠해졌지만, 테레비에도 한번 나왔던 법륜 스님의 어느 글에서
서옹스님과 젊어서 만났던 일화를 본 일이 있다.
당시 젊은 법륜은 한국불교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절에서 나오던 차에 논두렁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영감스님, 혹은 노승이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함께 앉아서 쉬던 차에 무언가 죽이 맞아서, 당시 젊은 법사는 소년시절부터 청년기를 거치며 느껴온 문제를 길고 널따란 혀를 가지고 제시했다고 하는데
대개의 전설 속 고승들이 그러하듯이 한 참을 말없이 듣고 있던
이 노승은 나중에 하는 말씀이
그 모든 견해가 유용할 수도 있지만, 일단 그 소란한 그대의 마음을 좀 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젊은 사람은 당연히 젊은 생각을 했을 것인데, 늙은 사람은 또한 늙은 생각을 계속 말했다고 한다.
불사를 잘 하고, 제도적 보완을 잘 한다고 하면
결국 그게 무얼 위한 것이냐는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논두렁에 이렇게 앉아서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이곳이 바로 법당이고, 도량인데
제도적 개선을 많이 해도 결국 할 일은 지금 논두렁에 앉아서 사이 좋게 살아가는 일이 남을 뿐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세간의 시선에서 보면 뉴우요오크에 있는 일백 이층 짜리의 황제루와 같은 것이 멋져보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대와 나는 지금 두 사람이 다 발심 수행자가 아닌가? 그리고 따지고 보면 누구나가 잠재적인 수행자들이다. 그런데 수행자들에게, 결국 인간에게 남는 일은 논두렁에 앉아서 두런두런 마음을 나누는 일에 불과하다. 그 중에 더욱 마음을 쉬어벗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함께 나눈다는 입장에선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그 모든 좋은 일이 결국 지금 이 순간의 variations이라고 볼 수 있으니
그대는 스스로 마음을 편히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야길 한 참 들어보던 청년 법륜이 잘 반추해보니, 그날 우연히 길바닥에서 만난
노인네가 하는 말씀이 어째 하나도 그른 게 없어보였다고 한다.
물론 외형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야, 노승의 현재와 젊은 승의 미래가 다를 수 있으나
그거아 개인차이고, 시대차이지, 그 어떤 골간의 입장에선 매우 군더더기 없는 뛰어난 설법을 들었다고 여겨졌다는 것이다.
道場者 祇是不起諸見
이 구절은 -온갖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도량이라는 말인데
황벽선사의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글을 쓰고 보니
젊은 법륜이 만났던 노승, 혹은 서옹스님의 논두렁 설법과 전혀 동일해보인다.
그 어디에서든 평화로운 마음 자체가 바로 도량인 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BbBbra-Icc
다음으로 일없음의 시간적 버젼에 대해서도 써보겠다.
내가 이해하는 일없음이란
원래 세상이라는 곳에서의 다양한 일들이란 뽀족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어제인가 포탈의 기사를 보니, 명문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려고 투자한 사람들의 돈이 19억에 달했지만 별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 있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 다들 한 마디씩 하고 있지만, 이를 조금 더 radical하게 바라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방식, 더 나아가 세상 자체가
이런 근거없고 황당무계한 일들의 집합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인데, 그런 입장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일, 혹은 해야 할 일들이란 거의 없거나 애초에 없다는 식의 관점이다.
이런 일없음은 임제록에 빈번하게 나오고, 황벽의 어록에도 종종 나오는데
요 며칠 착안한 것은 과거에도 아무런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원래 세간에 일이 없다는 점은 익히 보고 있는데, 과거에도 아무런 일이 없다고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과거에도 결국 구조는 동일하므로
과거가 갖는 왠지 모를 어떤 설득력 혹은 주술 같은 것에 여전히 휩싸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일이 있었지만
그건 현재를 볼 때에 다양한 일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에 아무런 일이 없을 수 있다면 과거에도 아무런 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미래에도 따라서 아무런 일이 없을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현재가 다만 두끼니 밥먹을 일을 인간들이 혼잡하게 만든 귀결이듯이 과거도 그러하였고, 또한 미래도 그러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은 어차피 발생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견해를 일으키고 않는 것은 개인의 역량이나 관점이 상당히 연관된다. 해석하고 명명하지 않거나 적게하면 상황의 의미가 전혀 달라지게 되는데, 더 나아가 상황 자체가 있고 없고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일없음과 도량의 두 문제도 어떤 선에서 서로 연락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데, 물론 이런 관점은 그 이면에 중도라는 배경을 깔고 있으므로 단순히 견해로 확정시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게 된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아마도
스무 살의 인도왕자가 출가를 하게 된 그 생로병사의 문제라는 것이
새벽별을 본 그의 미래의 입장에서 보면, 집단무의식의 오류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과 상황에는 해석과 명명, 자각과 무의식 등이 상당히 많이 엉켜있음에 착안해야 할 것이다.
말을 많이 한 이후에 선어록들을 보면
돌,이라고 쓰거나 혹은
주장자로 탁자를 세번 두들기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탈주의 노선을 제시한 이후에, 그 노선도 또하나의 정형화된 지층으로 굳어질 것을 염려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아침부터 말이 많았다.
|
|
|
|
|
|
|
|
|
|
| ┃꼬릿글 쓰기 |
|
 팔공선달 |
｜ 2016-04-28 오전 11:08:44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수십번 말대가리를 끄덕이며 눈을 씻은 듯 뭔가 환해지더니 나는 또 깜깜해지며 아무 생각 엄따.
|
|
|
석존은 탄생의 트라우마에 고민했던 듯 합니다. 오트랑크가 말한 불안과 증상에대한 실존적 자각이야말로 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느낌과 이해가 있는 해석이라 여겨집니다.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트 그것을 불교 선으로 재해석하려한 라캉 ... 선지식을 정신분석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일견 동조가 됩니다. 사회가 비정상일 때 진술을 강요당할 때 병정증상은 늘어난다는 견해는 집단 무의식에 빠지는 사회공동체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
李靑 |
참으로 보면 볼수록 깊이와 울림이 있는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1당 백입니다^^;;
|
|
육묘법문 |
10년을 채우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
.gif){kind=logo}
작가의 말
李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