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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靑 唐津日記 당진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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坐以待旦하는 아침.
2016-03-07 오전 7:30 조회 4499추천 7   프린트스크랩

오래전 바로 옆방에서 칼을 맞고 죽은 친구가 있었다. 바닷가를 무대로 밤의 대통령을 꿈꾸던 허망(?)한 친구였다. 돈을 많이 모아 회사를 떠나 서울로 상경을 할 때까지는 잘 나가는 듯 했다. 그러다 사업 실패후 그 도시로 다시 낙향한 친구는 옛날의 친구가 아니었다. 옛날의 권력을 다시 허용 할 수 없다는 친구의 아우들이 거사를 일으킨다. 비오는 어느 밤을 택해 친구가 임시로 거처 하고 있던 농가를 습격 난자라는 방식으로 망자를 만든다.


나는 망자가 된 친구도 망자로 만들어 버린 친구의 후배도 아는 사이다. 죽은 친구 못지 않게 산 후배와도 애증이 쌓여 있었다. 범단죄 4조로 30여명의 식구들이 구속 되고 살인에 가담 했던 3명은 무기에서 15년 형을 받고 배후로 지목된 후배는 7년 형을 확정 받아 복역후 출소를 했다.  세속적 욕망이 불러온  큰 것을 잃어 버린 소탐대실의 경우다.


친구의 후배를 20년만에 교도소에서 보았다.  한때는 그들 회사의  스폰서이자 고문(?)으로 인간의 정을 나누던 관계로 참으로 괴이하고도 반가웠다.  압수수색과 함께 체포영장을 들고온 검찰 수사관들과 조우를 한 후 검사와  7차례 조사를 거쳐 재판을 받았다.  조사시간 25시간 진술 서류만 열권을 만들며 원없이 조사 받고 재판도 받았다.


받아든 1심 형량을 고등법원에서 파기시킨 후 조정된 형량을 받던 날 선고법정에 불이 꺼진  암전 상태를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나의 징역이 시작되었다.  공주교도소 대전교도소 충주구치소를 거쳐 마지막 홍성교도소에서 출소를 했다.  짦은 기간 여러 수용기관을 돌아본 것은 나에게 좋은 경험이다. 그렇게 받아 들인다.


출소후 가슴이 먹먹한 경험을 했다. 도인이 다 되어 나왔다고 생각 했던 나의 생각도 다짐도 한칼에 바스라졌다. 이제까지의 생활을 모두 정리 했다. 뭐 별거 없었다.  이렇게 떠난다면 홀가분 할거다.  그리고 다시 칼을 간다.  이제까지는 선거법 또는 교사 뭐 이런 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직접 칼을 든다. 이 어둠이 다 지나가기를 바라며 앉아서  아침을 기다린다. 이제 나의 아침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유작으로 소설 고수를 오로에 연재한다. 원고 전체를 회사에 송고 했다. 

오로회원들께 인사는 드리고 떠나고 싶었다.
잘 모르는 식견으로 중언부언 하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그점을 양해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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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  2016-03-07 오전 7:38: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검은잎 |  2016-03-07 오전 9:49: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더 이상의 생각과 기동(起動)을 멈추고 긴 심호흡이 필요할 때입니다. 부탁합니다.  
youngpan |  2016-03-07 오후 9:38: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황혼의길목 |  2016-03-07 오후 11:19: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유작이란 표현이 영 마음에 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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