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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크라쿠프(소금광산, 바벨성) 여행기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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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크라쿠프(소금광산, 바벨성) 여행기
2015-03-19 오전 8:35 조회 6920추천 4   프린트스크랩
▲ 폴란드 소금광산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관람을 마친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약 70여 km 떨어진 비엘리츠카(Wielicka)에 있는 소금광산을 보러 갔다. 소금광산도 아우슈비츠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이다.

 

소금광산은 총길이 300여 km 중 3 km를 관광코스로 개발해 놓은 것이다. 두께는 무려 500 m~1.5 km까지로 150~200만 년전에 오랫동안 바다였던 이곳이 물이 증발한 후에 소금만 남아 암염이 되었다고 한다.

 

요즘에 잘 사용하는 'God bless you.'는 이 비알리츠카 소금광산 인부들이 서로 지나갈 때 사용하던 인사말이라고 한다.

 

이 소금광산은 1996 년까지 700 년 넘게 7,500 톤의 소금을 캐내었으며 본래 지하 1단계(지하 64m, 378계단)~9 단계(327m)까지 개발을 했는데 관광객들에는 지하 1 단계(64m)~3 단계(135m)까지만 관광을 허용하고 있다.

 

주요 관광 코스에는 벽, 바닥등의 소금광에 그림, 조각들이 즐비하고 제 3단계의 커다란 성당 안은 성(聖) 킹카 성당으로 불리우는데 천정의 샹들리에까지 모두 소금덩어리 조각들이다. 이 성당은 일반인들의 결혼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 소금광맥이 발견된 경위는 13세기에 헝가리 킹카 공주가 폴란드의 크라쿠프 왕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킹카 공주는 폴란드에 소금이 부족한 것을 알고 친정 아버지에게 소금 광산 하나를 결혼예물로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킹카 공주는 이 소금광산을 결혼 선물로 받게 되었고 폴란드로 오는 길에 약혼 반지를 이 광산 깊은 협곡에 던져 버리고 왔다. 그리고 폴란드에 와서 크라쿠프 시민들을 시켜 땅을 파게 하여 반지와 소금광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금광산을 관광하면서 지하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워낙 세서 반드시 뒤의 관광객에게 나무 문을 잡고서 인계를 하여 주어야 한다. 아니면 강한 바람에 문이 부서질 정도로 굉음을 내서 관광객들이 놀라기 때문이다.

 

소금광산의 통로를 따라 계단을 내려 가다 보면 크라쿠프에서 찾은 반지를 킹카공주에게 전하는 모습, 난장이 광부들이 광산을 캐는 모습, 박제 말이 소금 마차를 끄는 모습, 소금물을 물래방아로 빼내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리고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둥근 지구를 든 형상을 볼 수도 있다.

 

말은 지하 세계에서 약 5 년간을 사는데 평생 그 곳에서 새끼를 낳으며 산단다. 지하 소금 광산에는 흙을 퍼다가 곡식을 심어 먹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소금광에 흐르는 물은 통 소나무 의 속을 파서 수로로 이용하여 물래방아로 밖으로 퍼내고 있었다.

 

3 단계인 킹카 공주의 웅장한 성당(길이 54m, 폭 17m, 천정 10~12m)이 압권이었었다. 그 곳에는 제 1 대 광부 요셉 마르코프스키가 조각을 하다 죽으니 10살 아래 아우인 2 대 광부 토마스 마르코프스키가 성당 안을 조각했다.

 

2대 광부가 죽자 제 3 대 광부 안톤 비로테크가 1935 년 최후의 만찬 조각을 소금광 20cm 두께로 조각한 것이 매우 걸작으로 평가를 받아 그는 나중에 미술대학 교수에 채용되었단다.

 

이 곳의 성모상은 전쟁 승리의 상징으로 남자 상인 것이 특징이며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각 모습도 눈에 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대학 시절 학점이 모두 A 학점이었고 10 개 국어에 능통하셨다고 한다. 그는 1984년과 1989년에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하신 적도 있다.

 

소금광산 광광을 마친 후 약 15 km에 떨어진 크라카우(크라쿠프)로 이동하여 숙소를 잡았다. 숙소 이름은 Conrad호텔이었다. 호텔 이름이 매우 친숙하여 상당히 반가웠다.

 

왜냐 하면 재직 시에 싱가폴에 한 10 차례 출장을 갔을 때 마다 Conrad라는 호텔에서 묵었었기 때문이다. 체인점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호텔 방에 들어 가니 물 한병이 공짜로 놓여 있었고 커피도 공짜로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 부페도 싱가폴의 호텔과 거의 같은 수준이어서 매우 좋았다.

 

다음 날은 여유가 있어 8시 반에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크라카우의 중앙광장과 바벨성 관광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여행가방의 록커가 한 쪽에만 힘을 받았던 관계로 쇠걸이가 부러져 나갔다. 불편하지만 나는 여행가방 두레를 끈으로 칭칭 동여 매어 버스 짐칸에 실었다.

 

중앙광장에 들어 서니 700 년전 아랍과 교역을 하였다는 직물회관이 보였는데 내부 공사 중이라 안으로는 들어 가볼 수가 없었다. 주위에는 포장 마차 시장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고 시장 바로 뒤에는 성모마리아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각기 다른 모양의 두 개의 탑이 있는데 한 개는 높이가 81m이고 조금 더 높은 탑은 14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 탑 꼭대기에서는 지금도 매 시간 정각에 나팔수가 나팔을 불어 시간을 알리는 ‘헤이나’라고 하는 의식을 행한다. 도중에 나팔 소리가 갑자기 뚝 끊기는데 그 이유는 12 세기에 크라쿠프를 침략한 타타르족의 공격을 알리던 나팔수가 바로 그 자리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숨진 것을 애도하는 의미라고 한다.

 

중앙광장을 둘러 본 후 걸어서 바벨성으로 향하였다. 바벨성 역시 공사 중이라 안으로 들어 가볼 수가 없었다. 석회석 언덕 위에 지어진 성으로 폴란드 왕이 500 년간 거처하였던 처소로 지하에는 폴란드의 왕과 영웅들의 묘소가 있다고 한다.

 

바벨성 뒤의 큰 호수에는 여러 마리 청둥오리가 노닐고 있었고 호수 산책길을 따라 한가로이 걸어 보았다.

 

폴란드에는 금년 4월 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서거를 하였는데 이 때 애석하게도 96명의 엘리트 관료들도 함께 사망하였다고 한다.

 

 점심을 먹은 헝가리의 부다페스를 향해 나섰다. 부다페스트를 가는 도중에는 슬로바키아의 동유럽 알프스인 타트라 산맥을 거쳐 약 5시간 정도를 버스로 가게 된다.

 

 

┃꼬릿글 쓰기
팔공선달 |  2015-03-19 오후 7:33: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광산의 길이가 300.....상상이 안되네요.  
우주공0 |  2015-03-21 오전 8:21: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른 작가가 쓴 글에 리플 달기가 안 되는군요. -_-;;;  
따라울기 |  2015-03-21 오후 11:45: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런 자원을 가진나라를 보면 부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자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여 자랑했으면 합니다.  
우주공0 우리나라도 제주도, 경주, 창덕궁, 종묘 등 세계유산으로 많이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잠 |  2015-04-18 오전 10:08: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폴란드는 아픈 역사가 많네요. 몽고군의 침략 때도 나팔수 뿐 아니라 전 도시가 살륙을 당했겠지요. 게다가 최근에는 대통령과 엘리트들까지 이웃나라에 가서 참변을 당했으니, 그냥 읽고만 있어도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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