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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아우슈비츠(오슈비엥침) 탐방기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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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아우슈비츠(오슈비엥침) 탐방기
2015-03-09 오전 8:40 조회 6573추천 3   프린트스크랩
FM 수신기로 가이드 설명을 듣다

전일 저녁 독일 베를린을 관광 후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 :중세 사적이 많고 대학 등 폴란드에서 4번째 큰 도시)로 이동하여 Perla 호텔에서 저녁을 하였다. 저녁 밥을 먹다가 한국에서 금이 나갔다던 스크류를 박았던 윗니 오른 쪽 이빨이 공교롭게도 완전히 뽑혀 나와서 윗턱에 폴대만 꽃혀 있었다.

 

호텔식 아침을 먹고 나서 거울을 보니 윗턱에 박혀 있던 철 폴대마져 보이지를 않았다. 아마도 아침 식사를 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삼켜 버린 모양이다.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전에 바테리 충전을 시켜 놓은 디카를 아침에 작동을 해보니 전혀 셔터가 열리지도 않는다.

 

동유럽 여행 내내 디카를 파는 곳을 찾지를 못해 나의 관심 분야는 전혀 사진을 찍지를 못했고 다행히 나는 동료 여행객 두 분의 협조를 구해 최소한 이메일로 약간의 사진만을 우송 받을 수 있었다(아래 사진들은 타인의 사진기로 찍은 사진들 임). 

 

폴란드(Poland)는 '폴족의 땅'이란 뜻도 되지만 'Pol'이 '평평한'이란 뜻이 있으므로 평지란 뜻도 된다. 그래서 그런지 폴란드는 남한의 3 배 크기이지만 90% 평지에 10%만이 사막 임으로 실제로는 우리 남한의 15 배 유효 크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폴란드에서 하루 밤 묵은 브로츠와프 호텔로 어제 운전하였던 다렉이란 폴란드 버스 기사가 비교적 엔진 소리가 조용한 버스로 교체해 가져 왔다. 향후 이 분과 동유럽 7 개국을 함께 돌아야 한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예전엔 수용소)이 있는 곳까지는 약 150km로 아침에 서둘러 7시 반에 출발하였다.

 

버스 안에서 폴란드어로  아침인사<진도부리>, 고맙습니다<진꾸에>, 잘 가요<도비제니아>를 익혔다. 폴란드어는 발음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어미 변환이 많은데, 특히 동사의 변환은 폴란드 지식인들도 많이 틀린다고 한다.

 

아우슈비츠를 향해 가는 길에는 이 곳이 추운 지방인지라 많은 자작나무들이 길쭉길쭉 뻗어 도열을 하고 있었다. 자작나무에 기생하는 자가 버섯이나 참나무, 뽕나무에 기생하는 상황버섯은 나무에게는 일종의 악성종양으로 인간으로 치면 나무를 죽이는 암인데 인간에게 항암제로 사용되는게 매우 기이하게 여겨 진다.

 

호텔을 출발 한 후 오전 9시가 약간 넘어 아우슈비츠(제1 수용소)에 도착을 하였다. 이 대목에서 이 엄청난 수용소가 생기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을 하여야 할 것 같다.

 

1939년 독소 밀약에 따라 독일이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키면서 제일 먼저 폴란드의 서부를 독일 나치가 점령하게 된다. 물론 암묵적으로 폴란드 동부는 소련이 침략을 하여 폴란드를 독,소가 양분하여 나눠 가졌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하게 되는 배경을 살펴 보면 대충 몇 가지로 추려 볼 수있다. 유럽에 신의 징벌이라는 흑사병(1347-1351년)이 창궐하면서 유럽인 약 3,00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유럽의 위정자들은 당시 유대인들이 우물에 약을 풀어 그렇다는 등의 유대인 원흉설을 부추기면서 반유대주의가 높아가던 차에 히틀러가 이를 교묘히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게 된다.

 

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은 1차 대전에 대한 전후보상비에 시달리며 경제공항에 이른 상태였었다. 그런데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 4%가 독일 경제의 1/4을 주무르면서 주요 요직을 유대인들이 차지하고 있자 이들의 재산을 몰수키로 마음을 정한다. 그러면서 독일인들에게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를 부추기면서 나라없이 떠도는 유대인들을 먼저 말살시키기로 국민들을 선동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선민이라며 우월성을 강조하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게르만 민족우월주의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 때 폴란드에는 유대인에게 유한 정책을 서서 유럽에서 불안감을 느낀 유대인들이 폴란드로 모여 들면서 폴란드에 약 30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독일은 제일 먼저 아우슈비츠를 점령하였다. 왜냐 하면 이 곳이 중화학 공업지역으로 이 곳의 폴란드 야전사령부를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곳은 섬과 같은 지역으로서 외부로 탈출이 어렵고 내부에서 진행되는 일이 들킬 염려가 없었다. 그리고 이 곳은 역청탄(세계 5위 매장)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 열탄으로 쉽게 사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전 유럽 국가들이 이 곳에서 2,200km 내 사정권으로 들어 오며 철도 이송이 아주 용이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나치가 이 곳을 점령 후 처음에는 폴란드 정치인들 728 명을 사살하고 나중에는 지식인들, 어린이까지도 정치인으로 분류하여 죽여 버렸다. 그 후 1,000여 명의 신부, 소련군 포로, 독일의 불구자들, 수천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도는 집시 유태인들을 끌고 와서 모두 학살을 한 것이다.

 

이 곳 제1 수용소는 약 2만 평 대지 위에 1940년 28 개동으로 지어졌는데 60%가 파괴되었고 40%가 유지되고 있으며 우리 관광 팀은 약 1시간 10분 가량 코스로 4호, 5호, 6호의 3개동 내부를 관람하였다.

 

우리는 한국말 가이드를 공용하여 우리 팀 관광객들은 FM 수신기로 그의 설명을 들었다. 이 곳에서는 먼저 폴란드의 유대인들을 잡아 죽이고 유럽 각국에 살고 있는 떠돌이 유대인들을 동쪽의 이주할 땅을 약속하면서 밀폐된 화물칸에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7일에서 15일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을 시켰다고 한다.

 

이송된 유대인들은 SS(나치 친위대) 군의관의 수신호에 따라 엄지를 들면 강제 노동, 그리고 아래로 검지를 밑으로 향하면 가스실로 보내 졌다. 가스실은 주로 어린이, 여자, 노인, 불구자 등이다. 가스실을 간신히 벗어난 사람들도 하루에 12시간 이상 노동에 헐벗은 채 시달려 약 평균 2 개월 이상을 더 살지 못하였다고 한다.

 

가스실로 보내지는 사람에게는 모두 옷을 발가 벗겨 샤워를 시켜 준다면서 비누를 손에 들려 가스실로 보내 졌다. 물론 가져 온 짐 가방들은 샤워 후에 돌려 주겠다며 이름과 주소를 적게 하였다.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들은 반지, 목걸이, 금니 등을 빼서 녹여서 모두 독일로 이송하였다고 한다.

 

여자 머리카락은 깎아서 가발, 카페트, 남성 양복 등을 만들었는데 감촉이 아주 좋았다며 짜른 머리카락 무게만 해도 7톤이 넘었다고 한다. 죽은 시체 화장은 역청탄을 이용했으며 그 재는 비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4호실로 들어 가면 SS(나치 친위대)가 찍은 학살 사진이나 수감자들의 참혹한 모습들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는데 유럽 전역에서 아우슈비츠까지 끌려 오는 내역과 수감생활 모습이 담겨 있다.

 

5호실에는 당시의 생활용품인 안경테(군수 물자로 재활용), 숄, 신발, 의족, 목발, 유태인 부자들의 법랑 그릇, 요리집기, 도구, 타자기, 짐 가방, 어린이 신발 35,000 켤레, 인형, 배냇 저고리, 가죽신발, 치솔, 면도, 구두솔, 다양한 구두약 등이 종류별로 방 하나씩에 달리 산 같이 쌓여 있었다. 

 

당시 유태인들이 얼마나 부유하게 살았지를 가늠할 수가 있었다. 현재의 제품으로 비교해도 크게 차이를 느낄 수가 없을 정도였었다. 1939년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짚신이나 잘 사는 사람이 고무신을 신었을 터인데 당시 유대인들이 얼마나 부유하게 살며 사회 지도층에 속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6호실에서는 죄수들의 생활상의 그림이나 실제 얼굴 모습들이 있는데 전우, 정면에 40만 명의 기록이 있고 당시의 번호 문신은 아우슈비츠만이 하였다고 한다. 정치범, 소련군, 동성연애자 등의 성분 표시가 되어 있었으며 나치 친위대 앞잡이인 카포(△표시)도 보이고 이들은 점호 종을 치는 등의 일로 덜 초라한 모습이었다.

 

임산부 강제 낙태, 맹인 만들기, 어린이 성기 제거 사진, 생체 실험, 엄동설한에 어린이를 발가벗겨 몇시간 견디나 측정, 어린이에게 유해물질을 바르거나 서로 피부 바꿔 이식하기, 등을 주로 쌍둥이를 대상으로 많은 만행이 저질러졌다.

 

4호, 5호, 6호실 건물 밖으로 나와 길다라니 나머지 동 20여 개가 보였는데  주로 벨기에, 네델란드 등의 국적별로 수감자들이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3개동을 거니는 'T자 형' 사이 길에 교수대가 하나가 보였는데 이것은 특별히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를 처형하기하기 위하여 가스실 옆에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모자라 제1 수용소(약 20,000 평)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제2 수용소로 제1 수용소의 약 10배 크기로 만들었다. 제2 수용소는 2,000 명을 한 방에 넣어 가스 질식 시켜 죽일 수 있는 방을 무려 4개나 만들어 15 분에 8,000 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 곳은 실화인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후에 제3 수용소까지 합하면 약 30만 평 대지 위에 300여 개 동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런 수용소 시설이 전 유럽에 1,000 개소 이상이나 지어졌다고 하니 히틀러의 만행에 전율을 느끼며 내 빠진 치아도 떨릴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가스실에 들어 가 보니 단체 샤워 명분으로 한 방에 350 명을 집어 넣고 천정 큰 구멍을 통하여 해충 박멸제인 사이클론B로 약 15분~20분간에 학살을 하였다. 시멘트 벽에는 죽기 전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손톱으로 끌은 자국들이 선명하게 나 있다.

 

많은 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SS 오케스트라단 음악에 맞춰 발을 맞춰 행진을 시켜 출입을 시켰다. 남자에게는 모자를 여자에게는 두건을 쓰게 하여 서로 훔치도록 유도하여 잃어 버린 사람들은 사형을 시킴으로서 공포를 유도하여 탈출을 막았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노동자 출입 정문에는 "ARBEIT MACHAT FREI." 라는 문귀가 붙어 있는데 '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는 뜻이란다. 기만적인 문귀가 틀림없으나 이 문자들을 만든 노동자는 'B'자의 '아래 ⊃'를 '위 ⊃'보다 현저하게 적게 만들므로서 독일 나치에 저항의 표시를 하였다고 한다.

 

히틀러가 2차 대전을 일으켜 유렵인 5,000만여 명이 죽었으며 그 중 소련인 2,000여 만명, 폴란드인 600여 만명, 유태인 400여 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1945 년에 전쟁이 끝난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8 년에 개조를 하여 지구상에서 전쟁을 몰아 내는자는 취지로 아우슈비츠 박물관으로 개조를 하였다고 한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의 잔존 유대인들은 새로 세운 국가인 이스라엘로 떠났거나 미국으로 모두 이민을 가 버려서 지금 폴란드에는 약 15,000 명만이 거주해 살고 있단다. 폴란드는 우리나라와 같이 현재 단일민족이라고 한다.

 

14세 이상의 폴란드인들에게 이 아우슈비츠가 수학여행의 필수코스라고 하는데  4호, 5호, 6호실을 관람하면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많이 닳은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최대 무역국이듯이 폴란드와 독일이 최대 무역국이라는 사실도 매우 경이롭다(다음은 폴란드의 고유 유적지 방문기를 올릴 예정입니다).

 

┃꼬릿글 쓰기
팔공선달 |  2015-03-09 오전 8:55: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가슴 아픈 역사.... 잘 보았습니다.  
따라울기 |  2015-03-11 오후 7:25: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잊지 말아야 할 많은 교훈 분개하면서 읽었습니다.  
철권미나 |  2015-03-23 오전 12:19: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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