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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공 수필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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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행기
2015-02-27 오후 12:08 조회 4552추천 2   프린트스크랩
독일 여행기

나는 여행 전 날 이빨에 금이 간 채 인천공항에 당도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향 대한항공기 KE-705(보잉747기) 72C 좌석을 받았다. 비상구의 통로쪽이나 발은 마음대로 뻗고 가끔 일어 나서 스트레칭도 할 수 있는 좋은 좌석을 배정 받았다. 공항 대합실에서 한 여인이 다가 오더니 내 가방 한 쪽 록커가 좋질 않아 벨트로 조여 매야 한다며 내 여행 가방에 직접 채우며 다른 여행객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빨리 사라며 강권을 한다.

 

강매를 하려는 그 녀의 멘트에 기분이 살짝 나빠진 나는 그 녀의 끊질긴 구입 요구에도 불구하고 나를 그것을 사지를 않았다. 그 녀가 내 가방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내 감정에 호소를 해왔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 벨트을 샀을 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내 가방 한 쪽의 록커가 그 전부터 좀 약간의 틀러블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짐을 부치면서 옆줄을 보니 2 년전 두바이, 이집트, 그리스, 터키 여행을 하면서 지중해 에게해의 크루즈 배 안에서 밤늦게까지 술잔을 겨눴던 40 대 중반의 식솔(부인과 아이들 둘 동행)이 보인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간 어디를 다녀 봤느냐고 물으니 미국 뉴욕과 서유럽을 다녀 왔단다. 나와 소속 여행사만 다를 뿐 거의 같은 코스를 도는 비슷한 여행상품이었다.

 

내 짐을 벨트에 올리면서 대한항공 직원에게 인천서 푸랑크푸르트까지 몇 마일이 쌓이는가를 물었다. 할인항공이라 약 4,000 마일(정확히는 4,288 마일)이라고 한다. 나는 그 직원에게 308 마일이 모자라는 50,000 마일이니 프랑크 푸르트에서 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모닝캄 회원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비행기에 탑승하여 점심에 백포주와 맥주 한 캔을 마셨는데 구토 증상을 보이며 속이 매스꺼웠다. 나는 접심을 잘못 먹어 체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서 그게 비행 멀미(airsick) 임을 개달았다. 그동안 수십 번 비행기를 타봤어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해외여행은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부지런히 다녀야겠구나하는 생각을 불현듯 갖게 되었다.

 

약 11시간 비행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렸는데 오늘(5월 13일; 어머니 날은 5월 2째 일요일<5월9일>)이 이 곳 아버지의 날이란다. 이 곳 프랑크푸르트는 대문호 괴테가 태어 나서 26세까지 살았던 곳 임을 알게 되었다. 이후 괴테가 83세 때까지 집필 활동을 하였다는 바이마르 지역의 작은 호텔에 숙소를 잡고 그 곳에서 호텔식 저녁 식사를 하였다.

 

다음 날은 바이마르에서 버스를 타고 베를린으로 이동을 하여 카이저빌헬름교회, 전승기념비, 브란덴부르그 및 베를린 장벽을 구경할 예정이다. 아침 8시에 호텔 체크아웃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전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확인 결과 폴란드에서 버스가 오는데 도로에서 다른 차량이 사고가 나서 교통 체증으로 늦는다고 한다. 여행 첫날부터 김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약 1시간 반이 지체된 후에 버스가 도착하였다. 독일이 자랑하는 시속 290km로 질주가 가능하다는 아우트반 고속도로로 경쾌하게 달렸다.

 

차창 풍경 사이로 많은 샛노란 색체의 유채꽃들이 눈으로 들어 온다. 그런데 차량에 문제가 있어 소화기전이 흔들리는 등 소음이 많아 다음 날에는 버스 차량을 다른 것으로 교체키로 하였다.

 

베를린에 도착하여 시내를 둘러 보니 아주 높은 건물은 많지 않은 편이었으며 시가지 사람들은 비교적 활기차 보였다. 가로수들은 5층 건물 이하의 높이를 유지케 하며 가로수 일일이 수목 번호를 부여하여 정부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년중 강수량은 우리나라의 1/3 박에 안되나 집중호우가 아닌 수시의 강우로 인해 물 부족 구가는 아니란다.

 

독일의 첫 황제인 카이저 빌헬름을 기념하기 지은 교회로 제2차 대전 때 반파가 모습을 그대로 남겨 후손에게 전쟁의 참화를 알리고 있었으며 그 옆에 새로운 교회를 짓고 있었다. 당시의 재상은 이른바 철혈(鐵血) 재상(무기와 땀으로 독일 통일을 이룸)으로 알려진 비스마르크이다.

 

프로이센제국 시절 오스트리아(1860년), 덴마크(1864년), 프랑스91871년)와의 전쟁에서 연달아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빅토리아 상을 받든 전승기념탑(Siegessaule;1864-1873년)을 관람하려 하였으나 공사막이가 쳐 있어 그냥 버스 차창 밖으로만 바라 보았다..

 

18 세기 이후에 전쟁의 개선문 역할을 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어 1957년과 1958년에 복원시켰다는 독일의 재통일 전에는 베를린 장벽의 상징적인 문이었던 브란덴부르크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래 사진의 필자가 서 있는 곳이 옛 동독 땅이고 반대편이 서독 땅이었다.

 

브란덴부르그 문 안을 들어 서자 우리나라 젊은이 풍물패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외국인들에게 알리며 그 활동의 일환으로 외국인들의 족적을 떠주고 있었다.

 

베를린장벽은 이 문을 중심으로 약 120m의 둘레로 장벽이 쳐졌으나 동서독이 마주한 곳은 불과 47m였고 대부분 거의 헐어내었으며 일부 장벽은 그냥 그대로 존치하고 있었다. 헐린 장벽의 곳에는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자유의 상징으로서 아우트반 자전거 거리로 부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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