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바둑과 생명 | 나도 작가
Home > 커뮤니티 > 과메기
과메기 바둑점방

작가의 말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지 않은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바둑과 생명
2014-10-11 오후 7:36 조회 4990추천 2   프린트스크랩



  바둑에서 생명이란 어떤 것일까?

  첫 착점에 떨어진 흑. 
  어둠 속에서 한점 걷어 올린 흑진주같은 돌 한 개.
  그것이 남자의 정자처럼 바둑판에 눌어붙어 여자의 난자같은 하얀 백돌을 끌어들여 치고 받으며 한판의 바둑을 만들어 간다. 온갖 희노애락을 빚으며 그렇게 판을 수놓는 것이 바둑의 모습이 아니던가. 태아가 태동하듯 숨가쁘게 살아 움직이는 생동력, 사람의 생명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으랴.
  생명력이 다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악착같이 버티어 보고픈 심정도 같다. 급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장수하고 싶을 것이다. 이미 승부가 어느 정도 결정이 났다고 해도 돌을 던지는 일만은, 헐떡거리는 숨소리만은 계속 내뿜고 싶은 것이다. 치사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당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다면 쉽사리 숨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선고가 내렸더라도, 암덩어리가 내 몸을 시시각각 점령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눈을 떠서 바라보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보고 싶을 거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안락사나 존엄사가 있다지만 그것마저도 거부하고 싶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살아 숨쉬는 생명의 가치보다 더 소중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둑의 마지막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까지, 돌을 쥔 손마디가 파르르 떨리더라도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이 전신을 관통하더라도 졌다는 소리를 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한판의 바둑이 아니던가. 승패가 기울어졌는데도 좀처럼 투석을 하지 않는 기사가 있지만 그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기사들 중에 그런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바둑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두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인생은 단 한번 뿐이라는 신념같은 것이 배어있다고 봐야 한다. 이게 우리가 배울 점이다. 한판의 바둑은, 그와 똑같은 바둑이 없다는 것, 다시 반복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우리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 말고는 대부분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바둑에는 자살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충이라는 용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언젠가 한번 얘기한 적이 있다. 생명을 갖고 지구에서 산다는 것, 살아있는 세포와 영혼을 지니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단 한번 밖에 쓸 수 없는, 다시 올 수 없는 인생이므로 생명의 귀중함을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판의 바둑도 그처럼 절실한 것이다. 바둑은 다시 둘 수 있다고, 바둑은 인간의 생명과 다르다고 한판의 바둑을 쉽게 포기하고, 가볍게 여긴다면 바둑의 가치를 그만큼 떨어뜨리는 일이다.


  모 TV의 <생명 최전선>을 보노라면 삶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응급실에 실려와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볼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다치지 않았다는 것, 안방에서 편하게 구경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지.
  그러나 한편 언제 그와 같은 일이 내게 닥칠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 경계심이 든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세상사가 아니던가. 살고 싶다는, 더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 바둑으로 말하면 더 오래 두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이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싶고, 죽을 돌을 살리고 싶은 것도. 그런 점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은 바로 의사와 비견된다. 바둑을 더 두고 싶고, 죽은 돌도 모조리 살리고 싶은 이중의 마법을 가진 마술사라고나 할까.


  그렇다. 바둑을 두는 모든 사람은 의사와 같다. 의사는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린다. 그러나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고 치료를 받기도 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할 운명이다.
  바둑판 앞에 앉은 사람들, 의사의 심정으로 바둑을 대하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돌들이 잘 살아 움직이는지, 위기에 처하지는 않는지 수시로 판단하며 생명 최전선의 지휘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는가. 그것을 망각하고 있다면 자신의 돌들은 지휘관을 잃은 졸병처럼 우왕좌왕할 것이다. 가는 방향을 잃고 헤매이는 것처럼 안타까운 광경은 없을 것이다. 위기에 처했을때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것이며 아픈 것을 어디에 호소하고 치료를 받으며 생명의 안위를 의탁할 것인가.
  바둑 생명의 주관자는 바로 바둑판 앞에 선 당신이다. 바둑을 둘때만큼은 당신이 세계의 창조자이며 하느님이다. 무엇을 망설이고 주저하랴. 생명권을 쥔 당신이여. 바둑에 활력을 생명을 부어 넣으라. 나태하고 잠들어 있는 바둑세계를 일깨워라.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바둑계를 환기시켜라. 신음을 발하며 죽어가는 돌들을, 그리고 죽었던 돌들이 되살아나도록 응급처치를 하라.


  바둑의 최전선에서 진지하게 바둑돌을 놓는 모습을 보고싶다. 자신의 책무에 대한 애착을 갖고 일하듯이, 수를 놓듯 한점 한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두어 갈 때 바둑의 생명력이 용솟음칠 것이다.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바둑을 대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자.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생명과는 바꿀 수 없듯이, 다시 같은 한판의 바둑을 둘 수 없는 바둑의 생명도 같은 것이다. 함부로 돌을 던지지 말고 최후의 일각까지 투혼을 발휘한다면 우리네 바둑은 어느 누가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바둑의 생명, 그 끈질긴 생명력. 그것은 바둑을 두는 당신이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바둑은 끝까지 버텨볼만한 한수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바둑의 숨결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갈 것이다. 쉼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바둑이여, 생명이여, 영원하라….




┃꼬릿글 쓰기
우주공0 |  2014-10-11 오후 8:46: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생명력이 있기에 바둑판 위에서 정석, 포석이 계속 진화를 거듭하는 것 같습니다.^^  
팔공선달 |  2014-10-13 오전 9:41: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오늘은 생명을 붙들고 놀아 보았습니다. ^^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