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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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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윤회
2014-09-23 오후 2:42 조회 4764추천 6   프린트스크랩




  윤회(輪廻)는 사람이 죽은 뒤 그 업(業)에 따라 또다른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주로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지만 다른 종교에도 윤회 사상이 들어있는 것으로 안다.

  윤회란 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간다는 것이다.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던가.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도(人道), 천도(天道). 살았을때 자업자득의 결과로 사후에 각자의 세계로 간다는 것이다.


  실인즉 나는 윤회사상이란 그저 불교 교리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고 일반적인 관념으로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한데 그 윤회를 믿게끔 해 준 사건이 며칠전 일어났다.
  아내가 시장에서 갈치를 사와 요리를 해 먹었는데 그 갈치가 꿈에 나타나 얘기한 것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갈치는 은백색의 눈부신 빛깔로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 저를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습니다. 선생께서 갈치를 좋아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군요. 저는요 운이 없어 잡혀와 선생의 먹이감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감사하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의 죽음이 또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이 되었으니까요. 다행이라고 해도 상관없겠지요. 왜냐하면 반복되는 죽음이 있어야만 더 좋은 세계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선생 덕분에 저는 갈치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날 수가 있게 되었지요. 머잖아 저는 어떤 여자의 자궁 속에서 남자의 정자를 받아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되었답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제가 갈치로 사는 동안 갈은 부류의 물고기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이 그 이유라는군요. 나 원참, 별 생각없이 한 친절과 선행이 이런 좋은 복을 받을 줄이야.


  갈치의 동그란 눈이 광채를 내뿜었다. 비늘이 번쩍였고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 근데요. 저의 동료 중에 아직도 밝은 세상을 못보고 고생하고 있는 친구가 있답니다. 저와 피부색은 다르지만 둘도 없는 친구였지요. 지금 그 친구가 어디 있느냐고요? 녀석은 저 태평양 깊은 깜깜한 바다 속에 갇혀 있다시피 해요. 녀석의 몸은 깜깜한 바다 속처럼 새까만데 흑갈치라고 하지요. 눈마저 시커멓게 보여서 완전 암흑 덩어리예요. 석탄 캐는 광부같다고나 할까. 바다 속에서 무슨 금맥을 캘게 있다고 그 곳으로 떨어졌는지 원.
  아니, 그렇지요. 녀석과 난 결국 갈치가 되기 이전에 이미 예견된 운명이었지요. 짐작했겠지만 녀석과 난 바로 전생에서 바둑마니아였답니다. 둘도 없는 상대였고 만나면 먼저 바둑판부터 펼쳤지요. 실력도 아마 고수급이었지요. 돌을 가리면 흑과 백을 번갈아 쥐고 두었는데 내가 백을 쥐고 둔 적이 많았지요. 아마도 그래서 내가 죽어서 흰갈치가 된 것 같아요. 뒤에 알아보니까 그게 맞다는 겁니다. 흑갈치가 된 녀석은 당연히 흑을 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살았을때 흑백을 쥔 점유율에 의해 내생의 색깔이 결정된다는 게 말이죠.


  나는 어느새 흰갈치의 말에 빠져 들고 있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헷갈리는 기분이었다. 갈치는 그 뒤에도 무어라고 계속 지껄였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내가 먹은 갈치가 몸 속에서 분해되어 영양분으로 변했을 터이지만 그 영혼이 꿈자리에 나타나 알려준 예는 거의 없던 일이었다. 사실 나는 여태껏 흰갈치만 봐왔지 흑갈치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시장통에 가끔 나가 보지만 흑갈치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 다. 흑갈치는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흑갈치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없었다. 흑갈치라는 존재가 있다는 정도 뿐이었다. 암튼 흰갈치의 말대로 바다 깊은 곳에 살고 있다면 잘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굳이 잡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었다. 그 곳에 산다면 자신의 업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터였다.


  지금의 나도 우리들 모두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업보를 짊어지고 숨가쁘게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바둑마니아라면 내생에 갈치의 운명처럼 흰갈치와 흑갈치로 갈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쌓아온 경력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자동으로 내세의 정해진 자리로 배치될 것이다. 살아온 인생의 모든 자료가 입력된 것을 바탕으로 죽음의 마지막 고비, 숨이 넘어가는 순간, 골깍! 하면 사후세계의 관문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컴퓨터 마우스를 클릭하면 자동으로 화면이 바뀌듯이. 자신이 살아온 업보대로 또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니 불만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행적 그대로 되는 것이니까. 편파 판정이니 뭐니 하는 이의도 있을 수가 없다. 바둑을 둘때 한수 물려 달라느니, 초침 시계를 잘못 눌렀다느니, 꼼수와 속임수를 뒀다느니, 바둑 두는 버릇이 형편없다느니 등등의 불평도 있는 그대로 반영될 것이니까.


  오늘도 바둑을 두면서 나는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 앞에 나는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지 내세에 나는 무엇으로 태어날지 궁금해졌다. 평생 바둑을 좋아했으니까 바둑과 관련된 무엇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전혀 엉뚱한 생명체로 태어날 것인가. 예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수십수를 미리 예상하며 수읽기를 하는 프로바둑의 고수처럼 사후의 수읽기도 미리 할 수는 없을까.


  흰갈치는 이미 내 몸 속으로 들어가 나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었다. 흰갈치는 그의 말대로 조만간 여자의 몸에서 인간의 생명체로 태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운 탈바꿈을 하는 갈치의 운명이 부럽다. 다시 바둑을 둘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하니까 말이다. 내가 죽어서 또다른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은 없는 것일까. 그런 행운이 찾아 온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으랴. 그리 된다면 어릴적부터 바둑을 배워 프로의 꿈을 키워 볼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바둑을 두는 사람들, 당신들은 지금 바둑을 두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바둑에 몰입되어 죽음이라는 말조차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눈 앞의 바둑에만 신경쓰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지.
  내세에도 바둑을 둘 수 있는, 요즘 유행하는 비상혁신대책위원회라도 만들어서 가동해 보는 것은 어떨지. 바둑마니아들을 위한 전문장례식장을 만들어 마지막 가는 길에 문상객들이 두는 바둑모임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것은 어떨는지. 바둑 두는 소리에 고인의 영혼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세에도 바둑을 생각하며 바둑판 위를 여행하는 열차를 타고 영원히 달려가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또다른 바둑의 종착역에서 지구에서 떠나온 바둑마니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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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미나 |  2014-09-23 오후 10:19: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름다운 글이어요 과메기 옵빠^^*  
철권미나 소녀는 과메기 먹고싶어요^^*
말레이시아 |  2014-09-25 오전 4:11: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미있는 상상력에 문장력 - 잘 보고 갑니다,  
돌잠 |  2015-04-19 오전 1:14: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흑갈치는 아마도 곰치로 나타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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