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그리고 영원한 자유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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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그리고 영원한 자유
2014-08-19 오후 2:41 조회 4155추천 5   프린트스크랩



  지구촌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워낙 인구가 많고 다양한 인종이 살다 보니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바둑판 위에서 무수히 많은 수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는 듯 하다. 숨막힐 듯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가 막판에 승패를 가름할 고비를 넘기고 돌을 쓸어 담으면 바둑판은 금새 고요해진다.
 
  지구촌에도 이와같은 순간이 가능할까.
  대도시의 복잡한 자동차 도로가 통제되어 차없는 거리가 되듯, 불야성을 이루는 야경이 절전을 위해 한순간 정전이 되듯이 지구촌의 모든 대립과 갈등이 한순간만이라도 정지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구인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유엔이라는 조직과 종교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교황이 있지만 갈등을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가상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니 가상의 세계가 현실이 되는 마당에 머지 않아 실현될 날도 다가올 지 모른다.

  짐작했겠지만 그것을 대리 만족하는 도구가 바로 바둑이다.

  한수 한수 두어 가며 한판의 바둑을 펼친다. 판을 짜 나가는 사이 갖가지의 모양과 형태가 이루어지고 점차 뜨겁게 달구어진다.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다.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닥쳐 당황하기도 한다. 실망과, 좌절, 탄식. 질문이 속출하고 즉답이 나오기도 하고 장고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승패가 결정되기도 하고 하루 해가 저물듯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서서히 한판의 바둑이 끝난다. 온 신경이 곤두선 채 마른 장작처럼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시큼한 땀내가 피부를 적시고 눈알은 충혈되어 있다. 욕탕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온몸이 후줄근하다. 어쨌든 바둑알을 쓸어 담으면 고요가 찾아들고 적막하기까지 하다.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바둑을 두지 않으면 평화롭지 않은가. 왜 구태여 바둑을 배워 그처럼 애를 태우며 매달리는가.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숨을 쉬는 한 인생이라는 열차에 몸을 담고 있듯이 바둑을 두지 않으면 인생이 끝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둑을 두지 않을때의 평화란 바로 인간의 죽음과 같은 것이다. 죽음으로서 삶은 끝나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으므로 살아있는 한 바둑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는 동안, 바둑을 두는 동안 그 속에서 평화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한 평화란 삶 속에서, 바둑 속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 바둑에 그 답이 있을 것인가.
  있지만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못찾을 수도 있고. 어쩌면 찾는다기 보다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할 듯 싶다. 스스로 바둑을 두면서 체득해 가는 것. 마치 스님이 참선을 하듯이 화두를 걸어 놓고 그것에 파고 들면 되지 않을까. 물론 화두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승패를 초월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와 자유>같은 걸로 하면 어떨까.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 같은 것이니까. 수식어를 덧붙인다면 <진정한 평화, 영원한 자유> 정도로 하면 좋을 것 같다. 화두가 없으면 아무런 목표없이 마구잡이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

  화두를 정했으면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서 질주해야 한다. 온갖 잡념이 방해하는 것을 뚫고 사력을 다해야 한다. 바둑을 두며 흑백의 싸우는 와중에 일어나는 무수한 순간들을 극복해 나가듯이 말이다. 흑백의 논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추어진,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생성하는 기운을 느끼며 또다른 차원의 세계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바둑판 위에 공중 부양이 되어 한판의 바둑을 관조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흑과 백을 초월한 그 무엇. 오청원은 바둑을 조화라고 했는데 그와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 더 한 차원 높은 그 무엇이 아닐까. 조화는 다른 말로 하면 중용, 중도 같은 것인데 단순히 중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단지 서로 간섭하지 아니하는 방관자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흑과 백, 음과 양, 선과 악, 물과 불을 구분하지 않고 대립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4차원의 세계같은 것이 아닐까. 아무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세계. 생사를 초월하는 것.

  그 출발점은 바로 내 속에 있을 것이다. 내 속의 자아를 발견하고 그 씨앗을 키워 바둑의 세계를 통해 모든 대립되는 것을 뛰어 넘어선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갈등과 모순, 미움과 증오가 한낱 부질없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바둑판 반상 자체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감도는 무애의 세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곳이 우리가 진정 바라는 평화와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둑, 그 신비한 숲을 오늘도 나는 헤쳐 나가고 있다. 그러나 반상의 돌에만 눈이 어두워 발정난 개처럼 헉헉거리고 있다. 흑과 백, 음과 양. 이것을 욕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아 그래 난 바둑의 진리를 깨치기엔 아직도 먼 당신인지 모른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오늘, 지금 당장이라도 바둑돌에 손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가다 보면 또 깨지고 일어나고 하다 보면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로또에 당첨되듯이 뜻밖에 우연히 무애의 세계에 들어갈 지 모르니까.

  그래서 오늘도 난 눈이 튀어 나올 듯이 바둑판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뜬구름 잡듯 잡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오줌 마려운 것,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귓구멍이 먹었냐고 바둑하고 나가 살아라고 마누라가 욕하는 것을들어가며 바둑판을 꿰뚫어 보고 있다.

  진정한 평화와 영원한 자유를 갈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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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  2014-08-19 오후 6:17: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 자체도 어려운데 거기에서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며 불가
능한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어쩌면 그 과정에서 기끔은 자유를 찾았는지도 모르죠^^ 저
는 거의 혼자서 골프를 합니다. 스코어에서 해방되어보려고, 마음을 비워보려고 ...그런데
오만가지 생각들이 자꾸 방해를 하더군요. 그래도 그렇게생각하는만큼 가끔은 무아를 경험
하기도 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곰소가는길 |  2014-08-20 오전 9:14: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줄, '자유를 갈구'는 의도적으로 이해 하겠습니다.  
팔공선달 |  2014-08-20 오후 1:09: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는 님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나의 관점에서 최상의 수로 상대의 응수에 맡깁니다. 즉답으로 환희와 절망을 피하고 뒷짐을 집니다. 변화의 여지를 20~30% 정도 남았을 때까지. 그리고 환경에 따라 미친개가 되기도 하고 쇠그물로 슬슬 몰아가기도 하다가 인사로 마무리 합니다. (잘두었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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