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나리던 고모령

꿈인지도 모르는 추억의 매듭 매듭이 잠자리의 끝자락에 매달렸다가 왜 그처럼 생경하게 나타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참을 환각 속에서 해매이다가 의식이 돌아오고 꿈을 꾼 것 같다는 느낌을 만나게 되는데도 추억의 자락들은 스크린의 잔상처럼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평생 통 털어서 몇 십번도 안 되는 꿈을 꾸어왔던 것 같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많이 꾸는데도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느낀 적이 별로 없어서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꿈이 없었던 과거. 그냥 현재에 집착했고 그것을 헤쳐 나가는 데에 열중하느라 남보다 적은 잠을 잤었다. 하루 4-5시간밖에 자지 않는 습관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매일 꿈을 꾼다. 어느 날은 두세 번 꿈속을 해매고 다니는데 모두가 과거의 편린들뿐이다. 학창시절 군대시절 사회초년병 시절 심지어 엊그제 일어난 일들도 꿈으로 리바이벌 한다. 잠 속의 꿈인지 잠이 덜 깬 상태에서의 환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처럼 스토리가 장소까지 바꾸어가며 이어져간다. 나이가 들면 그런 것일까? 

어제 새벽에도 그랬다. 얼마 전 미용실(이발소)에서 베트남 여자들을 만났더니 기억하기도 싫은 과거의 한 자락이 쌀쌀한 공기를 타고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줄곧 한 인물만 나타나는데 그는 바로 월남에서 잠시 알고 지냈던 H하사.
        

장소는 12중대본부, 나는 관망대의 그늘 밑에서 H하사에게 유행가를 배우고 있었다. 중대는 연대 작전에 참가했기 때문에 잔여병과 작전 중에 충원된 신병들뿐, 병영은 오수를 즐기는 밀림처럼 조용하다.

밤에는 보초를 서고 낮에는 진지보수공사나 병장기 손질을 한다. H하사는 며칠 전에 충원된 신병.  나는 군청 파견요원으로써 월남군 및 미군MACV와 긴밀한 연락망을 유지해야함으로 작전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중대에서 보내고 있었다. 작전 출발 전 중대장의 명령도 있었지만 잔여병 대장인 G상사의 후속 명령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체 음치였다. 다른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한두 번만 들어도 음률을 따라 흥얼거리는데 나는 도대체 수십 번을 들어도 박자가 틀리던지 음정이 틀리기 일 수였다.  악보를 보고 눈으로는 “미”와 “쏠”을 구분할 수는 있는데 발성은 구별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 반올림 그리고 1/3박자 4/4박자 등의 박자들.... 노래 하나 익히느니 책을 한 권 외우는 게 머리가 덜 아프다. 아! 악보를 보고 발성을 하는 것은 퍼즐의 미궁 속.... 

그런 내가 H하사에게 노래를 배우겠다고 하는 데는 그가 부른 노래가 그때까지 들어본 어느 노래보다 가슴을 울린 탓도 있었지만 “비 나리는 고모령”이란 가사가 나의 처지와 너무나 비슷하여 욕심을 내게 된 것이었다.

“제길, 그 정도면 군악대나 갈 일이지 이런 소총부대는 뭐 하러  와”
 
“누가 오고 싶어서 오나? 못 배우고 빽 없고 그러니까 밀려온 거지”

“알았어.  진지공사나 빨리 끝 내. 오늘 중으로 중대장 실 끝내라구.”               
“넷 알았습니다. 고참님.”

지하 벙커로 된 중대장 실은 비가 새고 있었다. 이번 작전 기간 중 잔여병에게 부여된 진지보수공사 내에는 중대장 실 보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통나무로 된 석가래 위의 샌드백과 루핑(기름종이)을 걷어내었던 것이다. 새로운 루핑을 깔고 마대를 쌓는 작업이 그날의 임무였다.

병사들이 황갈색 피부와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며 모래를 담은 마대를 던지고 받고 그리고 석가래 위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 땀이 물 흐르듯 흘러 어께들이 번들 번들거린다.  가시 넝쿨 밀림을 뚫고 베트콩과 전투를 하고 있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땀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아! 평소에도 이렇게 열심일 줄은 미처 몰랐어.” 시원한 냉수를 마실 잠시의 휴식시간에 H하사는 탄성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이미  벌겆게 익어 있었다. 신병의 표가 물씬 나는 그는 덩치에 맞지 않게 헉헉거리고 있었다. 

“작전을 나가보았어야 알지. 왜 이렇게 열심인 줄을. 여기는 무슨 일이든지 생사와 관계되는 곳이야. 개을리 하거나 민첩하지 못하면  바로 죽는 것이니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들 긴다고....월남 신병과 고참은 작전 나가면 금방 푯대가 나지. 야, 신병들,  잘 알아듣도록!” 
          

지붕은 거의 반쯤 완성되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하루만에  충분히 끝날 것이다. 그러면 오늘 저녁부터 노래를 배울 수 있겠지, 그러나 조금 후에 하늘은 갑자기 먹장으로 덮이고 우박 같은  빗줄기가 천지를 뒤 삼켜버렸다. 천둥과 번개가 머리 위에서 작열한다. 역시 열대지방의 하늘은 믿을 수가 없다,

일행은 휴게실로 피신을 했다. 한 가운데 탁구장이 덩그라니 놓여있고 벽에 붙은 책꽂이에는 고국에서 보내온 철 지난 월간지나 잡지책들도 몇 권 있다. 남정님의 사진이 비 맞은 암  닭들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뛰어 들어와 바지나 팬티 가랑이를 툭툭 털고 있는 병사들에게 요염하게 웃고 있다.        

“비 오는 날엔 공치는 나-ㄹ, 뽕 따러 왔다가 임 보는 나-ㄹ"

“야, 임마, 전쟁터에서 공치는 날이 어딧어?”

“그럼 임 상병님이나 계속 하시던지....”

휴게실 함석지붕을 내리치는 빗줄기 소리 속에서 갑자기 어두워진 실내가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른다. 

“그러지 말고 H하사님 노래나 좀 듣자고....”

일동은 모두 탁구대 가장자리에 걸상을 옮겨놓고 박수를 친다.어떤 병사는 탁구 배트로 탁구대 다리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H하사는 못이긴 척 하고 일동 앞으로 나선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적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량 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헤어지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나는 당시 이 노래가 누구의 노래인지도, 제목도 몰랐었다. 다만 H하사의 음량에 감동했다.그의 목소리는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가는 리듬의 자락에 슬픔과 애환이 잔뜩 묻어 있는 것만 같았다.

모두는 숙연하게 앉아 어둑해진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박자를 맞추던 손들을 잠시 멈추며, 그 손을 어디다 놓아둘 줄 몰라서 무엇인가 잘못하다 들킨 어린애처럼 꼬무락거리기만 한다.

나는 고국을 떠나던 날 노모를 여의였다. 시간으로 봐서 용산역을 출발할 때쯤이었다. 어둠속으로 밀려가는 기차의 창 쪽 의자에 앉아 희끄무레한 가로등 불빛에 멀어져가는 스레트   지붕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부음은 2개월 쯤 뒤 진지에서 보초를 설 때 누군가 전해준 첫 번째 편지에서 읽었었다,  석양이 붉게 물든 이국의 저녁 하늘에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렸던가? 졸병 시절 집에 가고 싶어 누구도 싫어하는 화생방 교육을  받은 뒤 며칠간의 말미에 잠시 뵈었던 얼굴, 마흔 두 살에 낳은 가냘프게만 보이는 장성한 아들의 손을 잡고 좀처럼 놓아주시지 않았던  육 십 줄 노파의 얼굴은 그렇게도 많은 주름이 잡혀있었지. 나는 살아 돌아가야 해. 임종도 못 지켜 드린 어머님 묘소라도 찾아가 봐야 해.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빗줄기는 어둠이 찾아올 때 멈추었다. 하늘이 개여 오히려 날이 밝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기권에 머물러 있던 먹장구름들이 모두 빗물로 쏟아져 내려버리니 달과 별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중대장 실 벙커는 천정과 지붕이 반 쯤 밖에 덮여있지 못했다. 내일 한 나절 정도는 작업을 더 해야 한다. 나는 군청과 통화를 끝내고 하늘이 보이는 중대장 실의 장의자에 몸을 눕혔다, H하사는 좀 전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가 순찰을 나갔다.  

십자성  별은 어디 있나?  어디서 나왔는지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이  밤하늘에 매달려  반짝인다. 어머니의 쪼글쪼글한 얼굴이 별들 사이에서 어른거린다.  멀리 밀림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벙커 안을 맴돌고 지나간다. 어느덧 일 년 반이 되었구나.  낮에 나도 샌드백을 몇 개 집어 던졌더니 어깨가 뻐근하다.  

 
“우르릉 꽝 꽝”

땅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불꽃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M16 소총을 집어들고 중대장 실을 튀어나왔다 . 중대장 실 계단을 오르는 순간 눈앞에서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워 올랐지만 나는 생각할 겨를 없이 중대본부 벙커를 향해 높은 포복으로 달려  나갔다.  중대본부 벙커 지붕 한 가운데 우뚝 새워진 무선 안테나가 무엇인가에 맞아 크게 휘청거렸고 귀가 얼얼할 정도의 굉음과 함께 화염이 피워 올랐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거의 미끄러지다시피 몸을 굴렸다.  누군가가 입구 계단 벽에 기대여 거총자세를 하고 있다.

G 상사가 무전기를 들고 악을 쓰고 있었다.

“전원 경계 초소로 뛰어가라!”

“경계병들은 조명 타식을 쏘아 올려라”
무전기 속에서 계속하여 들리는 폭음소리.

“관망대, 관망대, 어떻게 된 거야?”         
“화기병은 박격포 발사 준비!”

“목표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격하지 말라!

그런데 주위는 의외로 조용하기만 했다. 조명 타식이 수없이 올라갔지만 외곽 철조망에선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날아오는 폭탄도 그 이상은 없었다. 포대에서 쏘아대는 포탄만 암산의 어느 지점 숲 속에 쏟아지고 있었다, 중대 잔여병들은 긴장 속에서 3-40분을 더 기다렸다.

나는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밖으로 나와 관망대로 올라갔다. 중대본부 막사 무선 안테나가 반으로 꺾이어졌고 지붕엔 몇 장의 샌드백이 터져 희끄무레한 모래를 토해내는 흉물스런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뜨였다.  

“각 소대 순찰대만 호 밖으로 나와 상황을 파악하라!”

“본부, 관망대, 마, 마대포입니다,”

“뭐, 마대포?”

나는 그때야 중대장 실을 뛰쳐나오는 순간 바로 옆에서 “퍽”하고 무엇인가, 상당한 무개의 물체가 땅에 떨어진 소리를 기억해냈다.              
 

중대장 실 벙커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난데없는 회색 천으로 만든 자루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주둥이의 끈이 풀어져 모래와 TNT 장약 그리고 철판조각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색깔만 같다면 지붕에 쌓아놓은 샌드백과 거의 비슷해보였다. 크기는 약간 작아보였지만 도대체 이놈이 어떻게 하여 이곳에 떨어져 있는 것일까? 순찰대들이 몰려와 의아스러워 했지만 나는 이미 그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야자수 나무기둥을 이용한 투포환 포탄- 나무 끝에 폭탄을 장치한 마대주머니를 묶고 그 나무를 목표물 반대편 땅바닥까지 휘어 순간적으로 놓아버리면 마대 주머니는 목표물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게 되어 있는 원시적인 무기. 한국군 대부분이 생면부지인 무기인 것이다.   

모두 여덟 발이 떨어졌는데 여섯 발은 교통호와 철조망 근처에 산발이었고  한 발은 중대본부 안테나를 강타하였으며 나머지 한 발이 중대장 실 바로 옆에 떨어졌는데 불발이 된 것이다.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지만 중대본부 벙커 지붕과 철조망과 교통호 사이사이에 구덩이를 파다 둔 것처럼 땅바닥이 뒤집혀져 있었다. 적들의 대담성과 원시무기를 이 정도 다룰 줄  아는 기술력이 대단한 것 같아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중대장 실 보수공사는 그날 중으로 끝을 맺었다. 샌드백을 다섯 겹 이상 쌓아 놓았으니  155MM포탄이 떨어진데도 끄떡없을 터였다, 내가 그날 밤 그 곳에서 잠시 취침을 했다는 사실은 H하사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날부터 며칠간 H하사는 그 곳에서 나에게 “비 나리던 고모령”을 가르쳐야 했다.               

나는 생애 최초로 그렇게 많은 노래연습을 했었다. 악보를 볼 줄 모르니 H하사의 몇 십번도 넘는 교습 음정을 모두 외어버려야 했다.

“ 맨드라미 피고 지는.......”

“그게 아니고 맨드으라아미 피-고- 지이는.....” 

항우의 병사들에게 사면(四面)에서 파고들었던 초가(楚歌)처럼 처연한 고국의 노래.

“......차자아 가려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