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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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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모텔
2014-07-19 오후 12:17 조회 4581추천 5   프린트스크랩



  H시 동쪽 외곽에는 모텔이 여러개 있다. 아마도 열 개는 족히 되고도 남을 것이었다. 오륙년전에 한 두곳 들어서더니 일이년 사이에 갑자기 대폭 늘어났다. 그만큼 영업이 잘 된다는 반증이었다. 지금도 한 두곳에서 모텔을 새로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역 주민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모텔이라는 것이 남녀간의 불륜의 상징처럼 여겨져 일손이 바쁜 농촌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슨 지랄을 떠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거였다. 이러다가 모텔촌이 되는 건 아닌지, 동네 인식이 안좋아지면 땅값도 떨어질 거고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허가는 왜 자꾸 내주는지 아무나 신청하면 내주는건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요즘은 또 시설이 첨단화되어 무인모텔이라고 해서 차가 방앞까지 들어가 계산도 자동으로 하고 볼일을 보고 방 밖으로 바로 차를 타고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가 들락거렸는지 모를 정도로 보안이 잘 되어 남녀간의 밀회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였다. 사실 모텔이라는 말이 원래 모터와 호텔의 합성어로 자동차 여행자가 숙박하기에 편하도록 지은 여관인데 비뚤어진 성문화 때문에 왜곡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바둑 모텔>이 들어선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었다. 바둑과 모텔. 어디를 봐도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신문, 방송등 언론 매체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궁금증은 가중되었다. 바둑과 관련된 무슨 불륜을 저지를 만한 소재가 있는지 실내는 어떻게 꾸며져 있는 것인지 이곳을 어떤 사람들이 찾는 것인지 의문 덩어리였다.

   나는 지역담당 직원이어서 모텔을 들어가 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 관내 동향도 파악할 겸 바둑모텔을 찾았다.

   그런데 내가 의혹을 품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바둑 모텔은 다른 일반 모텔과는 입구부터 달랐다. 투명한 유리문으로 밖에서도 안쪽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5층 건물이었는데 창문도 모두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건물 사방의 넓직한 주차시설은 가슴이 탁 트일 정도였다.

   현관 입구 안내석에서 미모의 아가씨가 일어나 상냥한 말씨로 깎듯이 인사를 했다. 어느 특급 호텔에 온 기분이었다. 나는 얼떨떨해 하며 실내 구경을 좀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 아, 네. 그러세요. 저쪽 의자에 앉아 차라도 한잔 하시구 편하게 둘러보세요.

   나는 안내원의 얼굴이 눈에 부실 정도여서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1층 로비 한쪽에는 응접용 탁자와 의자, 쇼파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탁자 옆에 정수기와 셀프로 타 먹을 수 있는 커피, 녹차가 있었다. 그 옆의 책꽂이에는 건물 안내 팸플릿이 꽂혀 있었다. 팸플릿에는 모텔의 설립 취지, 건물의 구조와 배치도, 이용방법 등이 사진을 곁들여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간혹 한두개층 생색만 내고 나머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은 건물 전체가 바둑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둑회관이라고 해야 좋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바둑모텔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그 의중이 궁금하였다.

   커피를 마시고 실내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 벽면에는 유명 프로기사의 대국 모습을 찍은 사진과 캐리커처 그림이 걸려 있었다.

  2층은 바둑 역사관이었다. 바둑의 생성과정을 멀티미디어 화면을 이용하여 시청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천연색으로 조화를 이룬 조명이 은은하게 실내를 휘감아 돌았고 양쪽으로 이어진 전시대에는 바둑의 발자취가 담긴 각종 서적과 유물들이 놓여 있었다. 바위에 새긴 바둑판 형상, 신선과의 대좌, 썩은 도끼자루, 중국의 요순 임금과 그 아들 그리고 이름모를 북방민족이 바둑두는 모형, 우리 옛 선비들이 바둑두는 모습 등이 실제로 바둑을 두는 것 같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곳에 같이 앉아 바둑을 두고 싶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몇걸음 더 가니 옛 선인들과 바둑을 두는 코너가 있었다. 신선과도 둘 수 있었다. 신선 모형을 한 탈이 있었는데 거기에 얼굴을 부착하고 자신이 신선이 되어 상대방과 바둑을 둘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신선 뿐만아니라 옛날과 현재의 유명 기사들의 탈을 만들어 바둑체험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당연히 기념 사진을 찍고 싶었다. 옛 선인들과 바둑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 외 밖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한 자료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이런 귀한 것들을 수집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구 한쪽에는 바둑용품 판매소가 있었다. 바둑판, 돌, 통과 바둑을 소재로 한 다양한 액세서리가 진열되어 있었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제품들이 많았다. 모두 한 개씩 갖고 싶은 것들이었다. 바둑을 두지 않아도 장식용으로 사고 싶었다.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은 대국장이었다. 입구에는 역시 미모의 아가씨가 인사를 했다. 바둑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대국장은 물론 금연구역이었다. 평일 낮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4층은 강당이 있고 바둑연구실이 갖추어져 있었다. 5층은 객실이었다. 객실은 호텔급에 못지 않은 시설이었고 숙박료는 2인용 1실이 5∼6만원에 불과했다. 옥상은 전망대 겸 정원을 꾸며 놓아 도시의 작은 소공원에 온 느낌이었다. 둘러본 소감은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바둑모텔이라기 보다 바둑궁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오직 바둑을 위한 모든 것이 깃들어 있었다. 이런 건물을 도대체 어떤 사람이 지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안내양에게 어떤 분이 사장님이냐고 물었다. 안내양은 안쪽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들어가보라고 했다. 그곳은 관리실 팻말이 붙어 있었다. 문을 두드리니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관리실은 일반 사무실과 다름없었는데 다만 한쪽 벽면에 CCTV 화면이 차지하고 있었다. 각층마다 설치된 CCTV를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이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맞은편 응접의자에 중년 사내가 마침 바둑대회를 중계하는 TV를 보다가 나와 눈길이 마주쳤다. 첫눈에 사장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 어서 오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사내는 어떻게 왔느냐고 묻지 않고 먼저 도와주겠단다. 나는 동사무소 지역담당 직원이며 관내 동향을 파악할 겸 들렀다고 했다. 바둑에 관심이 있어서 간판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도 했다. 사내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바둑모텔의 설립자겸 관리인이라면서 명함을 한 장 주었다. <바둑마니아 이국영. 현대인의 보금자리.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바둑여행은 이곳에서> 명함에 적힌 문구였다. 모텔의 건물 사진이 배경으로 담겨져 있었다. 사장실이 따로 없느냐는 물음에 그렇다면서 관리실을 겸용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 직원은 열명 미만이지만 고객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 한번 오신 분은 다음에 다시 꼭 오도록 한다는 생각에서요. 특히 객실은 숙박 여행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지요. 굳이 바둑을 두지 않더라도 인근에 가볼만한 명소가 적지 않거든요. 맛집도 괜찮은 데가 많아요. 바둑도 두고 주변 관광도 하고. 관광과 바둑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지요.

   - 바둑에 모텔이라는 이름이 좀 어색하지 않나요?

   -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바둑 클럽이라고 하면 무슨 나이트 크럽을 연상할 수도 있는 거고, 바둑 사랑방이라고 하면 무슨 사랑이나 하는 불순한 곳으로 여길 수도 있죠. 모텔은 사람들이 자고 가는 곳이고 남녀가 함께 쉬어 갈 수 있는 거잖아요. 속 내용이야 잘 모르지만. 잘못된 이미지를 불식시켜 보자는 취지도 있지요. 주변 모텔의 나쁜 이미지 때문에. 바둑으로 만회해 보자는 생각도 했어요.

   - 어려운 선택이었을 텐데요.

   - 그랬지요. 나도 장사물을 먹고 살아온 놈인데. 하지만 바둑으로 세상을 정화해 보고자 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요. 남녀가 모텔에서 노닥거리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잖아요. 자기들끼리 사랑을 표현하는 장소가 모텔이라는 것 뿐 내용만 건전하면 되니까요. 불륜이 아니라면 말이죠.

   - 그래도 바둑과 연관짓는다는 것이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네요.

   - 바둑도 따지고 보면 흑과 백, 음과 양, 남과 녀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요.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치열한 사랑 싸움이라고나 할까. 돌이 부딪히고 거기에서 불꽃이 튀기고 열정이 피어 오르고 싸움의 절정에 이르러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그리고 승패가 결정된 뒤 찾아오는 평온함. 남녀가 오르가즘에 도달하고 난 뒤의 허무같은 것. 뭐 그런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접전을 해서 불꽃을 튀기고 싶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이지요. 인생이 그런 거고 바둑이 그런 거지요. 손쉽게 끊어버릴 수 없는 중독성이 배어 있지요. 한데 바둑은 스트레스의 중압감을 해소시키는 작용을 하지요. 인생의 카타르시스 공장이라고나 할까. 바둑 모텔도 그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될 겁니다.

   사내는 바둑에 관해 상당한 조예가 있어 보였다. 바둑으로 주변을 정화시켜 보겠다는 것, 모텔의 나쁜 이미지를 바꾸어 보겠다는 것, 건전한 정신수양에 바둑만한 것이 없다는 것 등 자신의 신념을 가감없이 토해 내었다. 나는 내심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심정이었다. 정부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중인 4대악 근절에 변태적인 성문화도 포함되어 있어 직원회의때마다 수시로 유해 환경요소 척결을 강조하는데 바둑이 좋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나올 수는 없었다. 사내의 바둑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3급 정도 둔다고 하였다. 내가 1급이라고 하니까 한수 배우겠다며 바둑판을 끌어 당겼다. 두점을 놓으려는 걸 선으로 두자고 했다. 사내는 속기로 두어 나갔다. 상수인 내가 따라 가기에도 숨이 찰 정도였다. 결과는 내가 반면 여섯집을 남겼지만 사내의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마치 마라톤을 백미터 달리기하듯이 뛰는 듯 해서 도무지 사내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차 있는지 궁금하였다. 사내는 아쉬운 듯 다음에 또 놀러 오라며 현관 입구까지 배웅해 주었다.

   나는 담당 지역에 바둑 모텔이 들어선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모텔 건물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아마도 올 여름 휴가는 먼 곳으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가까운 바둑 모텔에서 가족과 같이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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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  2014-07-20 오전 12:01: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런 곳 한번 가보았으면......  
팔공선달 |  2014-07-20 오전 7:01: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과 연관된 애들 놀이터와 가족 야외 바메큐장도 주차장 옆에 따로 마련하시지...^^ 잘 보았습니다.  
곰소가는길 |  2014-07-22 오전 7:05: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꿈 꾸는 건 자유이다. 누구도 말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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