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이 시작된 6월 29일부터 이곳 꾸라이 지역은 비가 내렸고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 대기 온도가 상승할 대로 상승하여 집안에 있어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줄줄 흘렀었다. 어찌된 셈인지 바람이 없었다.  해가 떨어진지 오랜 저녁시간까지도

위층 서재에 앉아 있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할 수없이 몰에 가서 “미스트랄”이라고  이름 붙여진 선풍기를 하나 샀었다. 물통이 있어서

냉장고의 얼음물을 부우면 바람개비가 냉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그런대로 아이디어가 돋보이

는 상품이었다. 그런데 그 것도 서재 전체를 시원하게 하지는 못하였다. 할 수 없이 메이드의

생활반경을 좁히더라도 아래층에서 생활하는 수밖에.

확실히 아래층이 그런대로 시원했다, 부엌과 응접실의 칸막이를 아예 터버린 덕분으로 골프

장 아래 벌판으로부터 이따금씩 불어오는 미풍이 아래층을 약간이나마 서늘하게 만든 모양이

었다. 요즈음은 쓰레기 하치장으로부터 풍겨왔던 오물 냄새도 없어졌기 때문에 옆벽에 내놓

은 출입문도 활짝 열어놓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다시 땀이 흐르는 것은 몇 년

만의 가믐 탓인가? 할 수 없이 “미스트랄” 선풍기를 아래층으로 끌고 내려왔다.

내가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가정부 리아는 외부에서 집안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그리고 가능한한 이층으로 올라가거나 마당으로 나가 다른 일을 한다. 남편

이외의 남자와 밀페된 공간에서 단 둘이 있는 것은 이슬람에서도 금지되어 있다. 여자는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는 미리 이웃을 불러 증인을 세운다. 나

역시 이 점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의심받지 않도록 행동에 주의한다. 그래서 식사 시간 이

외는 가능한한 이층 서제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구한 가정부가

생각치도 못한 종교법이나 관습법에 의해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6월 27일 리아가 퇴근하면서 “내일은 못 나온 것 알지요?” 하였다. 그 때야 일주일 전부터

이야기해왔던 그녀의 딸 푸뜨리의 100일 상(喪)이 28일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푸뜨리는 리아의 막내딸로 인도네시아 자바섬 욕가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리아가

시간만 나면 보여 주었던 휴대폰 속의 사진처럼 하얀 피부에 예쁜 얼굴의 소녀였다, 리아나

리아의 남편도 검은 피부인데 어찌하여 하얀 피부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요즈음 동남아시아

여인들도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푸트리도  그중 한명인 모양이었다. 그래

서 그녀의 아명은 뿌띠(하얀, 하얀색)였다. 그녀는 공부도 잘하여 장차 자카르타 국립대학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학업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푸뜨리는 부모뿐만이 아닌 온 가

족 친지들의 희망이었다.

푸뜨리는 몇 몇의 친구들과 같이 오토바이로 통학을 하였다. 어느 날 그러니까 100일전 그녀

는 평시와 다름없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가방을 챙기면서  미리 메모해

둔 몇 가지를 입으로 뇌까려가면서 도로의 갓길을 따라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뒤에서 몇 대의 차를 추월해온 유조차에 의해 그녀는 주검으로 아스팔트 위

에 널브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

그날 오후 6시쯤 저녁을 준비하려다 전화를 받으러 방으로 들어간 리아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였다,  TV를 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뛰어 들어가 보았더니.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양

손으로 베개를 치고 있었다. 나는 전에 야띠가 그랬던 것처럼 복통이 일어난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이내 눈물이 범벅이 되어 내 손을 잡고 자지러지는 그녀를 보고 무엇인가 다른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뿌띠 뿌띠, 디아 띵갈! 디아 띵갈! (뿌띠가 떠나갔어!)    

“아빠? 푸뜨리 머닝갈(깐)?”(뭐라구? 푸뜨리(뿌티)가 죽었다고?)

“예, 예, 디아 마띠, 마띠(예, 예, 그녀가 죽었어요, 죽었어요.)

얼마되지 않는 시간에 그녀의 남편이 달려왔을 때에는 그녀는 이미 혼절을 한 뒤였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제사를 지냈다. 근처에 있는 인둔(인도네시아 인)들이 일주일에 걸쳐

조문을 왔다. 조문객들은 이맘(기도를 선도하는 자)의 낭송을 따라 하기도 하고 일정한

법칙이 있는 몸짓으로 메카를 향해 절을 하기도 했다. 낭송은 “죽은 자”를 위한 쿠란의 구절

같고 언어는 음률이 섞인 아라비아어인데도 모두 일사불란하게 몸짓을 취한다. 누구나 “죽은

자”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음으로.          
 

일행은 음식을 먹으면서 리아의 푸뜨리에 대한 넉두리를 듣는다, 그들은 푸뜨리가 “수루가

(천국)에 들어가 뚜한(하느님)의 품안에 있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이국땅에서 고국에서

딸이 죽었어도 그곳에 가보지 못하는 리아 부부의 서글픔이 비단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기에

온 방안은 한동안 비통에 쌓인다.      

6월 29일 날  리아는 부석부석한 얼굴로 출근을 하였다. 어제 무사히 100일제를 지냈다고

하면서 하루 휴가를 준 것에 감사함을 표시했다. 나는 “사마 사마” 라고 답했다. 말레이시아

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뜨리마 까시”인데 그때 대답하는 말이 거의 공식적으로 “사마

사마”이다.  이 말은 “나도 역시(감사합니다)”란 뜻이다.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라는

우리말과 같은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말은 상대도 심적이나 물질적으로 어떤 이득을 얻었을

때 표시하는 말이며 그렇지 않을 때는 “아냐, 괜찮아” “뭘, 그걸 가지고...”라는 정도의 답변

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말레이어는 거의 무조건 “사마 사마”이다. 아마 “당신의 감사하다는

인사에 나도 감사함을 표합니다.”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무슬림의 언어인지 말레이

시아의 언어인지도 잘 모르겠으나 입에 발린 언어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이러하면 인류의

평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리아는 그날 퇴근 때까지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배고픔(가난)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오와 오후 세 시 경 마스지드(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라잔(기도를 권하

는, 또는 알리는 이맘의 독경)에 맞추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 한참동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새벽과 퇴근 후 그리고 한밤중에도 그녀는 기도를 할 것이다. 전날의 100일제로 인한 피곤함

을 달랠 사이도 없이 라마단의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계율은 한달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슬람의 계율 중에 가장 큰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기독교나

천주교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과는 다르다.) 이를 어기는 것은

이슬람을 어기는 것이며 가장 큰 죄악이다. 사후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고통 받으리

라.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나니 너희는 항상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새겨들으

라. 알라는 항상 너희 기도에 귀 기울리며 평소에 지은 죄를 사하여주리라.     

뒤뜰의 망고나무가 잎사귀들을 새우고 오랜만에 내리는 빗물에 몸을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