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능과 건능
 

부모의 마음은 하얀 눈과 같을 것이다

온갖 허물을 덮어주고 냉정하면서도 따사로움은

그 어떤 생각도 찍어주고 보듬어 준다.

이제 가을 초입이나 여기의 설경이 평온하다하니

어느 겨울 날 여기를 찾아 백설위에 정조와 같이

부모님을 그려 보심이...

설화.

“백성들에게는 효를 강조하는 왕으로서 내 아버님께는 효도 한번 못하다니……"

평소 정조의 탄식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왕세손이었던 정조 나이 11세 때,

할아버지 영조는 부친 장현세자(장조, 사도세자)에게 비참한 죽음을 내렸다.

뒤주에 못을 박고 큰 돌을 얹게 한 후 손수 붓을 들어 세자를 폐하고 서인을 만들어

죽음을 내린다는 교서를 발표한 것이다.
 
그로부터 8일 후,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어릴 때 목격한 당시의 모습이 뇌리에 떠오를 때마다 정조는 부친의 안타까운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만 같아 늘 죄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임금은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부모님의 은혜를 10가지로 나누지요.

그 첫째는 나를 잉태하여 보호해 주시는 은혜요,

둘째는 고통을 참고 나를 낳아주신 은혜며……"
 
설법을 다 들은 정조는 부친을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고

지금의 화산으로 묘를 옮김과 동시에, 용주사를 창건하여 기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용주사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 날,

능을 참배하던 정조는 능 앞 소나무에 송충이가 많아 나무들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보고

큰 한숨으로 개탄하면서.

"허허 이럴 수가, “

내 땅에 사는 송충이로서 어찌 임금의 아버님 묘 앞에 있는 소나무 잎을 갉아먹어

나무를 병들어 죽게 만든단 말인가.

고통 속에 가신 것도 가슴 아픈데 너희들까지 이리 괴롭혀서야 되겠느냐."
 
정조는 신하들을 시키지 않고 그중 제일 큰 송충이 한 마리를 이빨로 깨물어 죽였다.

그 이후로는 이 일대에 송충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자료참조 글쓴이 편집)

상식이 무너지고 도와 예가 거추장스러운 세상에

지금 우리의 부모는 애완동물보다 못하다

이를 두고 흔히 말하는가.

개만도 못하다고.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부모의 몸과 마음은 유기되고 무지한 자들의 우매함이라 치부하던 일들이

통제라.

이제는 소위 먹물깨나 먹은 싸가지들의 다중 인격 오징어 발에 목 졸린다.

우리는 때를 벼르고 특별한 것을 찾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못한다.

자신이 가장 큰 선물이고 존재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 최고이며

늘 같이함이 무엇보다 절실하나 모르거나 알면서 행함에 소홀하다

우리가 살아서도 보내 드리고도 그리워 할 수 있다면

자신도 살아서 죽어서 뒤따르는 자신에게 그리움을 받을 텐데…….

여기 용주사를 거닐며 그 행차는 화려하나 마음은 헐벗었을 정조를 생각하며

내 마음을 갉아 먹는 송충이를 어금니로 깨물며 어머님께 편지 한 줄 남긴다.

어머님 전상서.

늘 같이 하여도 어머님은 항상 그리움입니다.

아무리 보살펴도 힘없는 어깨에 휘어진 허리는

안타까움 외면하며 속절없이 오그라드는 서러움입니다.

지난밤 꿈엔 어머님이 너무 멀리 계셔서

황망한 마음으로 잠에서 깨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 간 안방에 곤히 주무시는 모습보고

고마움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이젤까 저젤까 하루 같이 가슴 졸이는 나날입니다

하지만 늘 그리 계셔 주리라 무심한 날들을 보내고도 있고요

과연 내가 보살처럼 살다 가신 할머님처럼

어머님께도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니로서. 30여년의 간병 전우로서. 우리인연 또한 예사롭지 않으니

애틋하게 보내드린 할머니를 서로의 가슴에 담아 두었고

이제 원수 같은 아버지와 양해하는 시간으로 천륜의 껍질을 씻어내면

정말 편히 한번 모셔보고 죽고 싶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기다려 주셨듯이

부디 제가 한이 되지 않게 늘 건강하셔서 그날을 다시 기다려 주소서.

곁에 있어도 보고 싶고

행여 그리워질까 두려운

어머니

마음의 불씨만 뒤적이는

부지깽이는

오늘도 마음 같지 않은

사래 짓이

또 다시 불효가 되고

속절없이

껍질만 검게 그을립니다.

비록 얻는 것이 없어도 쉬 잊어 버려도

언제나 반성하는 이 시간이 좋다

그래서 나는 산사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제 산사기행은 어느 날 숙명처럼 다가 온

내 인생의 해우소가 되었다.

2011.9.18. 용주사에서. 法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