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닭의 웃음소리

지난 가을에는 너무 많이 매달린 열매에 무게를 못 견뎌 가지가 찢어진

양氏네 고조부(高祖父)께서 심으셨다는 뒤꼍에 은행나무는

백년이 훨씬 넘은 나이 임에도 천년 세월을 보고 가는 나는 아직 젊은 나무라고

어깨를 쫘 아악 펴고 시위하듯 그늘을 펼치면 꽤나 크고 넓었다

아무리 찌는 삼복(三伏) 땡볕 더위에도 창고 옆에 붙여놓은 은행나무 넓은 그늘아래

평상에 들면 에어콘 바람이 별로 부럽지 않은 자연의 선선함으로 땀 들이기가 쉬웠다

은행나무 그늘아래서 벌인 복달음의 술잔은 별이 드문드문 희미하게 뜨던

초저녁 까지는 빠진 사람 기다린다고 더러 눈치도 보며 천천히 돌다가

뜰 별들이 모두 제자리를 차지한 한밤으로 기울자 빠른 맴을 돌며 바빠졌고

술잔과 함께 돌던 동네 사람들도 모두 취해 버렸다

“등빠리가 지 반 토막만한 놈한테 그 큰 노무 시키가 쭉 뻗어버리니까 난리가 났지!

딱 한방 이였어 내가 작아도 통 뼈 거던!“

과연 그랬을까?

지나가는 개새끼도 혹시 쫒아와 물지 않을까  지레 겁을 내는 순배 형이

사람을 쳐본 일은 정말 있을까?

한심해 하는 형수 눈을 실실 피해가면서도 해묵은 헛소리 무용담을 늘어놓는걸 보니

순배 형은 술에 떡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간이 팅팅 붓는 병증이 또 도진 게 틀림없다

뻔한 얘기에 억지로들 맞장구는 치고 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 소리가 나왔으니 이제 술판은 파장에 가깝다는 얘기다

흩어질 준비로 엉덩이들이 들썩들썩 하고 있는데 평상에서 조금 떨어진

창고 앞에 양氏가 홀연히 땅에서 솟아 오른 장승처럼 우뚝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기척도 없이 들어와 서있는 양氏의 모습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흡사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전하고 돌아온 병사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천근이 매달린 발을 떼려고 기를 쓰는 사람처럼 다리를 부들부들 떨어대더니

이내 뭔 봉투 하나를 들고 있는 손마저 와들와들 떨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좋아하는 왁자한 술판을 앞에 두고 오지도 못하고 떨고 있는

그 모양새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데 더 더욱 이상한 것은

겉모습은 참담함이 뚝뚝 흐르고 있는데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눈에서는 맹수처럼 불을 훅훅 뿜어가며 어서 오라고 여럿이 손짓을 해대도

아무 대꾸도 없이 그냥 노려만 보고서서 있는 것이다

“으째 이리 늦으셨소!

형님 싸게 잔부터 한잔 받으시오!“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망연히 서 있는 양氏를 달래본다고

공氏 동생이 웃음을 잔뜩 비벼 술잔을 쥐어주려던 그 찰나

한참을 맥을 놓고 그렇게 서있던 양氏가 들고 있던 봉투를 가슴에

꾸깃꾸깃 쑤셔 넣는가 싶더니 동시에 으아!! 하는 단말마의 비명 같은

고함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창고 문 옆에 세워져있던 긴 괭이자루를

날쌔게 집어 들고는 평상을 향해 총알같이 뛰어왔다

양氏에게 다가가던 공氏동생이 기겁을 하며 들고 있던 잔을 냅다 던지고

정신없이 튀었고 평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영문을 물을 새도 없이

신도 꿰지 못한 채 넋을 잃고 맨발로 부랴사랴 사방으로 여우만난 토끼처럼 뛰쳐나갔다

산 돼지 뛰듯이 씩씩 거리며 쫒아와 술상을 괭이로 내려찍고 얼어붙은 놈처럼

다시 양氏가 우뚝 서버린 일은 어어! 하는 눈 깜짝 할 순간에 벌어졌고

기절을 하고 몸을 피했던 사람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바라본 상황은

충격을 넘어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고 있었다

눈알이 십리는 튀어나가게 만든 그 난리 북새통에 평상 한 쪽에

양씨宅이 그림처럼 초연히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양씨宅의 뜻 밖에 행동도 의아했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양氏 오면 준다고 남겨놓은 제일 커다란 삶은 닭이 놓인 술상으로 가더니

그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는 양氏가 주머니를 뒤져 봉투를 열더니

무슨 색실 같은 것을 꺼내 닭다리에 정성스럽게 묶고 있는 모습 이였다

제(祭)를 올리는 사람처럼 한참을 그러고 고개를 떨구고 묵념에 들었던

양氏가 언제 무슨 난리가 있었더냐고 양씨宅에게 천연덕스럽게 다가가

닭 덜어먹던 큰 사발 하나를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 양씨宅이 소주 두병을

연거푸 따서 사발이 가득 차도록 콸콸 부어주었다

쉬는 참도 없이 단숨에 마셔버린 양氏가 잠시 뜸을 들이다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생각이야 아니면 당신들 생각이야?”

“순전히 내 생각 이구만요”

남편 앞에서 늘 수그려 나오던 양씨宅 목소리가 아니었다

“각오는 돼있겠지?”

“대굼빡에 돌 맞은디끼 보일 티지만 전처럼은 안살 꺼구만유!”

쥐 죽은 듯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도 귀는 모두 크게 열려있다

“만약 내가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할텐가?”

“갈라 서겄슈!”

한참을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던 양氏가 큰 한숨을 푸욱 쉬고 다시 잔을 들이밀자

양씨宅이 잔을 가득 채웠고 차(茶)마시듯 큰 술 한 잔을 천천히 마신 양氏가

허위적 허위적 어디론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큰 스님들 선문답 같은

알쏭달쏭한 두 부부의 이야기도 벼락 맞은 복달음 술판도 모두 끝이 났다

그날 밤

꼬끼오!! 거리는 닭 울음 대신

꺼이! 꺼이! 울어대는 양氏의 쉰 울음소리가 밤새 그 자리를 채우는 줄도 모르고

놀랐던 뒤풀이에 죽을 만큼 취했던 동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달게 잠에 들었다

전쟁도 폭풍도 끝이 났다

수놈 노릇 제대로 하는 장 닭의 웃음소리로 잃어버린 사람 수놈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일깨워 찾으려했던 가부장(家父長)탈환의 원대한 포부도

투계 장에서 승리한 내 싸움닭이 호기롭게 “꼬끼~오~오” 하고

당당히 외치고 돌아오면 월계관처럼 다리에 걸어주려고 투계장이 있는

진주 바닥을 이 잡듯 뒤져 3代를 이어 꼬아왔다는 장인이 정성들여 만들어준

호화로운 금색 수실의 꿈도 함께 끝이 났다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쏟아 부은 닭장의 그 아름답던 닭들을 깡그리 잡아

복달음의 물에 튀겨 내던져 버린 어처구니 없는 여인의 무모함이
앙칼진 한마디로 단칼에 모두 덮여진 너른 텃밭은 닭장에 흔적을 모두 지우고
김장꺼리를 심기위해 고랑 고랑으로 잘 정돈 되 씨뿌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술 한 잔 마시자고 청한 양氏동생과 텅 비어있는

닭장 자리를 바라보며 평상에 앉았다

“형님!

그 장 닭 참 멋졌죠?“

쓸쓸한 그의 웃음 뒤로 장 닭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쓰고 있던 벼슬을 머리에 쓰는 관을 닮았다고 해서 ‘문’(文),으로

삼지창처럼 날카로운 세 갈래 내 발톱을 보며 ‘무’(武),라 했고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

먹이가 생기면 함께 먹게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춰 하루도 변치 않고 새벽을 알리는 것을 두고 ‘신’(信)으로 보며

닭의 5德을 칭송 할 줄 알던 시절과는 너무 다른 세상을 자네들은 살고 있는 것 같으이

내 비록 전생의 죄를 다 씻지 못하여 짧은 生을 살다 와야 했지만

만물영장의 으뜸이라 칭하는 인간 수컷들이 시절이 하 수상하게 변하더니

치마 입은 놈들이 집안에 들어 누워 턱짓하면 부엌에서 설거지 그릇을 들고도

뭐가 그리 좋다고 히히 거리며 배알 없는 웃음을 웃는지 걱정스러워

발길이 다 떨어지지 않았었네 그려!

허기야 세태 변해 가는 것을 사람 힘으로는 막을 수 없으니

세상의 아낙네들이 들뛰는 이 질풍노도에 세월이 어서 지나가기를 빌어나 줌세

나 이제 가네 잘들 있게나!

허허허!!“

양氏나 내 마음처럼 쓸쓸하고 허허로운 장 닭의 웃음소리가
닭장이 사라진 빈 텃밭을 오래 맴돌다 사라져 버렸다 

꼬끼~오~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