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굿 판 소리

멀쩡히 걸어가던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이 맥없이 핑 쓰러졌다.

의식을 못 차리고 아무리 흔들어대도 굼쩍을 안하니 집안은 난리기 났다.

급살을 맞았다고 건너 동네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다 밤새 죽어라고

북치고 징 쳐대고 진을 쏙 빼가며 굿 하고 나니까 정작 본인은

몇 일만에 간신히 들은 잠을 깨웠다고 화통을 터트리며 하품만 쩍쩍 하고 있다.

이런 황당한 결말이 나오면 모두 머쓱해진다.

주말이면 사라지던 양氏의 행적이 요란하게 양가비대의 까지 구성해가며

떠들썩하게 전투준비에 만전을 기했던 양씨宅의 확신 섞인 추측과 달리

숨겨둔 여자와의 밀회는커녕 방향조차 잡지 못한 생뚱맞은 오판 이였음이 밝혀졌다.

“어떤 년 이든 잡히기만 하면 난 아예 껍데기를 싹 벗겨 길바닥으로 끌고 다닐껴!!”

쏘맥과 폭탄주가 난무하던 출정식에서 요란을 떨며 나누던 그녀들의 맹세는

길바닥을 구르는 휴지조각처럼 아무 쓸데없는 헛소리로 끝나버렸고

과녁을 잃어버린 여 전사(女 戰士)들은 활 통에 가득 담긴 화살 한번

제대로 날리지 못하고 싱겁게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 가야했다.

해지면 물레방아 간에서 치마 들 추고 기다리는 향단이 만나러

죽자 사자 쫒아가는 방자처럼 양氏가 주말이면 휭 하니 사라져

목을 매고 찾아다닌 곳은 엉뚱하게도 투계장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주말이면 상설로 닭싸움이 열리는 경남 진주에 투계장 까지

제 서방이 만사를 제쳐두고 뻔질 들락거리고 있다는 것을 안후에

또 다른 걱정으로 양씨宅 머리엔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여섯 집 중 보통 허세로 끝나기는 하지만 남자는 하늘이랍시고 뻗대며

아직도 뻑하면 목에 핏대를 세울 만큼 쇠고집 에다 어디 건 간에 한번 미치면

발을 못 빼고 몰두해버리는 양氏가 계집에게 미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뭔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양씨宅은

바람난 게 아닌 줄 알고는 시들해져 돌아서 버린 지원군을 재 규합하기위해

입에 허옇게 거품을 물고 치마 깃을 휘날려가며 돌아치기 시작했다.

널은 미친년만 뛰는 게 아니였다.

미친놈은 더 무섭게 달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널을 뛰었다.

투계 장을 틈만 나면 쫒아 다니던 양氏가 투계 닭 양성비법을 전수 해준 은인을 만났다는
기연(奇緣)은 산불 난 곳에 유조차를 들이밀어 기름을 부어준 것과 같았다.

영양 상태 점검과 건강관리는 필수인고로 닭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살펴야 한다며 닭 장 앞쪽에 모 판장 비닐로 천막을 치더니

라꾸라꾸 침대 래나 야전용 접이식 침대 하나를 들여놓고 양氏가 비닐 막사에서

밤을 지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봄부터 가을 늦게까지

상추,고추에서 감자며 파 마늘등이 빈자리 없이 늘 빼꼭히 심겨있던 너른 텃밭은

어느새 닭들의 헬스장과 운동장으로 변해 농작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닭들의 영토표시로 새겨진 세 개의 발가락으로 마구 찍어댄 발자국만 가득하게 되었다.

한데 문제는 저 혼자 제 땅 파재끼고 뒤집어대는 일처럼 주위에 피해만 없다면

달밤에 널을 뛰든 63빌딩 옥상에서 우산하나 달랑 들고 스카이다이빙을 하던

무슨 상관이 있으랴마는 미친놈 뛰는 널 옆에서 지켜보는 성한 놈들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넌덜머리나는 닭 울음소리를 지긋지긋하게 더 들어야 하니

그것이 문제였다.

“꾸르~르~꾸르르르~~!!”

꼬끼오! 고 꼬꼬댁! 이고 그것 보다 더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

착 엎드려 조용히 상대를 제압하며 나직이 짖어대는 맹견의 우~으응!! 거리며

위협하는 소리보다 더 소름을 돋게 하며 겁을 주는 장 닭의 소리는 등골이 서늘했다

쪼그맣고 까만 동자를 정 가운데 동그랗게 띄워 독살스럽게 째려보기라도 할라치면

철망과 뚝 떨어진 안전거리를 언젠가는 후딱 넘어와 곧 부리에

발등을 콱콱 찍혀 피를 흘리는 재수 없는 상상을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공포까지 가중되며 짜증이 끝 간 데 없이 치솟아 오르자

이쯤에서 도가 지나치는 미친 짓을 막아야 하지 않겠냐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싶은 동네 생쥐들의 회합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총대를 메고

징그런 닭울음소리를 깨부숴 줄 구세주를 우리는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장 닭 웃음소리가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헤집어 파헤친 동네는 쑥밭이 됐다.

“뭔 놈의 닭이 얼마나 대간 하간디 여기까지 들리게 울어 대는겨?

언능 물에 튀겨 털 뽑어!

짐승이 극성을 부려대면 사람 상하는 법인께“

한참은 걸어 나가야 타는 버스정류장 가게 집 까지 넘나드는 고역스런 소리를

코앞 같은 지척에 두고 밤낮 없이 수시로 들어야 하는 고통은

연속으로 고문당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어릴 적 정말가기 싫은 학교를 다니 게 힘을 준 것은 죽을 만하면

어린애 사탕 주듯 달래며 주던 쉬는 시간과 쉬는 날 이였을 것이다

반년에 한 번씩 주는 여름과 겨울 방학 그리고 틈틈이 우리를 숨 쉬게 했던

봄 방학 등은 반짝반짝 빛나며 고통의 학창 시절을 구원해준 거룩한 날들 이였다

그러나 닭들은 불행하게도 거룩한 쉬는 날의 필요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벌겋게 단 인두로 지졌던 화인(火印}처럼 한번 뇌리에 깊숙이 박힌

울화를 치밀게 하는 소리는 음량 크기에 관계없이 짜증을 증폭 시켰다.

귀도 마음도 시끄럽게 하는 징글징글한 소리로 폭탄 발화점에
바짝 붙은 짧은 도화선 심지처럼 언제 터질지 아슬아슬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던 터지기 일보직전의 폭약더미 같은 마을에

뇌관 구멍을 열고 무지막지 불덩이를 쑤셔 넣은 무식한 사건이 발생했다..

말복(末伏)날 이였다

그간 닭 소리 때문에 여러 가지로 주위 분들에게 미안해서 이번 복달음을

양氏 집에서 한다며 모두 모이라는 전갈을 받고 여섯 집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새로 나온 농기구 구입을 위해 조금 늦을 거라며

먹자판을 벌린 집 주인 양氏는 출타 중 이었다

사람 머릿수가 모자라 돌지 않는 술자리에 술잔은 없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의례로 빠질 수 없는 상차림에 칭찬이 쏟아졌다.

“어따!

실헌 것!

살이 통통 튀어 버리는 것이 씹는 맛이 일품이요 잉!“

“달구새끼가 이리 존 것도 있구마 니는 뭐했드나?

이참에 어서 사는지 단디 알아두그라!“

그저 삶은 닭 한 마리 맛이려니 하고 심드렁히 먹던 그날 토종닭 백숙은

먹다 지칠 만큼 푸짐하게 차려놓은 인심과는 전혀 상관없이 정말로 일품 이였다.

사다가 삶을 땐 몰랐다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는 토종 닭 백숙을 퍼내자니 아까워서였을까?

뜨악하니 양씨宅 얼굴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찡긋찡긋 눈 대화들을 나누며 여자들이 술 마시기를 아끼고 있다.

집 주인 양氏를 위해 남겨 논 제일로 큰놈 닭은 다시 데쳐야 할 만큼 식어있고

기다리다 마셔댄 술로 모두 혀끝이 살살 꼬부라지고 있는데도 아직 양氏는 오지 않았다.

                                           -한편을 남기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