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유명한 경전에 의하면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신이 어느 날 내게 다가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이야기에는 마치 새 하늘이 열리는 듯 이전에 듣지 못했던 묘사와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데이비드. 나의 이야기에는 필연적으로 사람이 등장해. 별들과 은하들이 생성되고 소멸된 일과, 호흡하는 듯도 하고 박동하는 듯 꿈틀대는 우주의 비밀에 대해서도 꺼내놓을 이야기는 많지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 그것은 바로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우주를 설명할 수 없고, 나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야.

  나와 별들과 은하들은 별개가 아니야. 그러한 가운데 우리들과 비교하자면 사실 사람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저 우주를 구성하는 어떤 별이나 은하가 사람을 설명할 수 없는 반면, 사람을 통해서 내가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기도 해. 따라서 나는 우주를 포기하고 사람을 선택한다는 가정은 생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가치를 우주와 비교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

  나는 사람을 통하여 나를 우주 안에 나타내길 원했어. 실재하는 별들을 공중에 떠 있게 하는 어떤 힘이라는 건 어쩌면 존재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미는 나의 기쁨을 점차 빼앗아가기에 충분했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느 시점에서 사람을 만들 수밖에 없었어. 나는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싶었던 거야.

  별들과 은하들에 깃들어 있는 에너지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인력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부분조차 되지 못해. 그렇지만 그것들과 나에게 형상이 없다는 설명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은 의미심장하지. 그리고 나는 실존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실존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고민이 깊어가다가 외로움을 깨닫게 되었어.

  나는 어느 시점에서 나의 존재를 나타내야 할 필요를 느꼈어. 그 대상은 당연히 우주였지. 그런데 우주를 상대로 내가 어떤 작용을 가하는 일은 아이러니야. 그것은 마치 뱀이 스스로 겉과 속을 뒤집어서 자신의 겉과 속에게 새로움을 겪게끔 하는 행동과 다르지 않아.

  나는 어머니와도 같고 자식과도 같은 우주를 상대로는 어떠한 태도도 취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한동안 죽음과도 같은 정적을 이어갔던 적이 있었어. 그 때 별들과 은하들은 내가 처음 스스로를 자각했던 때처럼 고요한 반응을 보였지. 나는 우주에 깃든 복잡한 질서이자 무한한 에너지였기에 그러한 태도를 오래 이어갈 수는 없었어.

  내 안엔 시작이 있었고, 이어지는 파동이 있었으며, 어떤 때는 작용과 반작용들이 다채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었지. 나는 그것들을 기뻐하다가도 내 안에서 자라만가는 수학적인 자제력으로 인해 작은 존재로 남지 않고 더욱 넓어질 수 있었어. 그 후로도 오래 동안 나는 별이 생명을 다하여 사라지고, 은하들이 충돌하는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스스로를 자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태어나 있었는지도 몰라. 어쩌면 다만 잠들어 있다가 힘겹게 깨어났는지도 모를 일이야.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나를 증명하고자 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내가 마침내 그 일을 실행했다는 거야. 그것은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으며, 앞으로 다시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일 수가 있으며, 나는 나다울 수가 있어.

  나는 스스로 진화했어. 그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지. 우주가 실재하는 이상 유연한 흐름과 규칙적인 박동은 당연한 거야. 나는 작용과 반작용 속에서 태동하였고, 소멸과 생성 속에서 탄생하였으며, 에너지의 확장과 수축 속에서 자랐으며, 그 안에 존재하는 수학적인 규칙 속에서 내가 되었어.

  나는 우주가 그저 흩어지는 중이라고 믿는 어리석음만큼이나, 생명체가 스스로 발생해서 진화하였다고 믿는 어리석음이 우주 안에서 사라지기를 바라. 정확한 사실을 말하자면 이 우주 안에서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존재는 나 외에는 없으니까. 실재하는 별들과 은하들 사이에 깃들어 있는 나의 존재함으로 증명하지만, 나는 어느 별에서도 저절로 생겨난 자아를 지닌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어. 공기와 무기질과 열과 전기적 자극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질 수 없는 거야.

  피조물들로서 물질에 갇혀서 ‘눈’이라는 도구로 바라보는 대상이란 건 대체로 실재적이지 못하기 마련이지. 왜냐하면 실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에 의해 영향을 받아 변화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들이 어느 날 ‘진화’라는 개념을 발견해낸 일은 놀랄 만 한 일이야. 심지어 그건 내게 벌거벗었다는 게 무엇인지 실감하도록 해 준 하나의 사건이기도 했으니까.”

  그 분의 이야기는 가다가 표현해 낼 수 있는 쉬운 단어들로 구성되고 있기는 했으나 이해하기에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나는 비로소 그분이 주변의 새들을 쫓아 보내고 벌레들마저 잠들게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나는 그분이 진화론을 혐오하고 있는 것인지 다만 진화가설로써 정확한 규명을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마음을 열고 듣는 자세를 지속하기 위해 애썼다.

  “나의 이야기에 사람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이 곧 나이고 내가 곧 사람이어야 하는 방식을 내가 취했기 때문이야. 나는 우주 안에 실재하지만 실체는 없었기 때문에 나를 증명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어. 그리고 마침내 어느 별의 표면 위에 특별한 작용을 직접 가하는 일을 시도하기에 이르렀지.

  나는 나의 깊은 속성을 부여해서 사람을 만들기를 원했어. 그것은 이후로 두 번 다시는 아무 것도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해. 따라서 사람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우주 안에 증명해 보이려는 시도는 반드시 성공할 필요가 있었어. 그렇지만 그러한 시도는 내가 아끼던 어느 은하와 또 다른 은하와의 충돌을 막으려 했던 일보다도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지.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어.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의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일이야. 어째서 하나의 사람이 탄생하는 것으로는 의미가 충족되지 못하는 걸까. 복수의 창조물들이 아니고는 나의 나됨을 드러내는 일이 불가능하다니. 한동안 나는 너무 골몰한 나머지 용자리가 위치해 있던 당시의 북극성에 알파성이 아닌 베타성을 인도하고는 바로잡느라 고생을 했을 정도였어.

  궁극적으로 나는 나의 깊은 속성을 부여 받은 복수의 사람들을 계획해야 했지. 그렇지만 그 전에 나의 본질 그대로를 투영한 특별한 하나의 존재를 먼저 만들어 내어야 할 필요를 느꼈어. 그 단 하나의 존재를 나는 나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표현하길 원해.”

  그분은 마침내 데미우르게를 직접 언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그 존재를 아들이라고 부르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었다. 가족이라는 것은 미시적인 존재에게 있어서도 안정감을 주는 단어일 테지만 거시적인 존재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면 일체감이 보장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시 한 번 지금 만나고 있는 신이 친구이며 안전한 상대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분은 내가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곧 나이며 내가 곧 그들이고자 하는 계획은 내가 복수의 형태로 우주 안에 실재하도록 하려는 시도였기에 위험한 일이었어. 그 계획 안엔 나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인 ‘질서’를 깰 가능성이 있었지. 결국 나는 복수의 사람들을 창조하기 전에 특별한 한 사람을 먼저 창조해야만 했다.

  그는 내가 우주 안에서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갖게 된 모든 인식을 단번에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어. 그는 곧 나이며 내가 곧 그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한 관계가 탄생한 셈이었지.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예전부터 존재하였다는 주장과 흔적만 나타낼 수 있는 나에 대해 그는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할지 몰랐어. 나 역시 나로 인해 실재하게 된 한 존재인 그가 홀로 서 있는 앞에서 어떤 작용을 보여야할지 알지 못했어.

  우리가 갖는 기쁨에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 둘은 처음부터 알아차렸어. 그래서 마침내 나는 그를 우주로 이끌고 싶은 마음을 미루고, 그와 함께 사람들을 창조했던 거야.”

  그분은 다시 말의 간격을 두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대화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이 나를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무어라도 반응을 보이고 싶었다. 나는 그분이 이끌어 나가고 있는 진실이 있는 방향으로 나도 함께 동행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원했다.

  “놀랍군요. 천사가 등장하지 않고 곧바로 사람이 등장하다니요.”

  그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있을 것만 같은 투로 내게 대답했다.

  “데이비드. 우리는 복수의 사람을 창조하기 위한 계획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다네. 문제는 천사와 사람을 구분하는 것과 같은 형질의 문제가 아니었어. 그건 사람이 몇 명이 있어야 이 모든 일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을까 하는 문제였어.”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이해에 있어서 아직 서툴렀다. 그랬다. 형질과 성격보다는 수치와 형태와 계산과 설계가 먼저였다. 나는 그분이 언어와 대화와 영이 동의어라고 말했던 부분이 새삼 중요하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알기 전에는 육체 안에 실존한다는 사실이 갖는 엄중함에 대해 깊이 지각하지 못했다고 해야 옳아. 나는 별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우주 안에서 벌이는 역동성들에 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별들을 낳은 성운들의 심정은 몰랐던 것 같아.

  그는 첫 남자와 첫 여자로부터 태동하게 될 사람들의 수를 3백억까지 예상했지. 그러한 수치는 나의 기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의 예상이 옳았다고 봐야 해. 그는 나와 다르지 않은 속성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육체에 거주하고 있다는 특별함에서 비롯된 진지함이 있었어. 그리고 나는 그의 진지함과 치열함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사건들을 예측할 수 있었지.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의견의 차이는 시간과 공간과 실행의 측면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달랐어. 먼저 그는 사람들의 뇌 활용도를 전체의 0.6% 정도로 낮추길 원했어. 그것도 모자라 그는 사람들의 지능을 원숭이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제한을 두길 원했지. 나는 그의 계획으로 인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소요케 되리라는 사실을 지적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어.

  나는 우주 안에서 시간을 정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지. 그는 은하와 태양계를 관찰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숙고의 시간을 가졌어. 그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면서 우리가 계획한 창조 계획이 완벽해지는 일에만 골몰했어.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내게 말했을 때, 나는 처음 슬픔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분이 별들과 은하의 죽음을 겪는 가운데서도 알지 못했던 슬픔을 처음 느꼈다는 사실은 전율이 느껴지게끔 하는 고백이었다. 그것은 아이가 처음 동화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와 감동을 배우게 되는 설명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분은 부모의 마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죽음을 겪는 일만큼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어. 그 뒤 그는 내가 자신에게 부여하였던 완전한 육신과는 거리가 먼 유한한 육체를 창조하기를 원했어. 그가 계획하는 유전자의 확장 가지는 300억이나 되는 개체의 각각 특성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단순했지.

  그는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설계할 때, 영원한 생명을 가능케 하는 완전한 순환의 고리 제외하길 원했어. 그리고 그는 62억 개 밖에 되지 않는 염기쌍으로 완성될 첫 남자와 첫 여자의 모델을 내게 보여줬지.”

  그분의 말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진실이 있는 방향으로 동행하는 것만 같았다. 그분이 소개하고 있는 그 아들은 스스로의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아버지의 바라는 일을 완성하려 한다는 것을 나는 눈치 챌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지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데미우르게의 전설은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서 의미가 퇴색해버린 그 이름을 그분이 먼저 말한다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분은 그 이름을 이후로도 오래 동안 계속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내 아들에게 다시 물었어. 정말로 짐승들보다 크게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들과 같은 소통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 같으냐고.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어. 그는 모든 육체는 한 차례의 소멸을 경험하는 게 그들 자신을 위해서나 또는 모두를 위해서 유익하다고 말했지. 나는 그의 견해가 내가 처음에 지녔던 낙관적인 생각보다 뛰어남을 깨달았어. 그리고 그 때 나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었어. 그는 정말로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분은 내가 먼저 그 이름을 말할 기회를 주기라도 하는 듯 간격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이 계속 말하지 않는 그 이름을 내가 먼저 말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더 이상 거론하기를 원치 않았던 데미우르게라는 표현을 다시 끄집어내기에도 적당하지 않았다. 나는 그분이 말하는 중심에 있는 아들에 대해 집중하는 일만은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희생은 예정되어 있었던 게 아니었군요. 우주에 생명이 탄생하게 되고 신 앞에서 완전한 육체들이 존재할 수 있으려면 희생은 피할 수 없었던 건가요. 그런데 정말로 당신은 처음에 그러한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던 겁니까?”

  그분은 난감한 어조로 대답했다.

  “데이비드. 자네가 육신을 지니고 있기에 금방 이해할 수 있었던 희생의 가치를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네. 다시 말해 지구에 날아드는 소행성들 중 대부분을 목성과 화성이 막아주게끔 설계하는 일에서 알고 있는 희생의 의미에 가치가 있을 것 같나? 나는 죽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내 아들을 만나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내가 알고 있던 희생은 아는 게 아니었던 셈이지.”

  나는 그분의 솔직함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가장 큰 신의 무한한 겸손함을 겪으며 깨닫는 일이 왜 이제야 가능했는지를 생각하니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의 아들과 비교해서 0.6%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나의 뇌는 ‘희생’이라는 단어로부터 엉뚱한 연상을 떠올렸다. 이 때 나의 머릿속엔 두 마리 새의 죽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겨울날 우연히 폐허가 된 건물의 옥상에 올라갈 일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추위를 피하다가 얼어 죽은 한 쌍의 이름 모를 새를 발견했다. 그 새들은 3면이 막히고 더 비좁은 은신처를 찾았어야 했는데, 옥상과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층계참에서 나란히 죽어 있었다.

  나는 당시에 샬롯과 이혼 직후였기 때문에 그 두 마리 새들의 모습에서 표현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자책에서 비롯되는 분노를 느꼈다. 그 새들은 비록 더 안전한 피난처를 찾지 못할 만큼 아둔했지만 최소한 함께 있었다.

  나는 그렇게 겸손에 대해 깨달았고, 그러한 식으로 깨달음의 기회는 내게 자주 찾아왔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을 원망하며, 내가 아는 한 사람을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오만함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흐려졌던 눈의 초점을 다시 찾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할 필요를 새삼 느꼈다. 나의 안과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작용들이 입체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분은 외부로부터 나에게로 전해질 수 있는 정보들과 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연상 작용들을 함께 동원하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분이 우리들과 늘 함께 하고 있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다는 처음엔 말을 천천히 하다가 점점 빨라지는 방식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보고 있는 히브리 문자가 아랍 문자로 바뀌는 모습의 속도에 관련이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창조 계획을 마친 뒤에는 모든 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 같아. 그는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라도 적응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의 사이즈를 정하기 위해서 한 차례의 실험을 하기를 원했어. 나는 그에게 필요 이상으로 비대한 사이즈의 대형 파충류들을 만들 것을 제안했지. 그것은 내가 처음에 미생물들을 설계했던 일을 시작으로 생명을 만들어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농담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었어. 그런데 그는 나의 제안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도달할 수 있을 문명의 정점에서 별을 정복하는 일과 생명을 창조하는 일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우리와 소통이 가능할 만큼 사람들이 지혜로워질 때를 대비하길 원했지. 그는 대형 파충류들이 훗날 사람들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쓰이도록 하려는 계획에 주저함이 없었어. 그리고 그는 한동안 그것들이 지구를 메울 만큼 번성하도록 하는 일에 시간을 쏟았어.

  데이비드. 그에게 많은 것들을 맡겨두고 지켜보는 동안 나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기쁨을 느꼈다네. 그가 나와 같지만은 않을 것을 예상했지만 그토록 다를 줄은 몰랐어. 또한 그가 나를 빼어 닮기를 원했지만 그처럼 마음이 통할 수 있을 줄은 몰랐던 거야. 나는 그를 통해서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누리게 될 기쁨이 얼마나 클지 예측할 수 있었지.

  나는 이제 형상을 지니게 될 거야. 나의 모습은 별들과 은하들만큼 아름다울 테지. 나는 그렇게, 설레는 마음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어.”

  아무래도 그분이 스스로에 대해서 진화했다고 말한 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분은 슬픔을 배웠다고 말했고, 이제는 설레는 마음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분을 알아가는 일이 이렇게 기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했다. 그분의 솔직함과 유머가 깃든 설명들에서 엿볼 수 있는 품격은 사람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표현이 무색했다.

  그분은 마침내 설레는 마음으로 추억을 더듬어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첫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첫 사람이 눈을 떴을 때를 기억해. 그는 처음부터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창조주와 눈을 맞출 줄 알았지. 그 대상이 나이기도 하면서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나의 아들이 부럽다는 첫 인식을 느끼게 했어. 나는 질투라는 것을 소유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만, 그 때 처음 마음의 파편들이 얼마나 잘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인지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 

  우리는 첫 남자의 이름을 아담이라고 지었어. 그는 충분히 온유했고, 처음부터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줄 알았지. 그 미소를 보고도 참고만 있는 일은 불가능했어. 나는 아담에게 나를 소개하기로 결정했어. 아담은 내가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수소 입자들을 한곳으로 끌어 모아서 불꽃을 만들어내자, 내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어.

  나는 곧 아담에게 다가가 따뜻한 기운으로 어루만져주었어. 아담은 기분이 좋다는 반응을 보였지. 그는 아직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벌써 눈빛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줄 알았어. 그는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나누어 가진 우리 둘의 존재에 대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빠르게 인식했던 것 같아. 그는 안심이 되었는지 처음 세상을 향해 관심을 보였어. 동산엔 이슬을 머금은 풀들로 인해 공기가 촉촉하게 유지되고 있었어. 무성한 감람나무 잎사귀 사이로 내리는 햇빛은 친절해 보였지. 새소리와 벌레 소리에 처음 반응하던 그 아이의 눈빛은 지금도 생생해.

  그가 아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을 때 나는 아담의 종아리 근육이 수축되는 것을 보고 있었어. 아담은 자신의 두 다리로 서서 첫 걸음을 떼었고, 우리와 산책을 하는 일에서 처음 즐거움의 다양한 형태를 표현했지. 아담의 몸은 잘 빚어졌고 머리는 영리했어. 문제는 그가 육체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의 마음을 찾아내는 단계가 남았다는 사실이야.

  그가 짐승의 마음을 만난 뒤 이질감을 느끼고 울면서 우리에게 달려온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셈이었어. 그러나 나의 아들이자 나와 함께 아담의 부모인 그는 생각이 달랐지.

  그는 아담이 스스로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헛된 바람을 놀려댔어. 나는 그의 태도가 무례한 것을 지적하고, 아담이 그러한 태도를 배우게 된다면 모두 그의 책임이라고 말했지. 하지만 우리는 농담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만 우리들이 꾸며대는 우스갯소리는 예정된 슬픔들을 외면하기 위한 핑계 밖에 되지 않았어. 그러한 사실을 우리 둘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아담이 우리 품에 찾아 온 그 날은 기쁨과 슬픔이 혼재하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처음 배운 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