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둠의 소리

세상에 뒤탈 없는 공짜는 없었다

거저줍듯이 가져온 투계 장 에서 방출된 닭 10 마리의 가격은 그리 녹록치 안았다

“닭 값이 아무리 바닥을 겨 댕겨도 토종 닭 보다 더 비싼 거라 허든디

아무나 저렇게 공짜로 가져 올 수 있간디요!”

공짜라고 양잿물도 마셨다는 풍문이 돌았던 양氏댁 어머니 친정이 내 고향
칠갑산 자락 주변에 어깨를 함께하고 깃들은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서

얼마 멀지 않은 상갑리 쪽 사람인데다 천리나 먼 타향 경기도 양주에서

이웃으로도 집을 마주하고 사는 귀한 인연으로 유독 우리 내외와 친분이 두터운

양씨宅 그녀는 친정어머니의 용감무쌍한 전철을 답습하며 겁도 없이 공짜라고

덜컥 들여놓고 처음 닭장을 지을 때만해도 동네방네 제 서방의 폭 넓은 인맥과

고매한 인품을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며 치마폭을 휘날리며 살았다

빛나는 그 세월이 오래 가기를 빌고 사는 우리내외에 기도가

별 효험이 없었던지 그 세월은 잠시로 끝나 버리고 언젠가 부터 양씨宅 미간에

주름이 내 천(川)자로 자글자글 깊게 파이더니 입에 한숨을 달고 다니기기 시작했다

“농사짓는 사람이 트럭이면 족하지 승용차는 해서 뭣하게!”

명절 뒤고 엄니 생신 때고 일 년에 몇 번 친정 동네 갈 때마다

써금싸금한 6밴 트럭에서 내리기 얼굴 팔려서 못살겠다고 고향만 갔다 오면

성님 성님하고 우리 마누라 밥도 제대로 못하게 졸졸 따라다니며 연실 푸념을 늘어놓던

양씨宅이 그렇게 졸라대도 소귀에 경 읽기로 항소고집을 피우며 안 사던 승용차를

느닷없이 때 지난 춘계 영농자금을 대출받아 덜컥 산일은 넙데구레한 양氏 얼굴을

동네 사람 모두가 다시 한 번 상세히 뜯어보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 이였다

결혼식 가는 일 말고는 생전 입지도 않던 양복으로 쪼옥 빼입고

요리조리 핑계를 대고 주말이면 양氏가 사라진다고 바람 난 게 틀림없다며

태산 같은 걱정을 우리 집에 퍼 나르던 양씨宅 발걸음이

쥐새끼 풀방구리 드나들듯 잦아지더니 드디어 동네 아낙네 전원이 참석한

이름도 거창하게 갖다 붙인 양씨 가정수호 비상대책 의원 회 가 결성됐고

하루 일정에 청주 출장이 예정되어 하룻밤 내가 집을 비우기로 한 사이

그 틈을 타 정작 회의 안건으로나 올리면 좋을 시끄러운 닭소리는 덮어두고

뜬끔없이 때려잡자 바람 난 놈에 구호가 난무하는 <양가 비대의>가 긴급 소집되었음을

납품 회사에 사정으로 약속을 미루고 이천까지 내려갔다 되돌아온 나는

본의 아니게 가공할 그녀들의 회의를 엿보고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

옛 어른들의 금과옥조 같은 그 말씀은 정녕코 진리요 생명 이였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그녀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오롯이 들어버린 후회는

귀를 쇠꼬챙이로 쑤시고 싶었고 돌려야했을 발길을 묶어버린 내 두발을

그저 작두에라도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나는 오한으로 몸을 떨어야했다

“바람?

내가 갈키 주꾸마!

뭐 물을 것도 뒤비 볼 필료도 읍따!

너거 신랑 고마 식겁 하고로 선빵으로 콱 콧잔디와 주디 부터 받아뿌라!

평소에 시원치 않은 남자보다 화통한 둘째 하종형네 형수의 얘기는 그리 놀랄 것도 없다

“이 사람들아!

그저 물건 덜렁 거리고 다니는 머리 짧은 인간들은 아침저녁 쥐 잡듯 닦달해야해!

남편이란 족속들은 조금만 풀어주면 천방지축 철부지 마냥 정신을 못 차리거든

그러니까 한눈 안파는 상머슴 만들어 편히 살려면 쓸데없는 싹이 아예 나지 못하게

평소에 지근지근 밟아둬야 하는 거야 알겠어?“

경악으로 온 몸을 쪼그라들 게 한 차분하고 사려 깊은(?) 저 말씀이

정녕 걸음 한 자락을 떼실 때도 품위를 뿌리시며 우아한 자태를 견지하시며

사뿐사뿐 걸으려 애쓰시는 고상함의 대명사로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신

큰 형수로 마을에 추앙을 한 몸에 받으시던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란 말인가?

10.000볼트짜리 전류에 감전당한 사람처럼 찌릿찌릿한 전율에 온몸이 떨려왔다

아! 나는 그날 알 수 있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늘 웃음을 띠우고 있어도

웬지 술이 진하게 들어가면 땅이 꺼져라 토해내던 한숨과 짙은 그늘에 쌓여있는

순배 형님의 사슴 같은 슬픈 얼굴 그 뒤에 감춰져있던 깊은 사연을...

양 가수 비대의는 내 가슴을 도려내며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큰 성님껜 지송한 말씀이지만 내 생각은 쪼깐 다르구먼

대간하게 하지 말고 살살 달개야 허는겨!

꼬랑지가 드러날 때 꺼정 살살 달게다가 확실히 바닥이 드러나면

그때 모강지를 확 잡아 비틀어여 허는겨!!“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

캄캄한 어둠속을 헤매다 주먹만 한 망치에 머리통을 직통으로 맞은 것 럼

내 눈에서 번쩍번쩍 별이 쏟아져 날라 다니고 있다

맘씨 착하고 요새 세상에 드물게 순종만 아는 착한 색씨하고 산다고

어떤 모임이던 나가면 선망의 대상으로 30년을 목에 힘 꽉 주고 살게 해준

내 마누라 목소리가 분명 하다

갑자기 맥아리가 쏘옥 빠지며 휘청 다리가 꺽여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오!! 하늘이시여!

더 듣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회의내용은 멈추지 않고 전해져 왔다

“셋쩨 성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허요

목구녕이 간질간질허니 당글개질을 해도 쪼깨 쪼깨 참아 감시로

어떤 오살할 잡년인지 일단언 찾아야 하지 않컷어라!”

귀곡성의 주인공 막내 공씨宅은 명석한 두뇌에 소유자가 분명하다

일단 인명과 거주지부터 확인해야 머리끄댕이를 쥐어뜯던 말든 할 테니까 말이다

“이번 엔 청양 언니가 본보기를 보여 주세요

막내가 시도해서 성공했던 남자들 술버릇들 고친 일처럼

다시는 쓸데없는데 한 눈팔고 기웃거리지 않게 아주 이번 기회에 작살을 내야해요!!“

시청 공무원 하는 다섯째 뻘 윤氏 동생宅에 교양으로 가득한 평소 말씨는 간데없고

밤길을 휩쓰는 7공주 파 오야붕 출신의 목소리만 내 목덜미를 비틀며 들려왔다

오! 마이 갓!

발 들여선 안 될 금단구역에서 듣지 말았어야할 비밀의 대화를 듣는 순간

갑자기 엉켜있던 수수께끼 하나가 저절로 풀어져 나가고 있었다

여자 들 간 위계질서에 균형이 조금만 깨어지면 쌍불을 켜는

군기반장 하종네 형수가 소름끼치는 공씨宅 새벽 귀곡성에 대해 관대하게

말없이 모른 척 지켜만 본 일은 놀랍고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로 남아있었는데

오늘 비대의를 오간 대화의 단서로 그 불가사의를 확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공氏 동생에게만 보낸 줄 알았던 음주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경고 메시지가

결코 한사람에만 국한 된 경고가 아니라 암암리에 여자들 전원 합의로

우리 모두에게 보여준 묵계에 의해 계획된 시위행동 이였음을 백일하에 밝혀냈지만

강산이 변하는 세월을 마주보며 다정하게 웃음을 나누고 살았던 이웃 여자들의

적나라하게 벗겨진 가면 속에 진실한 내면과 설흔 해를 넘게 살을 부비고 살았던

내 마누라 속내에 깊이 들어 있던 숨겨진 칼날같은 암팡진 본성을 알고 난 지금
궁금중이 풀린 후련함 이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 어떤 기쁨 보다는 그녀들을
예전처럼 태연히 다시 바라 볼 자신을 몽땅 잃어버린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두려움에 오돌 오돌 떨며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아!

순한 양의 탈을 쓴 이리!!

그들의 이름은 여자 였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