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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입장에서 신과 인간의 차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요람에 누운 갓난아기가 부모를 올려다보면서 부모와 자신의 키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신과 인간의 차이를 ‘핸디 4’나 ‘핸디 7’과 같은 수치를 제시하면서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바둑을 두는 일이었다.

  사람이 신을 찾기를 원한다거나 신을 알기를 원한다면 종교를 가지면 되었다. 그러나 종교 안에선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무한대의 간극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신을 섬긴다 할지라도 둘 사이에 놓인 차이점이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신과 인간의 사이엔 이해나 느낌을 바탕으로 한 교감이 아닌 맹종과 흠모의 형태만 존재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바둑이라는 행위는 단순한 재료를 가지고 무한대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활동이었다. 바둑을 두면서는 누구도 같은 내용을 반복한 적이 없었으며, 인류가 바둑돌을 바둑판 위에 놓기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같은 내용이 반복된 일은 없었다. 적어도 혼신의 힘을 다 해 끝까지 승부를 겨루어 한 판의 대국을 완성한 어느 두 사람의 공동작품이 탄생하였다면, 그에 대한 복사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한 점에 비추어 바둑은 문학이며 학문이며 예술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떠한 문학도 학문도 예술도 신을 소재로 다룰 수는 있을지언정 신의 영역에 대해서 체감을 하도록 하고, 신과 인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끔 인도하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누군가 바둑을 두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그때 그 사람은 비로소 신과 인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신과의 대결에서 핸디 3이거나 핸디 4이거나 하는 문제를 가름하는 천재들 사이에서는 흔히 통용되는 생각이었다. 

  바둑이라는 게임 안에서 신과 인간의 차이는 보드 위에 세 개의 돌을 미리 놓아야 하는가 다섯 개의 돌을 미리 놓아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즉 신의 핸디가 얼마인가를 알 수 있다면 신과 인간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신이 증명해 준적은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신의 핸디가 거론된 적이 있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승률이 5대 5로 박빙을 이룰 수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인간은 다섯 점의 흑돌을 깔고는 여간해서 신에게 지지 않을 수 있고, 두 점의 흑돌을 깔고는 신에게 좀처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일반적으로 바둑을 둘 때 세 번 연속으로 지게 되는 쪽은 치수 즉 핸디를 조정했다. 대등한 대결이라면 랜덤으로 돌을 갈라 흑백을 결정한 뒤 바둑판에 먼저 돌을 놓을 수 있는 흑돌은 유리하기 때문에, 백돌을 쥔 상대에게 6.5 점 안팎의 점수를 미리 인정해 주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대등하게 맞두었는데 연거푸 진다면 다음부터는 6.5 점의 점수를 미리 헌납하지 않고 대결을 하는 것이었다. 핸디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의 대국에서 또다시 세 번 연속으로 지는 일이 벌어지면 핸디의 폭은 커졌다. 이번엔 진 쪽에서 바둑판 위에 흑돌 두 점을 먼저 올려놓고 대결을 하게 되는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신에 대하여 감수하여야 할 굴욕은 흑 돌 석 점과 넉 점 사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지상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몇 개 정도는 획득한 실력자를 말했다. 그리고 이 챔피언은 가로 세로 열아홉 줄을 그려 놓은 보드 위에 흑돌과 검은 돌을 번갈아 올려놓으며 누가 더 많이 영역을 차지하는가 하는 대결에 있어서 신을 상대로 하여서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만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인간으로서 정면승부를 하여서는 도저히 신을 이길 수 없다지만, 석 점 핸디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신에게 제시하고 단 한 번이라도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현대 사회가 가장 포괄적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신을 모델로 삼아 생각해 볼 때,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신은 우주-지구에서 올려다보는 관점의-를 단 6일 만에 창조한 절대자였다. 그러한 신에게 인간이 물리와 정신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승부를 겨룰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지 않겠는가. 어떤 시인이 신과 시작(詩作)을 겨룰 수 있으며 어떤 학자가 신과 학문을 겨루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예술가는 신과 예능을 겨루기는커녕 천국의 디자인과 천사들의 노래를 감상하는 순간 기절해 버릴 게 분명했다.

  신에게 핸디를 안겨주고 겨룬다는 것. 골프나 당구와 같은 게임을 가정해 볼 때 점수로는 도저히 신의 핸디를 측정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신으로서는 휘둘렀다 하면 홀인원일 것이며 때렸다 하면 쿠션을 성공할 테니 대결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신에게 ‘빌어먹을 지구를 때려서 금성과 화성을 맞춘 뒤에 수성과 부딪히게 해서 태양에 집어넣는 걸 보여주면 당신이 이긴 걸로 합시다.’ 하는 제안이 더 현실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래에 인류와 생명의 기원을 외계 간섭설로 보는 종교적 시각이 늘고 있었다. 즉 신의 존재 역시 무한한 게 아닌 우주 안에 유한한 존재라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저 유명한 경전에 기록된 글자 그대로 6일 만에 천지를 창조한 신의 모습을 그대로 가정한다 할지라도 신은 바둑판 위에서 여섯 점 이상의 핸디를 극복하고 인간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보통의 사람이라도 바둑 챔피언과 대결하여 넉 점의 핸디로 승부를 나눌 수 있는 아마 5단의 수준에 이른다면, 넉넉하게 아홉 점을 깔면 신을 이기는 게 가능했다.

  바둑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바로 신이 만들어 놓은 바둑의 수학적인 원리이며 그러한 원리는 신 자신이 허용한 것이기 때문에, 신의 입장에서는 먼저 반칙이라도 범하지 않는 이상 바둑이라는 게임이 지닌 한계적 수치를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게끔 되어 있었다.

  다시 비유하자면 체스에서 모든 말을 다 없애고 킹과 나이트만 가지고 상대를 이긴다는 것은 신이라고 할지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체스 챔피언과 신과의 대결에서 신이 비숍과 나이트를 버리는 게 적절한 핸디일지 비숍과 나이트와 캐슬과 퀸을 버리는 게 적절한 핸디일지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둑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의 핸디가 네 개의 흑돌을 올려놓는 걸로 적당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마스터 조의 의미는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그분이 자신의 등장을 위한 예시로 삼기에 적당한 인물이었다.

  그분은 마스터 조가 흑돌 네 점을 보드 위에 깔고 게임을 시작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흰 돌을 들었을 때, 그에게 몇 포인트 차이 이상으로 이겨야 할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까 마스터조가 시인했던 47포인트였다.

  만일 마스터 조가 보드 위에 검은 돌 네 개를 먼저 깔았고, 그분이 가다의 손을 빌어 흰 돌을 놓기 시작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치러졌다면, 대결의 결과는 78대 78과 같이 무승부로 날 수도 있었다. 아니면 103대 104와 같이 어느 한 쪽이 이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스터 조는 흰 돌을 잡은 상태에서 검은 돌을 잡은 그분보다 나중에 플레이를 시작했으므로 애초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마스터 조는 자신이 47 포인트 패했음을 확인한 순간, 전에 인터넷에서 진행되었던 것처럼 그가 미리 검은 돌을 보드에 깔았던 것과 같은 결과가 또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47이라는 숫자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즉 그분은 상대방이 검은 돌을 미리 보드 위에 까는 개수가 많아질 때마다 부여하는 수치를 포인트로 환산하였던 것이다.

  검은 돌 두 개면 20포인트, 돌 세 개면 30포인트, 검은 돌 네 개면 40포인트였다. 그렇다면 검은 돌을 하나도 깔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게임에서는 41포인트의 차이가 나면 마스터 조가 진 것이며, 39 포인트의 차이가 나면 마스터 조가 이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더 정확하게 룰을 적용하기를 원했다. 그것은 마스터 조가 미리 돌을 보드에 깔아 놓지 않은 상태로 시작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먼저 돌을 놓게 되어 있는 검은 돌을 취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마스터 조는 흰 돌을 잡은 상태에서 오히려 나중에 두었으므로 그분은 6.5 포인트라는 추가 적용을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무승부가 발생할 수 없게 된 아까의 게임에서는 그분이 40포인트에다 7포인트를 더 얻었으므로 정확하게는 0.5 포인트를 이긴 셈이었다.

  그분과 마스터 조의 대결은 인터넷에서 이미 수차례 벌어졌었다. 그분은 마스터 조를 우리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서 ‘신’이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마스터 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마스터 조에게 매번 굴욕을 안겨주며 그가 검은 돌 두 점에 이어 석 점을 보드 위에 까는 지경까지 이끌었다.

  마스터 조는 현실에서 자신을 그렇게까지 이기는 존재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는 컨디션이 좋을 때면 현 세계 챔피언과도 대결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런데 그가 검은 돌을 두 개도 아닌 세 개나 깔고서도 게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면 큰 혼란에 빠졌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매 번 그가 패하는 포인트는 한 번도 어김없이 1 포인트였기에 정말로 상대방이 신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뉴욕까지 날아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마스터 조가 47 포인트를 패한 것은 0.5 포인트를 패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이전까지 계속 1포인트만을 졌던 걸 그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게임을 했던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던 것이고요.”

   그분은 내가 말을 마치자 흥미롭다는 투로 대답했다.

  “실은 나도 그가 일어서면서 이제 신을 믿는다고 말하기 전까진 조마조마했다네. 과연 그가 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의문이었던 거지. 그리고 그가 진실에 비추어 진리를 발견해 내는 사람이라는 보기 드문 케이스였던 게 확인 되고, 내가 광야의 외침을 흉내 낸 예시로써 그를 선택한 게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 했을 땐 나로서도 짜릿했어.” 

  나는 그분이 짜릿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게 은유적인 표현일 테지만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분이 한없이 낮은 곳에 내려와 있으면서도 전혀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건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왕 앞에서 느껴야 하는 두려움 같은 게 이 자리에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분은 나를 지지해주며 기뻐했다.

  “데이비드. 그대가 비로소 나의 친구가 될 생각을 하게 되다니 기쁘네. 나는 우리의 대화가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진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나는 자네의 상담자이고 변호자로서 자네의 마음이 내게 완전히 열리기 바란다네.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도 우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거야.

  모든 사람들이 천 살 가까이 살았던 아주 오랜 옛날엔 구백 살 먹은 증손자와 구백 오십 살 먹은 증조 할아버지가 서로 수염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쳤을 것 같지 않나? 그렇다면 그들에게 새를 잡는 법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열두 살 먹은 아이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야. 중요한 건 예절을 알고 있느냐 일 테지만,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는 사실 외에는 별로 염두에 둘 건 없을 테지.”

  가다는 그렇게 신의 말을 통역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와 그분 사이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통역자로서 모든 대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다.

  “데이비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 난 그대가 나와 대화하는 도중에 어떠한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거나 추악한 잡념을 떠올린다거나 할지라도 나무랄 생각은 없다네. 그건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의 콧물을 더럽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옷자락으로 닦아주기를 마다않는 일과도 같아.

  또 어차피 인간의 뇌는 하루에도 수천 가지의 잡념을 떠올리도록 설계되어 있어. 다만 중요한 것은 손자가 할아버지를 두려워해서 가까이 하려 않거나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만큼 울어버린다거나 하는 일이야. 그리고 그러한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내가 그대들이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을 때 비로소 찾아와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만일 마스터 조가 전성기일 때 나와 마주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과연 그가 아까처럼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서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을까 생각해 보게. 바둑이라는 게임에 있어서 많은 천재들이 등장했지만 사실 마스터 조를 능가하는 천재는 없었어. 어떤 자는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미지만으로 상대와 복잡한 게임을 끝까지 치러 내기도 한다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마스터 조는 외국에서 우연히 만난 체스 지역 챔피언과 체스를 두어서 이긴 적이 있었지. 그 때 그는 체스를 둘 줄 몰랐지만 체스 두는 법을 배운 자리에서 애송이 챔피언을 두 판 연속으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어. 만일 그가 독학을 하다시피 직관적인 바둑 공부를 하지 않고 오늘날처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더라면, ‘바둑의 신’이라는 별명은 그의 제자가 아닌 그의 것이 되었을 거야.

  데이비드.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어느 똑똑한 두뇌에 의해서 시간이라는 것도 물질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을 알 거야. 그렇다면 나는 자네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와 인식과 수의 체계들 사이에 인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여보기를 권하고 싶군. 그리고 이제부터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신을 폭풍이나 몰고 다니며 눈에서 불꽃이나 뿜어내는 두려운 존재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

  그대는 생명을 던져버리려 했을 만큼 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지닌 사람이지. 그대의 고민에는 모든 사람의 의문을 풀어줄 만한 대표성이 있었기에 나는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럼 이제 내가 세상에 사람을 창조할 생각을 하게 되었던 이야기부터 먼저 들려주고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사실 아직까지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할 수 없거든. 언어란 단어들의 뜻을 알고 있는 일도 중요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들의 기억과 배경이 다른 점에서 비롯되는 오해를 먼저 해소할 때 비로소 소통의 기능을 발휘한다네.

  자. 데이비드. 언어와 대화와 영(靈)이 동의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소수의 그룹에 들어오게 된 것을 환영하네. 그럼 나와 내 아들과 사람이 어떤 관계로 맺어져 있는지 그 사연을 들어보도록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