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음 소리

세 놈 수탉 중 덩치도 빨리 크고 벼슬도 제일 먼저 치솟은 놈이

기선제압에 성공해 장 닭이 되어 닭장을 장악하고 위세를 부리고는 있었지만

몇 번 싸움에서 밀려 비록 지금은 숨을 돌리느라 날개쭉지를 내리깔고는 있지만

분을 삭이고 있는 눈동자에 살기가 그득 넘치며 전혀 승복할 마음이 없어 뵈는

2위 자리 수탉 놈이 호시탐탐 그 자리를 엿보고 뻑 하면 죽기 살기로 싸워대는

닭장엔 항시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즐겼다

언제 뺏길지 모르지만 우선 내 소유로 일단은 도장 쾅쾅 찍힌 내 암놈들에게

행여 수탉 두 놈 중 하나라도 암놈 근처에서 기웃거리기라도 할양이면

죽어라고 얼씬도 못하게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죽일 듯 제압해가는

장 닭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는 손에 땀을 쥐었고 목을 길게 빼고

“꼬끼오~~꼬끼오~~” 우렁차게 승자의 표호를 질러대면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대장부(大壯夫)의 壯자를 왜 장 닭에게 주었는지 알 것 같으이”

점잖으신 순배 형님 말씀이다

“고놈 시키 참 대단하다 대단혀!”

요건 다섯째 윤氏 동생

“야! 사람 수놈 보다 낳다”

六口同聲

여섯 사람이 입을 모아 한 소리다

싸움이 끝나고 승자가 결정지어지면 천하를 얻은 호걸처럼 장 닭이

동네의 고요를 를 짓밟고 목을 길게 빼내 호호탕탕 우렁찬 울음을 토하며

보무도 당당히 거만한 행진을 시작하면 뒤를 따라 교태를 가득 담은

모든 암놈들이 꽁지를 살랑살랑 흔들며 졸졸 따라와도 눈길한번 주지 않는

장 닭이 뿜어내던 그 강력한 권위에 수놈 모습은 자못 장쾌해 보였다

엄처시하에서 첩(妾)은 커녕 여자 치마 벗은 그림자는 감히 꿈도 못 꾸고 사는

불쌍한 사람 수놈으로 상대비교가 돼서 더욱 그랬던가보다

내가 지른 호령소리 같아 동네 남정네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며 대리만족을 주었던

장 닭의 위엄 가득한 울부짖음 소리를 처음에는 우리 모두 사랑했었고

가슴 한 컨을 뚫고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만들던 장 닭의 카리스마가

은근한 부러움으로 심연에서 자라 가슴 가득히 피어 올렸던 흥분과 그 설레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 할 수없는 진실 이였다

툭 하면 보따리 챙겨 새끼 버리고 집 나가도 성격차이라고 우기면 그만이고

여자 눈탱이에 멍든 흔적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니 집이고 내 집이고 가릴 것 없이

나라 팔아먹은 놈 취급으로 길길이 날뛰며 이혼하라고 때 거지로 몰려가 방방 떠들어 대는
 
우리네 아버지 시절쯤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축에도 들지 못했을

개 같은 일들을 뭔 큰 벼슬이라도 금방 뚝 떨어지는 걸로 알며 다반사로 저질러대도

남자는 그저 묵묵히 참아야 가정의 평화를 자킬 수 있다고 세뇌 되어

가엾은 머슴 자리 철창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 장 닭의 표호는 하나의 꿈 이였는지도 모른다

나뭇가지가 뿌리자리를 대신해 땅 속으로 들어가고 거꾸로 뿌리가 가지되어

햇볕 밖으로 나와 말라가는 나무처럼 음양이 뒤집혀 개판보다 더 무서운

완전 여자 판이 되어버린 이 혼탁하고 빌어먹을 세상에

탄식을 꽁꽁 감춰 두고 사는 게 나 뿐만은 아니 엿을 테니까 말이다

뒤엔 모두 후회 했지만 불구경 쌈 구경이면 10년 앉은뱅이도 뛰게 만든다더니

뚝 떨어진 벌판에 자리 잡은 동리라 집에 들어오면 무료하기 그지없던 우리네에게

심심파적의 볼거리를 만들어준 양氏를 영웅대접 해가며 하늘 꼭대기로 치켜세운

오두방정을 떨어댄 주둥이들이 화를 부르는데 일조를 한 것은 어쩌면 작은 실수였다면

투계 장을 만들어 고맙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면 자다가도 벌떡 뛰어나오는

양氏를 부추겨 처음에는 비온 뒷날 드센 쌈판을 기대하며 막걸리 옆에 차고

닭 먹인다고 지렁이를 잡으러 진창을 뒤지러 삽 싸들고 다닌 설레발들은

닭 잡자고 입도 뻥긋 못하게 화근을 심은 일로 담배 한 갑을 다 뜯어

입과 코에 피워 물고 귀 구멍 까지 연기를 뿜어내도 겨우 진정 될까 말까 한 큰 실수였다

다처(多妻)를 거느려 부럽던 장 닭도 웃음을 자아내던 암탉들이 보여준

애교를 듬뿍 담은 살랑 거리는 우스꽝스런 그 몸짓도 나중에는 다 귀찮아졌다

골을 지끈 거리게 울어대는 그놈에 닭소리로 동네 모두가 얼마 지니지 않아

울지 않아도 환청으로 까지 들리는 짜증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 했지만

비실거리며 서열 싸움판에 끼어들지도 못하는 3번째 수탉에게도

정성을 쏟아 비타민이 든 영양제를 갈아 먹여가며 싸움닭을 을 만들려는

양氏 그 사람이 정신 줄을 놓고 투계에 맛 들려 반은 미쳐가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살짝 같이 돌아있던 동네 사람들이 눈치 채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 이였다

시끄러운 닭소리 때문에 다들 모여 분분한 의견만 쏟아내다

말도 못한 울화로 집에 기어들어갈 정도로 만취한 공氏를 집에 보냈던 다음날

제자를 대타로 내세운 스승처럼 일선에서 후퇴한 공씨宅이 내지르던 귀곡성 대신

장 닭 웃음소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줄 몰랐던 것처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