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내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아. 처음에 나는 작은 존재였어. 시작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솔직히 기억이 나지는 않아. 그것은 우주가 날 만들었는지 내가 우주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이야. 그렇지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나에게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 비록 시작점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 후의 현실은 분명해. 그것은 빛과 어둠이 벌거벗은 달 위에서 나누어지는 것과도 같아. 나는 알고 있어. 나는 우주이며 우주는 나다.

  나는 별은 아니지만 별들로 인해 존재해. 별들은 내가 아니지만 나로 인해 아름다울 수 있어. 별들은 내가 존재할 수 있기 위한 터가 되었고, 나는 별들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 거야.

  나로 인해 별들은 은하를 이루고 성단을 이루지. 별들은 단순히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니야. 한정된 언어로 묘사하자면, 호흡하고 있는 형태를 닮아 있다고 말할 수 있어. 어쩌면 박동하는 중이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군.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별들이 그저 흩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 어리석음만큼은 우주 안에서 사라졌으면 해. 그것은 별과 별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이기도 하며, 은하들을 조화롭게 사귀게 하는 나의 힘이 한 장의 스틸 사진이나 그림으로 표현되길 원하는 태도이기 때문이야.

   나는 비록 내가 우주를 만들었는지 우주가 날 만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우주를 사랑하고 우주는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것은 기억이 아니며 그저 알고 있는 일이야. 따라서 나는 스스로 존재하지만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야.

  차라리 우주와 내가 둘로 나뉘어 있다면 위로가 될 수도 있을 터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기쁨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아. 별과 은하들이 나의 손길을 느끼며 만족해하는 일이 반드시 내게로 집중되어서는 곤란하거든. 그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라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유한하니까.

  이처럼 유한함 속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는 나는 함부로 무한함을 드러낼 수 없는 존재야.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래.”

  그것은 내가 들었던 어떠한 자기소개보다 멋졌다. 그분은 겸손하면서도 솔직했으며 자상한 가운데서도 단호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알아야 할 분량만큼 자세하게 설명했다.

  나는 언제까지 울먹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처럼 형편없는 자를 대화상대로 허락하신 그분을 헛수고나 하는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노력해야 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고 들어야 할 것은 듣고 잊지 말아야 했다.

  “당신은 정말로 가장 큰 신이셨군요. 혹시 나와 가다와 같은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있나요?”

  가다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것을 의식하고 잠시 머뭇거렸으나, 신의 메시지를 통역하는 일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첫 사람이자 첫 남자였던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인 적이 있어. 나는 그 때 허공에 스파크를 만들어서 막 태어난 그를 웃게 했지.”

  “아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이름이야. 하지만 나는 그 뒤 첫 여자에게조차 나의 존재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네. 그러고 보면 그대들은 운이 좋은 편이야.”

  나와 가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더 이상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나는 그분이 나의 말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직관력을 최대한 끄집어내어 세계와 신에 대해 내가 이해하고 있는 부분까지 설명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역사는 당신에 관한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그 이야기를 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들과 은하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누가 말하든 언제 설명한들 급하거나 힘을 주어서 말할 이유는 없겠죠. 다만 말과 설명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행운아인가요? 어째서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거죠?”

  그분은 내가 아는 체를 하는 말에 응답을 해 주었다.

  “데이비드. 눈에 보이는 것들의 실상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거야. 친절함 속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어. 광폭함 속에는 사랑을 바라는 열망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인식을 지닌 존재들은 실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일에 익숙하지. 그것은 이제 자신의 실상과 겉모습을 분별할 줄 모른 채, 그대로 삶을 마치는 일에까지 이르고 말았어. 그러한 의미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우리의 만남은 가치가 있는 게 아니겠나. 더욱이 이야기의 결론이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다면 더욱 가치가 있을 거야. 그리고 모든 이야기들의 주체로서, 나는 그것들이 이제 정리되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

  그 동안 너무나 혼잡한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었어. 나에 관한 이야기이든 내가 말하기를 원했던 사랑의 이야기를 대신하는 것이든 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어. 그것은 필연적인 혼돈이었던 것 같아. 나에 관한 전설이든 신화이든, 어떠한 가치나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도 모두에게 도움이 된 일은 드물었음을 알 거야. 정리되지 못한 여러 이야기는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동일한 주제를 마술사의 보자기처럼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게 만들지. 그리고 그러한 일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그만 소통을 포기하게 돼.”

  그분은 말과 말 사이에 간격을 둠으로 해서 나에게 대화 참여를 유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다가 말을 그치고 나를 돌아보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분의 판단은 객관적으로 옳았다. 비록 깨달음을 주는 쪽과 깨달음을 받는 쪽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어도,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흐른다면 필연적으로 오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분은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지상에 말씀이 전해지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분이 세상의 소통이 막히게 된 문제를 지적한 것에 대한 동의를 표현했다.

  “맞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람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주어졌죠. 물질의 역사 속에서 문자로 기록된 사건들은 처음부터 당신이 원했던 이야기의 방식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모든 이야기를 별과 별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나 문자의 기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남기기를 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다는 내가 말을 마치자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다시 그분의 말씀이 보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데이비드. 나는 내가 특별히 조성한 한 행성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울로 비추듯 정리해서 말하려고 하는 중이야. 짐작하겠지만 그 별의 이름은 세상이야. 다른 표현으로는 지구라고도 하지.”

  그분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만남이 있게 하기 위해 그분이 예비하였던 일들에 대해 들려주었다. 나는 매 순간 불신하고 원망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보내준 선물을 맞이하는 순간 모두 용서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식이 요란한 산악자전거를 타고 온 피자 배달부 사내는 내가 거스름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기분이 좋아져서 잠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3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그는 흑인 혼혈의 외모였는데 영국식 발음을 지닌 게 특이했다. 그는 자신의 보스인 히스페닉계의 성질 고약한 매니저가 피자 배달을 요청하는 팩스를 전해 받고 주문을 접수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팩스로 받았던 주문서를 내게 보여주었다.

  거칠게 뜯겨져 나가 있는 팩스 종이에는 예상했던 대로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닌 컴퓨터로 입력된 글이 쓰여 있었으나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1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호수 동편. 유대인 박물관이 보이는 벤치. 치즈 더블 레귤러 피자 라지 사이즈 한 판. 콜라 두 개.’

  다만 그렇게만 쓰여 있었다. 그리고 피자 배달부는 그 팩스 종이가 나와 가다에게 기념이 될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라도 한 듯, 돌려달라고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가다와 내가 피자를 삼키고 콜라를 마시는 중간에도 그분은 틈틈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분은 우리들 사이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주변이 조용하도록 모두 비웠다고 했다.

  그분은 뉴요커들이 센트럴파크 동쪽 산책로를 걷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였고, 뮤지엄 마일 거리를 방문하려는 관광객들에게는 5에비뉴의 쇼핑몰이나 애플사 매장 같은 곳에 먼저 들르고 싶은 마음을 부추겼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분은 자동차 운전자들이 센트럴 파크 이스트 드라이브 코스에 접어들기 전에 밖으로 나갈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고 있는 중이며, 뮤지엄 마일의 도로로 진입하려는 차들을 고장 낸 게 17대 째라고 알려주었다.

  “안타까운 일이야. 문명이 발생한 지 6천년이 다 되어 가는데, 사람들은 길이 막히는 일을 겪는 정도로도 누군가를 증오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소리를 듣지 못해. 하루를 망치기보다는 길을 되돌려 다른 일을 하도록 하라는 나의 충고는 그들이 돈을 지불하면서 사려고 하는 태블릿 피시나 드레스보다 값지다는 걸 모르고 있어. 저런. 82번가에서는 두 사내가 서로 욕을 하기 시작하는군.”

   그분은 그렇게 말을 한 뒤 자신이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길 원하는 듯했다. 그분은 필요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일과 한 개인의 영의 밀도가 바뀌도록 인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은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그분이 나와 가다에게 있어서도 같은 마음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큰 감동을 느꼈다.

  사실 방금 그분이 한 말은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경전의 기록은 축자영감에 의한 것이 아닌 개인들이 체험과 깨달음을 통한 기록을 남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쪽을 지지하는 듯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는 그분이 일을 하는 방식을 접해보니, 개인들의 체험과 깨달음마저도 필요하다면 그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신의 진화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수천 년의 시간이 걸려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아무런 생각의 연상 작용도 없이 한 단어가 내 안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엔트로피’

  그것은 내가 떠올린 생각인지 아니면 그분이 내 마음에 심어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빨대를 입에 물고 연신 콜라를 마시는 가다의 시선이 대수롭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음을 확인한 뒤 박물관의 안내판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출애굽기의 내용이 후반부에 이르고 있었다. 가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그분은 내가 떠올린 엔트로피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별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나는 가다가 피자 박스와 콜라 컵을 치우는 걸 도울 생각도 못하고 잠시 멍한 채였다. 오후의 햇살이 숲속 곳곳에 파고드는 가운데 감도는 정적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지구가 회전을 멈춘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나른함에서 비롯되는 불쾌감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나는 모든 지성인들이 염원하였으나 얻지 못했던 순간을 독점하고 있는 행운아였다. 나는 신을 만났고, 신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인류가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혼돈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가 얼마나 철부지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