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울음 소리


“나가! 빨리 안 나가!

나가란 말야!!“

양은 냄비를 칼끝으로 좍좍 긁어댈 때 나는 온 몸의 소름을 쪽쪽 돋게 하는

몸서리를 동반하게 만드는 앙칼지게 째지는 금속성의 그 소리보다

더 소름이 돋아 부르르 진저리를 치게 찢어지는 목소리가

새벽의 고요 속으로 마구잡이로 뛰어들며 작은 망설임도 없이

아직 다 꾸지 못한 새벽꿈에 매달려있는 잠을 미친 년 널뛰듯 하며 산산이 부숴댄다

어째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저 지긋지긋한 소리가 또 들리는걸 보니

오늘 하루는 완전히 잡쳐버린 영판 김새는 날이 될 것이다

아직 잠자리에는 어둠의 여운이 이불에도 조금 남아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에 닥쳐올 재앙에 대비해 마음 단단히 먹는 게 현명한 일이다

어떻게든 더 비비고 누워 있으려고 무한 인내를 가동한다 해도

후 폭풍으로 부록처럼 따라오는 악악거리는 앙칼진 소리 장단에 맞춰

품목과 가격을 상관치 않고 손에 잡히면 무조건 집어던지고 때려 부수는

살림살이 새로 장만하는 소리까지는 어떻게든 참아 보겠지만

한번 시작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개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두 다리 쭉 뻗고 퍼질러 앉아 방바닥을 두드려 대가며 울어 대는 건 정말 견딜 재간이 없다

“저 웬수같은 놈의 인간

저 인간 처음 만났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렇게 잔잔한 원망으로 시작해 그렁저렁 견딜만한 소강상태의

숨 고르는 쉬는 시간이 지나고 끓는 가슴 솥에 안친 설움이 슬슬 익어가

김이 살살 뿜어져 오르면 다음 차례는 어김없이 살벌한 곡(哭)이 뒤 따라온다

“아이고! 아이고!!”

엔진점검을 하듯이 목을 다듬는 곡(哭)소리가 몇 번 시동 음처럼 들리면

새벽잠에서 벼락 맞고 깬 동리 사람들은 신속히 마을 밖으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t.v에서 울려 나오는 애국가를 죽어라 힘차게 따라 봉창하던지

빠른 선택을 하지 않으면 뒤따른 폭풍에 휩쓸려 귀를 찢거나 가슴을

쥐어뜯어야하는 돌아버릴 것 같은 처참한 상황에서 탈출 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녹음기보다 더 정확히 반복되는지

두해도 안지나 동리 사람 모두가 저절로 외워서 줄줄 꿰차게 된 사설과 푸념이

소름이 쭉쭉 끼치는 통곡에 섞어 풀어져 나오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또 들어야하는 그 괴로움은 삶에 의욕을 상실케 하며 작은 지옥을 연상케 했다

“날 죽여라!

날 죽여!!!“

끝날 무렵에 들려오는 소리다

조금 더 흐느끼는 잦아든 울음이 귀에 윙윙하는 곡(哭)소리와 버무려지면 끝이다

눈 뜨자마자 새벽에 귀속을 찢어져라 후벼 파고 들려오는 여자 곡(哭)소리를

생판 영문도 모르고 그저 끝나기만 길게 모가지를 빼고 들어야 하는 이 괴로움은

아마 부처님도 공자님도 참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아! 이 사람아

나가라고 그러면 멀찍이 나가있다가 들어오면 좋잖아

왜 그렇게 버티고 앉아 동네를 시끄럽게 해!“

토백이로 칠순(七旬)이 가까운 동리 맏형격인 순배형님이 점잖게 타이르다

나가랜다고 시켜 옆자리서 떠났다가 응징당한 표적으로 생생히 남아있는

공氏가 윗도리를 벗어 보여준 팔뚝에 깊숙이 박힌 이빨 자국과

그나마 사회생활의 지장 없게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 상체 곳곳의 나있는

손톱으로 긁어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보고 우리는 아연실색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그라고 우찌 산단 말이고?”

혀를 끌끌 차는 둘째 벌 하종형이 안쓰럽고 한심타는 표정을 지으면

“우리 샥씨 미워들 마시시오!

지가 술만 안 먹으면 괜찮은디 고놈의 술 술이 웬수제라“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제 주둥일 때리며 남산만한 덩치를 흔들며

실실 웃으며 지 색씨 역성드느라 입에 거품이 마르지 않는 공氏 동생을 보면

아무리 찾아도 침 뱉을 자리는 조금치도 없다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얼굴로 히죽히죽 웃으며 막내벌인 공氏 동생이

제 잘못이라고 집집마다 빌고 다니면 덜잔 잠 값 내놓으라고

턱을 디밀 수도 없는 일이고 그냥 유야무야 없던 일로 덮어두고 한지가

꽤 됐지만 재발방지의 뾰족한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가끔 떨어지는 벼락을 예방하는 길은 오로지 공氏 동생 목구멍으로

술 넘어가는 일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인이 서울 아들네로 들어가 비워 두었던 안쪽 마을을 향한 밤나무 집으로

끄트머리에 이사 들어온 40代 중반에 공氏 동생네가 이사 오던 날

덩치가 산만한 커 단 남편 반쪽도 않되 보이는 작고 여려 보이는 청순한 공씨宅 이

떡이며 눌린 돼지머리고기를 푸짐하게 내어오며 곁들인 홍어무침의 맛이

어른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럽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참 조신하고 좋아보였는데 그렇게 무시무시한 여자인줄 눈치도 못 챘다

본인도 창피해하며 감추고 있고 해서 다들 쉬쉬 모른 척은 하지만

뻥 뚫린 벌판에 새벽에 일어났던 일을 누가 모르랴?

멋도 모르고 어른노릇 한답시고 부부사움 하는 틈새에 둘째 벌 하종형이

괄괄한 성격에 소란을 참지 못하고 들어가 한마디 했다가 혼뜨검이 났었다

“이기 뭔 소란이고 여기가 당신들 둘만 사는 동네가 조용히 못하노!!

목에 힘주고 소리 한번 질렀다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작고 가녀린 공씨댁(宅)이

팔짝 뛰어 올라 대뜸 멱살잡이를 하고 대롱대롱 매달리며

“당신이 뭔데 남 사는데 와서 감놔라 배놔라야

그렇게 맘에 안 들고 비위에 안 맞으면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잠자다 선불 맞은 황소마냥 가타부타 절차생략하고 마구잡이로

독기를 풀풀 날리며 악다구니를 쳐대는 공씨宅에게 하종형이 끽 소리도 못 내고

앗! 뜨거라 황황히 돌아온 뒤에는 동네사람들은 그들 부부싸움을 모른 척했고

그저 소나기 지나기만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들 미치겠는 건

두 사람의 싸움은 환장하게시리 꼭 꼭두새벽에만 한다는 것이고

공氏 동생이 술만 마시지 않으면 평소의 순박하기 그지없는 공씨宅은

새벽동네를 깨우는 소란 피운 일에 사과를 일체 하지 않는 그 무례를 생략한다면

요조숙녀로 더 없이 상냥하고 얌전하기 그지없다는 것과

술 마신 날 그렇게 길길이 날뛰며 남편을 쥐 잡듯 하는 이유를 두 부부가 함구하고

작은 추측의 단서마저 흘리지 않고 어떤 이유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배형님과 동네 토백이로 남아있는 넷째 벌 양氏네 넓은 텃밭을 두고

뒷담과 창문 등이 울타리처럼 경계를 세운 여섯 집이 이웃해서

춥고 눈 내리는 겨울을 빼고는 봄부터 가을 문턱을 넘기 전 까지는

텃밭에 자란 상추 등을 뜯어 가끔 너 댓집씩 모여 소주의 삼겹도 굽던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그림은 이웃 간 다정도 해보이고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공氏네 부부싸움 외에는 이쪽저쪽 타지에서 모였지만 아래위턱 질서 유지도 그럭저럭

잘 지켜지고 있던 동리 평화의 금이 슬슬 가기 시작한 건 엉뚱하게도 닭 때문 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