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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은 끝이 났다. 게임 시간은 한 시간이 넘었을 게 틀림없었다. 해가 떠 있는 위치로 보아서는 이미 정오 근처에 이른 시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스터 조와 가다의 게임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던 같았다.

  서둘러 이곳을 떠나 급히 실행해야 할 일이 있던 나로서는 두 시간 가까이 말 한 마디 않은 채, 보드게임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돌을 놓는 매 순간 시간이 정지한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나는 그곳에서 한 번도 눈을 떼지 못했다.

  게임 초반에, 빈틈없이 포위당한 상대의 돌들을 집어내는 룰조차 몰랐던 가다가 두 시간 가까운 플레이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보드 위에 검은 돌들과 흰 돌들이 잔뜩 뒤엉켜 있는 어느 시점에서, 마스터 조가 게임이 끝났다고 알려줌과 동시에 자신이 47 포인트 졌음을 시인한 일이었다.

  마스터 조의 입술과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보드 위에 펼쳐진 게임 내용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드 위에는 검은 돌들이 만들어낸 영역이 커보였고, 흰 돌들이 만들어낸 영역은 비교적 작아보였다. 적어도 승패에 관해서라면 나와 가다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할 뿐이었다.

  마스터 조가 가다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가다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가다와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태도에서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가 나와는 악수를 생략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불쾌감을 느껴야 하는 게 당연할 것 같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노년의 동양인 사내가 받았을 충격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을 터였다. 나는 그를 배려해야 했다.

  이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한 가지 비밀을 가슴에 안고 조용히 살아가든지, 아니면 세상은 넓고 천재들은 많더라고 그의 게임 친구들과 껄껄 웃어 버리는 일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할 것이었다.

  마스터 조는 가다를 향해 일본인보다 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엉겁결에 그의 행동을 따라한 가다는 이제 눈물을 닦아내고 미소를 머금을 만큼 안정이 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이번 기회에 확인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녀는 보드 위의 격자무늬에 검은 돌과 흰 돌을 번갈아 놓아 게임을 벌일 수 있다는 걸 간파해낸 순간, 그 게임 안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변수들까지도 예측해낼 만큼 뛰어난 직관력과 두뇌 회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쯤 애정 문제 같은 일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자신의 행동을 충분히 반성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이제 신을 믿습니다.”

  마스터 조가 그렇게 말했을 때 가다는 감동적인 눈빛을 만들어 내느라 눈이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조는 그녀와 뜻이 통했음을 확인했는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몸을 돌리면서 나에게 눈인사를 보냈을 때 그의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다. 자신을 마스터 조라고 소개했던 동양인 사내는 그가 걸어왔던 남쪽 길로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마스터 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해 보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가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우연히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인지 결론을 내려야 했다. 아무래도 가능성은 후자보다 전자가 높았다.

  나는 가다에게 전에 그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는 게 맞느냐고 물어보아야만 했다. 그런데 가다를 불렀을 때 그녀는 마침내 내가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했다.

  “이봐요. 가다.”

  “데이비드. 아까는 내가 플레이를 한 게 아니었어요. 신께서 이곳에 와 계셨던 거예요.”

  나는 화를 내고만 싶었지만 부정적인 말들을 동원해 신을 변기 속에 넣고 물을 내려버린다고 해서 사실을 밝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그녀가 찬미하게 될 신의 임재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다는 벤치 위에 놓인 보드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이 되더니 보드 위에 놓인 그녀의 검은 돌들 위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한 동안 그러한 모습으로 있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녀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거나 그녀 자신만 볼 수 있었던 신의 모습을 묘사해주길 바랐다. 그 외의 다른 증언은 곤란했다. 이 세상엔 신이 굳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놀라운 일들은 얼마든지 발생하고 있었다. 많은 수의 사람과 많은 우연이 겹치다 보면 그 가운데서 기적은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나의 삼촌 라빈은 토라와 예언서를 펼칠 때마다 지난 밤 꿈에서 본 장면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보스턴 유대교 회당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전처인 샬롯의 어머니 마가렛은 그녀가 다니는 가톨릭 성당에 출석하는 일을 빼 먹을 때마다 집 앞 골목에서 붉게 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사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샬롯이 재산분할 문제로 다투고 있을 때 찾아온 그녀의 눈에서도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가다는 아까 마스터 조가 앉았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 순간 나는 이대로 마스터 조처럼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그럴 수 없었다. 확률은 반반이었지만 어쩌면 가다에게서 획기적인 증언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이곳에 신이 와 있었다는 확신이라도 얻게 된다면, 나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가다의 맞은편에, 아까 가다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가다는 아직 치워지지 않은 보드와 그 위의 돌들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겪었던 신비한 체험에 관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늘구멍만한 작은 빛이었어요. 나는 혹시 내가 준비한 종이에 구멍이 뚫려 있는 줄 알았죠. 하지만 종이 밑의 벤치에서 빛이 나올리는 없잖아요. 내가 계속 바라보자 빛은 점점 커졌죠. 그리고 마침내 여기 있는 돌들만 한 크기까지 커졌어요. 빛은 이 보드 위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어요. 나는 그 빛이 보이는 위치에다가 돌을 올려놓기만 하면 됐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실망은 컸다. 또 같은 패턴이었다. 내 주변의 모든 종교는 항상 그 정도였다. 신은 그렇게 밖에는 자신의 실체를 증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더구나 그러한 신비체험이 내 것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언제나 감수성 높은 여자들이나 맹신자들의 점유물이었다.

  나는 신을 만나러 가던 중이었다.

  내게 있어서 자살자의 영혼이 지옥에 빠지게 된다는 협박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내 삶은 이미 지옥이었다.

  가다가 믿는 알라가 그녀에게 빛을 보여준 사건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주의해야 할 게 있었다. 그러한 빛은 절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빛 따위를 보았다는 증언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만일 가다가 빛을 보았던 일로 월드챔피언을 이겼다는 사실을 내가 믿는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일이면 그러한 감동을 잊어버릴 테고, 모레면 다시 신이 예전에 만들어 놓은 세상의 혼탁함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가다는 자신의 놀라운 체험에 대한 나의 열정적인 반응을 기다리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행동을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보드 위에 있는 흑과 백의 어우러진 그림은 신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흔적이며 증명이었으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손으로 휘저어 버렸다.

  “무슨 짓이에요?!”

  가다가 안타까운 얼굴로 외쳐보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나는 보드 위에서 돌들을 쏟으며 옆으로 밀어내었다. 그리고 가다에게 도전적으로 말했다.

  “보드를 봐요. 지금도 빛이 보이나요? 그럼 다시 한 번 빛을 따라서 돌을 놓아 봐요.”

  가다에게 알라와 여호와보다 큰 신이라고 스스로 소개했던 그 존재는 이미 달아나버린 후였다. 가다는 패배자처럼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기분이 좋아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놓아두었다가는 쾌감으로까지 자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주제넘게 인간 세상을 기웃거렸던 신을 쫓아버린 용감한 행동에 대한 보잘것없는 보상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 가서 나만의 방법으로 신을 만난 뒤, 여러 가지 계시로 인류를 구원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하는 그 낯짝을 비웃어주면 될 것이었다.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군요.”

  이번에 먼저 일어난 것은 가다였다. 그녀는 마침내 나를 포기하기로 작정한 듯했다. 나는 그녀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듯 미소를 띤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작별인사를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적은 깊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주위는 밤보다 조용했다. 멀리서 차 소리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만도 한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최소한 근처에서 새소리나 벌레소리라도 들려올만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가다는 먼 곳을 응시한 채 굳은 듯 서 있었다. 지금쯤이면 그녀는 나를 향해 불신자를 혐오하는 게 옳다고 말한 무하마드의 가르침을 따라 욕을 하거나, 아니면 아듀나 아디오스 중 적당한 작별인사를 말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줄곧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그녀가 다시 대화를 처음으로 되돌리기 위해 생각을 집중하는 중이라면 큰일이었다. 나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뒤 고개를 빼고 가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가다의 표정은 아까 그녀가 마스터 조와 게임을 시작할 때 보드 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환희를 머금던 것과 비슷해 보였다. 아니, 이번엔 그때보다 더 격렬한 떨림과 감동을 체험하는 듯도 싶었다. 나는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녀의 손을 보았다.

  역시 그녀의 손은 주먹을 쥔 채 떨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이번엔 어떤 빛을 보았을까 궁금해져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유대인 박물관의 안내판이었다. 그곳에선 여태까지 토라의 내용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재생되고 있는 구절은 토라의 두 번째 권인 ‘웨 엘레 쉐모트’였다. 그것은 ‘그리고 그 이름들은’이라는 뜻이었는데, 흔히 엑소더스 또는 출애굽기라고 불리는 경전이었다.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의 주체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으며, 그들은 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여 삼 개월을 걸은 끝에 시나이 반도의 꼭짓점 부근에 있는 한 산 앞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신이 모세를 불러 언약을 세우는 장면이 지금 나타나고 있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부끄럽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토록 멋진 신이 제시한 언약을 지키지 못했고,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뉘어 반목하다가 멸망해버렸다.

  방금 재생된 토라의 구절은 바이블 전체를 축약한 주제라고 해도 좋을 만한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뮤지엄 마일 거리에는 왕래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히브리어로 된 ‘신의 말씀’은 물처럼 흘러가버리고 있었다.

  나는 방금 지나친 구절을 읽을 수 있었느냐고 가다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가 히브리어를 알 리도 없었지만, 그녀 앞에 나타났던 조약돌만한 빛과 같은 기적으로는 아무 것도 해석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그녀는 오랜만에 입을 열어 말을 하였고, 나는 소름이 돋는가 싶더니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아....... 모든 세계는 다 그분께 속한 것이었군요.”

  나는 죽을 만큼 두려웠다.

  만일 내가 장모 마가렛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두운 골목에서 악마와 마주쳤다고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두려움은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환호하는 대상과 두려워하는 대상을 갖기 마련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신을 경외하는 마음속에 기생하고 있는 신을 혐오하는 속마음을 들키는 것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던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의 심장소리를 귀로 듣고 있는 걸로 착각될 만큼 나의 심장은 뛰었던 것이다.

  가다는 계속 전광 안내판을 주시한 채 기쁘다는 듯 목소리 톤을 높여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상관없다는 듯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데이비드.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어요. 오오! 데이비드. 그분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세요!” 

  가다가 무어라 몇 마디 말을 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다는 내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내가 여전히 그녀의 말을 무시하는 걸로 알았는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기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음....... 그분께서 우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했는지 말씀하고 계시는군요. 데이비드,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광경을 당신은 못 믿을 거예요. 저 앞에 보이는 글자는 히브리어가 맞죠? 그런데 내 눈에는 히브리어가 눈처럼 흩어져 내리면서 아랍어로 바뀌는 게 보여요. 어떻게 저럴 수 있죠?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원래 저렇게 변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랍어로 새롭게 탄생한 글의 내용은 온통 당신에게 하는 말이에요. 지금도요.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세요. 

  데이비드. 난 자네가 의심하는 걸 책망하지 않네. 하지만 불신자로 남는 것도 원하지 않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데이비드. 샬롯과 헤어지고 빌리를 빼앗긴 일로 인해 그대가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컸던 것을 알아. 하지만 자네가 그녀의 정부를 죽이지 않기로 한 결정엔 무한한 찬사를 보내고 있어. 그리고 이젠 그만 발목에 차고 있는.......”

  그녀는 갑자기 말을 그치고 노여운 얼굴로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내 눈앞에 들이댄 채 소리쳤다.

  “지금 총을 가지고 있다고요? 미쳤군요!”

  가다는 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용서할 마음이 생겼는지 입을 다물고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품에 안은 선물을 몸에서 멀어지게 하여 확인해 보는 아이처럼, 다시 유대인 박물관에서 새로 설치한 LED 안내판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계속해서 히브리어로 된 토라의 내용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가다는 저 글자들이 눈처럼 흩어지면서 아랍어로 바뀌는 장면이 보인다고 했다. 나는 투정과 환희가 교차하는 감정에 휩싸이면서 정신이 아득했다. 여전히 신비는 내 것이 아니었으나 지금 부정할 수 없는 신의 임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펑펑 울고만 싶었으나 참는 중이었다. 내가 흘리게 될 눈물은 이제 살아도 된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또는 내 딸을 내게 돌려달라고 기도할 대상이 생겼다는 벅찬 마음으로 비롯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진실을 알고 싶었다. 내가 체험한 삶의 모든 부조리는 신의 존재유무에 빗대어 생각해 볼 때 납득할 수 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신으로부터 대답을 들을 수도 있을 소중한 순간을, 감상을 해소하는 따위의 일로 허비할 수는 없었다.

  가다는 처음부터 그녀가 신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던 대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그녀 앞에 펼쳐지는 빛의 변화를 해석하고 내게 통역해주는 일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과 나의 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