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평범함에 있다고 하지만 참 하찮은 것에서 기분이 상해보기는 했어도

일상의 습관이나 무심 속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인생을 찾아 본적이 있는가.

어제도 20여 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새벽4시에 들어와 썩은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내일은 영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베개 삼아 골아 떨어졌었다

하지만 쉬는 날은 늘 그렇게 마무리하고 서너 시간 눈 붙이면 또 일어나야한다.

요즘 새벽에 들어오면 주차할 곳이 마땅찮아 불가피 이중주차를 하고 자야하니

나의 피곤한 하루는 잠시고 이웃의 또 다른 아침을 위해 8시전에 일어나야한다

빈자리를 찾으면 그래도 다시 눈을 더 붙일 수 있지만 아니라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를 변명하려 든다면 이설은 한이 없다

그러나 배려를 한다면 잠깐으로 그 메아리는 내가 보고 듣지 못하는 순간에도

멀리멀리 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 훗날일지. 아니면 그 보다 더 먼 훗날이라도.

그것은 내가 배려를 받아보면 그 사람이 보이던 안보이던 보고 듣고 느끼게 되니까.

5개동의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빌라 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부딪쳐도 눈길 주기를 꺼린다.

옛날과 달라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굳이 정을 붙여야하는 이해관계도 없고

어쩌면 그것이 사생활에 지장을 줄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으로 폐쇄적일지 모른다.

“오늘 쉬시나 봅니다.”

오늘은 빈자리가 없어 아예 차가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뭘 할까 생각하다

우리 베란다 밑에 어지르진 파지들을 바라보고 팔을 걷어 붙였다

막연히 기다리면 무료함에 담배만 피울 것을 일거리를 만드니 그 또한 삼매경인가.

뭔 소리를 들었는데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오늘 쉬시나 봅니다.”

재차 들려오는 낯익은 소리에 황급히 일어나며 허둥거렸다.

“ 네. 아…….예~ ^^ 그런데 지수 아빠는 아직 출근할 시간이…….

“ 네 저도 어저께 한잔하고 대리 불러 늦게 왔더니 자리가 없어서요.”

권하는 담배를 같이 피워 물고 세상이 어려워지고 앞으로도 막연하다는 푸념들을

서로 나누며 마침 차가 한 대 빠지는 것을 서로 양보하다 나는 오늘 쉬는 날이고

일을 벌였으니 마무리 할 겸 기다릴 테니 가서 출근 준비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잠깐의 배려를 주고받으며 이른 아침에 이웃을 생각하는 일당백과의 훈훈한 부대낌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파지를 주무르는 손길이 여는 거장 피아니스트 못잖다. ^^:

그래도 싸가지는 하루 종일 그대로 세워두고 차 한 대를 피해 다니는 주민들의 고충은

아랑곳없고 도도하고 거만하여 주차 문제로 아침부터 이웃과 다투기가 여사다.

눈만 배려하고 말로 공 챙기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싸가지 유형으로 공공의적이 따로 없다.

그래도 나갈 때는 무스에 향수 떡칠하고 백미러에 얼굴 들이밀고 매무새 다듬는 꼴이란.

뉘라서 그를 나무랄까. 말로 몽둥이로.

아니다. 

그는 그 방면에 자신이 있고 또 그것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언젠가 먹고 살기위해 수시로 들락거려야하니 편의를 봐서 우리 집 베란다 아래는

주차는 하되 차를 일찍 빼 달라고 점잖게 말한 적이 있었다.

파지모음도 언급하며.(10여년 모친의 소일거리)

뭔데.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걸 똑바로 쳐다보며 웃으며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그렇게 해 주셔야겠습니다.”

40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한참 째려보았다. 나도 쳐다보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오른손을 들어 말대가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 OK. OK ”

우는 아이 사탕 물려주듯. 비웃듯 했으나 지금까지는 지키고 있다.

절집 돌아다니면서 주워들은 소리로 이런 말이 떠오른다.

“법당 불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공염불하는 고양이가 있고 마당에서 빗자루 질로도

도를 깨우치는 이 있고 공양 간에서 설거지하는 부처가 있다“

물론 비슷한 말들을 나대로 해석한 말이니 그 진의는 깊이 따질 필요가 없겠다

파지들의 궁상을 정리하면서 문득 인생의 한 단면을 보았다면 너무 비약한 것일까.

제 할 도리를 다한 두껍고 얇은 포장지와 예쁜 상자들이 이제는 바로 폐품이 된다.

내 어릴 적엔 사과상자도 라면박스도 집안 어딘가를 차지하고 달 지난 달력 접어 깔고

깨끗한 보자기 씌어 놓으면 책꽂이도 되고 선반도 되곤 하였는데.

저 많은 다양한 것들이 그 무엇인가를 감싸 보호도 하고 빛나게도 했겠지.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알리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선 떠오르는 포장지가 언어 즉 말이었다.

배운 만큼 화려하면서 시끄럽기도 하고 담백하고 수수하면서 조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포장지를 보고 듣고 혼돈하고 오해하고 취향에 따라 선호도도 다르고

당사자들도 그 선택이나 성숙도에 따라 펼쳐지는 검무가 다르며 내공 또한 가늠이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그 초식을 뒷받침하는 행마에 많은 비중을 두고 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알려야 하는 시대고 그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시대라 포장의 비중은 크겠지.

그리고 우리는 그 포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선입견에 빠지곤 하고.

오늘날 진실은 실리를 챙긴 후의 일이 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멋스럽고 단단하고 현란한 저 파지들이 지금 우리 집 베란다 아래서 흐드러져있다

베란다 아래 쪼그리고 앉아 파지을 접으며 나는 나를 어떻게 알리고 보여주며 사는지

내 언어포장지는 나를 제대로 보호하고 알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

지금까지의 내 말들은 파지가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버려지지 않고 그것이 내 몸의 일부가 되어 같이 할 수 있을까.

봄날 이른 아침 허리를 펴고 먼 산으로 어리석은 사색을 담배연기에 담아 날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