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 111, 치열함

 선 자세로 발송대장을 기록하며 시간을 기재한다.
거의 일분 이분 간격에 잠시 저쪽편 Air Shooter 를 처리하면 약 삼 분 간격에 계속 보내고 받는다.
에어슈터는 현재 5대 인데 12월에 7, 8층 교수회관을 병동으로 바꾸면 4개 병동이 늘어나 한 병동당 44병상에 176병상이 늘어나게 된다. 에어슈터는 한 라인을 증설예정이다.

 약제부 주간 근무인원 7명 중에 한 명은 에어슈터(기송관)전담이다.
간호부의 차지 처럼 근무자들을 지휘하는 역할도 병행한다. 시간대 별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산적하고 다른 6명 직원들에게 업무지시를 한다. 응급실 한 라인에 보내는 것만도 적지않아 내가 있을때는 슈터를 둘이 처리해도 금방 데스크엔 약들이 쌓인다.

 40개의 기송관(Carrier)은 병동으로 보내면 금방 돌려보내지 않아 항상 몇 개 뿐이다. 퇴원약이 나오면 우선적으로 보내며 응급약이 나와 있는 것을 같은 병동일때 함께 보낸다.  응급약들을 즉시 보내다 보면 기송관수를 감당 할 수 없다. 민첩하면서도 순발력이 필요한 자리이다. 몸을 아끼지 않고 어떤 어려운 근무에도 마다않고 투입되는 믿는 직원도 순발력이 모자를땐 기송관에 투입을 못하고 컨베어 벨트에 투입 할 정도로 쉽지않은 역할이다.

 서서 뒤로 고개만 돌려 시간을 보곤 기재한다. 돌아서거나 발을 옮기는 것 만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동작을 최소화한다. 이렇게 바쁘게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 세상사인데 바둑을 둘때 장고 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시간이 아까운 줄 몰라서가 아니고 그 순간엔 최선의 수를 찾고싶은 욕심때문이겠지 싶다.

 설명회 강사는 본사 MS운영팀장이다.
직원들에게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한 퇴직자 4명의 주장에 대한 입장설명회 이다.
50만원을 더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다 합해야 200인데 돈이 문제가 아니고 본사가 근로자에게 고의로 불이익을 주었다는 주장에 승복 할 수 없어 노동부의 화해조정이 안 되면 소송으로 가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란다. 작년 90명의 인원을 급조하다보니 그 중 몇몇이 노동법에 해박했는지 직원들을 선동하고 회사에 불신감을 가지게 악영향을 끼쳤다. 그 중 한 명이 약제부에서 근무하던 직원이어 소장은 약제부에 문제가 없는지 궁금해 하며 자주 묻는다.

 말 많은 선동가를 그 직원만 뒤로 봉급을 올려 주었던 것이 소장의 실책인데 당연히 다른 직원들은 자신들이 정당한 대우를 못 받고있다고 생각하며 회사를 불신하며 근태가 불량해진 것이다.

 본사 대표도 알게 되었으니 소송까지 가게 될 지 모르는 사안에 현장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할 텐데 설명회는 본질을 외면한 채 변명일색 일 뿐 운영 정상화에 대한 직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대책은 없다. 변수를 다 알아야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인데 대표도 자세한 사항은 보고 받지를 못했겠지.

 이제 몇 해 남지도 않았는데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조용히 지내는 것이 최선일까? S의료원으로 복귀를 신청하는 것이 옳은 처세일까?
본사에 실상과 개선안을 제시하는 것이 의무일까?
처는 복귀를 조언한다.

 직원들은 설명회에 아랑곳없이 오히려 기세등등하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소장도 자기들이 잘리게 만들었다며 반장말이야 우습게 듣지도 않는다. 업무지시에도 고개를 들고 쳐다보기 일수이다.

 병원내의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 소송이 진행중이라면서요 하며 내년 2월엔 업체가 바뀌면 차라리 대우가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위로인지 불구경인지 헛소문을 증폭시킨다. 회사의 令(영)이 서질 않으니 근태도 엉망이고 업무품질도 불량하다. 아픈사람이 있으면 진단을 하고 처방을 하여 환부를 도려내고 약을 투약하는 것이 병원의 일 일텐데 병원속 인사들이 자신의 환부를 모르고 있는것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기송관 앞에서서 일을 하면서도 자꾸 딴 생각을 하게되고 잔실수를 하게된다.
Over Time도 하기 싫어 정시에 퇴근한다. 애착심이 떨어지는 것이지.

 아침 출근길 지하철 역으로 차를 태워주는 처와 잠깐 얘기한다.
복잡한 심경이지만 미리 얘기한다. 이번 달은 근무시간이 적어 봉급도 적을 것이라고.
자신도 힘들지만 이리 열심히 하는데 나는 치열함이 부족한 것 같다는 처의 말에 일순 멍 한 느낌이다.

 최철한 류의 치열함을 잃지 않으려고 흉내내며 살아 보려고 열심히 애써 온 것이 내 평생을 일관한 흐름이었다고 자부했었는데.
고개만 돌려 시간을 적으며 촌음을 아끼고 바둑 한 수에서도 매 순간 치열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장고를 마다 않았는데.
이제 얼마 남지않은 직장생활과 내 평소의 삶에서 치열함이 없다는 평가가 결국 내 성적표일까?

 12월 근무 인사배치를 서류로 작성하여 소장에게 제출하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다.
15일 경 마쳤어야 했던 차월 근무배치 발표를 아직도 결심을 못 한 채 더 생각해 보겠다고 소장은 말한다.
본사에 전화하고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게 스스로 말하는 소장의 바람인데 평생 수많은 직장과 회사에서 일을 해 보았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나 자괴심이 든다.

 바둑 한 판은 최선을 다하며 불리해도 돌파구를 찾고 바둑십결을 실천하는 것인데 설령 져도 최선을 다 한 판은 아쉽지 않은 법인데 이번 판은 내 인생의 마지막 판 인것 같은데.
혼자 두는 판이 아니고 연기의 파트너가 실수를 연속한 것이라 자위해야 하나?
갈 자리 설 자리를 구분 못한 내 부족함 일까?

 아직도 치열하게 살아보려는 내 꿈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