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쁜 소식
창 밖엔 9월의 하늘이 푸르디 푸릅니다.
그 날로부터 벌써 1년 6개월이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아니 1년 6개월이 무업니까…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그 날…그러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두 가지 소식을 가지고 나를 방문한 날…
그 날은 2008년 12월 24일 이었습니다.
< 묵시록 선생, 두 가지 소식을 가지고 왔는데…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어느 쪽을 먼저 듣고 싶으시오?>
천사는 하얀 까운을 입은 젊은 의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방글방글
웃는 동안이었고 설사 나쁜 소식을 전한다 해도 도무지 미워 할 수 없는
인상이었습니다.
< 뭐, 좋은 소식이라야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가 오늘 탄생 할 것이라는
뻔 한 소식일 테고…
나쁜 소식부터 말 해 주시오.>
나는 그 나쁜 소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은 퉁명스런 어조로 대답 했습니다.
< 어흠…험,,
선생의 목에서 발견된 종양이 아주 불량 합니다.
이미 목뼈와 임파선에 전이도 되었고…>
천사는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드려다 보며 말했습니다.
< 아, 그렇군요…그러면 나는 곧 죽는 겁니까?>
< 아니, 아니 꼭 죽는 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다만… >
<솔직히 이야기 해 주십시오,
저는 살 만큼 살았고 인생을 알 만큼 알 사람입니다.
죽음을 통보 받고 쇼크를 일으켜 어리석은 짓이나 할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대로 이야기 해 주십시오.>.
<선생 같은 경우 우리는 보통… 향후 1년 6개월 동안 생존 하실 확률이
40% 라는 통계를 갖고 있다는 말씀일 뿐입니다.>
순간 나는 깜빡 하니 블랙 아웃 상태에 빠져 버린 것 같습니다.
어이쿠…1년 6개월 내에 내가 죽을 확률이 60%란다 …
아니 1년 6개월 내에 나는 죽는다…
잠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며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다만 통계일 뿐입니다
요즈음은 의학이 발달하여 암이라 하여 불치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씩씩하게 치료 받으시면 틀림 없이 나으실 수 있을 것
입니다. >
2. 길 떠날 준비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죽을지도 모른다…아니, 죽는다…이런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으니
심장이 오그라 들고, 온몸에 소름이 돋고, 자다가도 후다닥 깨어나고
또 무언가 고독하고 허망하고… 좌우지간 죽을 맛 이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한 달도 못견디고 …아니 단 일주일도 못 견디고… 나는
암 때문이 아니라 공포로 인해 그만 죽고 말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 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는 죽을 준비를 하여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샬아 있을 시간이 얼마 안되고 준비 햐여야 할 일은 많다고
생각하니 공연히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 했습니다.
편지를 쓰기 시작 하였습니다.
먼저 사랑하는 아내에게…
오랜 동안 같이 살면서도 별로 표현은 못 했지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 했는지 알아 주기 바라오…그리고 집문서와 땅문서는 어디어디에
두었고 예금 통장은 또 어디에…. 몇 푼 안 되는 재산이지만 당신이 알뜰히
…어쩌고 저쩌고…
나는 편지를 쓰다 말고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제법 심각하고 고상하게 시작 하려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용이
점점 통속적으로 흘렀기 때문 이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여기 저기 편지 쓰기를 마치고 보니 에이포 용지로 달랑
다섯 장…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열심히 살아 왔는데
에이포 용지 다섯 장 만으로 마지막 할 말이 끝나 버렸단 말인가…
내 인생의 두께가 겨우 요것 밖에 되지 않았는가 생각하니 좀 쑥스러웠습니다.
쓰기 전엔 책 한 권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 했었는데…허, 참
허망했습니다.
다 쓴 편지는 찢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외로움이 밀려 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여지껏 무난히 한 인생 살아 온 것은 당신들의 사랑으로 인하였노라고
그리고 고마웠노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나 또한 당신들을 사랑하노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편지 따위를 쓰는 것 보다 이렇게 외치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암 선고를 받은지 일 주일 후에 아내에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한달 후에 자식들에게 알렸습니다.
두 달 후에는 형제 누이 들에게도 알렸습니다.
아내도, 자식들도, 형제 누이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도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아, 우리는 서로 서로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는 걸 확인하고는
그것이 기뻐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3. 사신의 방문
나는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 했습니다.
첫날 여섯 시간짜리 주사를 맞고
다음날 세 시간짜리 주사를 맞고
쉬었다가 2주 후에 담당 선생님을 뵙고…
어질 어질 휘청 휘청…항암 주사는 매우 독했습니다.
온 몸의 털이 빠지고…귀도 멍멍하고…정작 괴로운 것은 입맛을 잃은 것입니다.
주위에서는 먹어라 먹어라 먹어야 이긴다…하고 응원 해댔지만 먹느니 차라리
죽는 게 편하다 하는 생각 이었습니다.
체중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65k에서 60, 55, 50,45,,,,무서울 정도로 체중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엔 40K까지 빠졌습니다.
거울을 보니 뻐덩니 처럼 튀어 나온 앞니와 두 눈만 퀭한 해골이
나를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모든 증상이 항암주사의 후유증이니까 참으며 항암 주사나
열심히 맞으면 되겠거니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쓰러 졌습니다. 그리고 입원을 했습니다.
영양실조, 콩 팥의 손상, 그리고 심각한 폐렴 증세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별로 죽음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죽는 다면 암으로 죽는 것이지, 영양실조나,콩팥이나 폐렴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요.
나중에서야 암 환자 중 어떤 이들은 암보다도 폐렴등 후유증으로
돌아 가시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신은 나의 생명을 거두어 가기 위하여 암은 잠시 뒤 켠으로 물러나 앉게 하고는
전초병으로 이런 것들을 먼저 파견을 했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는 항암 치료를 잠시 중단하고
내 배에 구멍을 뚫고 관식장치를 했습니다,
아랫도리에 배뇨를 돕는 튜브를 장착하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헛소리하고 해골같이 말라가는 나에게 수혈을 하는 등
급한 조치를 취해 주었습니다.
침대에 오르내리는 것도 불가능하여 휠체어와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눈을 감으면 잠수복같이 몸에 찰싹 달라 붙는 검은 옷에다 눈 밑까지 덮는
후드를 뒤집어 쓴 무리들이 나를 향해 달려 오곤 했습니다.
그들은 고속 벨트 위에 올라 타고 있는 모양인지 매우 빠른 속도로 나에게
다가 오곤 했는데 나를 스쳐 지나갈 때 마다 나를 나꿔 채려는 것 같았습니다.
또 어떨 때는 좁은 강을 사이에 두고 나는 그들과 활쏘기를 해 대는 것이었습니다.
석궁같이 날카로운 화살이었는데 내 화살을 맞은 무리 중 한둘은
꺄악, 하는 흉측한 비명을 질러 대기도 했는데 다행이 나는 그들의 화살을
한대도 안 맞았던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들이 나를 데려 가려고 온 사신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4. 육 적인 것과 영 적인 것
한 달 가까이 입원 했더니 선생님이 퇴원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몸이 많이 좋아 졌습니다. 너무 혼이 난 뒤끝이라 먹는 것도 억지로라도
열심히 먹어 댔습니다.
비틀비틀 대면서도 산책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 했습니다.
체중도 50k까지 회복 되었습니다.
심신이 안정되며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항암 치료를 시작 했습니다.
항암병동의 주사실은 보통 방 하나에 침대가 여섯 대씩 있습니다
세 명씩 마주보며 누워서 주사를 맞는데 워낙 장시간씩 걸리는 터라
환자들은 아침에 시작하여 점심시간쯤 되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 지게 됩니다.
주사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들이 의외로 젊다는 것이 그 하나였습니다.
여섯 명 중에서 나보다 연장인 분은 하나 아니면 둘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나보다 연하였습니다.
나야 워낙 살만큼 살았고, 꼭 살아야 할 이유도 나보다는 그들이
더 절실할 것 같아, 나보다는 젊은 그들이 얼른 완쾌 되기를 기도 하였습니다.
진심입니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의외로 쾌활하게 투병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떨 때는 병실의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선생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하고 먹을 것을 나에게 권하기도 하는 그들의 얼굴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싸움을 싸우는 암환자 같지 않게
환하고 구김살이 없었습니다.
나는 젊은 그들 보다 의젓하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암 선고를 받는 순간 마치 종말을 맞이한 양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는가 하면,
집문서는 어디에 있고 예금통장은 어디에…하고 호들갑스레 편지들을 써 갈기지를 않나…
나이 값도 못하고 우왕좌왕 하던 나의 처신이 이제와 어이가 없었습니다.
나는 10개월 남짓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육신은 괴로웠지만 마음은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 동안 만난 여러 환자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육 적인 허망한 것들은 하나 둘씩 스러져 갔습니다.
그 대신 마음속에 사랑,온유,기쁨,감사… 이런 것들이 깃들이며
영 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고양되어 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제 병을 낫게 해 주십시오,
저를 살려 주십시오>
이런 기도는 별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요새는 매일매일 이런 기도를 올립니다.
<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사랑 받게 해 주십시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제가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다시 하늘을 봅니다.
나는 여지껏 하늘이 이리도 푸르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나는 여지껏 하늘이 이리도 높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이제와 나는 내 몸에 암이 찾아 온 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하늘이 높다는 것을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