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을 평가하기에 아닌 듯 하면서도 관대하다

하지만 상대를 평가하는 잣대나 자세는 너무나 세밀하고 냉정하다

사랑이란 애정이나 호감을 넘어선 의무적이며 운명적인 그 무엇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배려와 희생이 따라야 행할 수 있다고 본다.

용서란 어쩌면 배려보다 작은 오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그렇게 느껴지는 건 내가 용서했다고 생각하던 것이 사랑 앞에

속절없이 쓰러져 용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그 큰 이름을 50이 넘어서야 제대로 부르게 되었다

물론 지금 전까지 그 이름은 웬수였다.

방탕하고 가정에 불성실했음과 가족에게 행한 수많은 비도덕적인 작태들과

어머님과의 40년 이별의 순간들의 선상에서 그 이름은 분노의 글자였었다.

하지만 할머님이 위독하신데 그 와중에 뇌졸중으로 2차로 쓰러진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 했던가.

참으로 원망스러워 할머니 보다 먼저 가시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말했고

그렇게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경황없이 할머니를 보내 드렸다

그리고 천륜을 다하고 원망하리라 몸을 추스를 틈 없이 달려 간지도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렵다는 의사의 말에 이것이 줄초상이라는 거구나 하고 허허롭게 웃었다

헤어져 산지도 참 오랜 세월이 흘렀고 일 년에 한두 번 찾아보는 게 전부였다가

이제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가 생각하고 그래도 최선을 다하자고 초상을 치루는 와중

간병과 병행하여 정신없이 올 한해를 그렇게 지나왔다

그런데 할머님을 보내드리고 의식을 찾았고 차츰 회복하니 의사도 놀란다.

우리 집에 나의 간병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여동생뿐이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막내

모두 나의 손을 거쳐 다시 일어났다.

내손이 약손이다

이번에도 그런가 하니 어머님도 씁쓸히 웃으셨다

그런데 내가 달려갈 때 말한 것이 천륜에 무릎 굻었지 아버지에게는 아니다

그것은 지난 세월이 증거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연민의 정으로 내가 진정으로 무릎을 굻었다.

회복에 한계가 있어 지금도 어머님과 교대로 간병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심경 변화와 어머님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잠시라도 가족을 느끼고 진정으로 용서받고 가라 했건만.

죽어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건만 지금 가슴이 진하게 젖어온다

죽기 전에는 보지 않으시려는 어머님을 설득해 일상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명분으로

한 맺힌 원수의 간병을 시작 할 때만해도 어머님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나 때문에 일을 거들어 주려 하지만 어떻게 지난 세월을 메울 수 있겠는가.

처음 얼마간은 그 옛날 어머님을 대하듯 하였고 어머님은 다시는 가지 않으시려 했다

나는 보다 못해 아버지에게 이렇게 전했다

“아버지 지금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일 줄 아십니까.

나는 자식이라 그런다 해도 어머니는 당신에게서 버려진지 40여년 만에 겨우 죽어가는

당신의 간병인데 뭐가 그리도 잘났소.

앞으로도 그런다면 나도 못 볼 것이고 얼마나 초라하게 가실지 생각해 보소

그래도 고집을 피우면 나도 아버지 아들이니 내고집도 알 것이요.“

좋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단호하게 전달을 하였다

아버지는 나름의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이유 불문으로 어머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할 수 없노라 강하게 전하고 두고 보라고 말하고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우리 세 번째 절륜 이니

이제 저승에서나 봅시다. 지금에 나보고 욕할 놈 있으면 다나오라고 해.

흥분을 못 참고 어머님과 우렁각시가 불안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일갈하고 그날 저녁

흠뻑 취해버렸다

다음날 그다음날도 아무도 아버지에게 못 가게 했었다

3일 만에 걸려온 전화 목소리는 예전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어머님의 안부를 물어왔다

뭔가 기죽은 듯 포기한 듯 그리고 애원하듯 하는 말.

몸이 안 좋아 어저께 또 쓰러졌단다.

아... 이 원수를.

부랴부랴 달려가니 갈비대가 두 대나 부러지고

팔꿈치도 시퍼렇게 멍이 들고 툭 불거져 있었고 얼굴도 부딪친 듯하였다

그렇게 비몽사몽간에 우리에게 전화를 했다하니 그 측은함에 또 무너졌다

다시 시작한 간병시간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후로 어머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큰일 치르고 간병으로 일을 못하고 일상의 부담은 훨씬 어려워졌는데

어머님의 이가 부실해 고생하는데도 근 300만원의 거금(?)에 어떻게 해야 하나

전전긍긍 죄스러워 하고만 있었고 그러기에 아버지를 더욱 원망스러워 했었다

근데 근근이 원호연금으로 살아가던 아버지가 선뜻 그 돈을 내놓으며 어머님을

치과로 보냈고 그동안 고생 했다며 급한 것 메우라며 200만원을 내놓았다

나로서는 몇 천만 아니 그 이상 셈을 할 수 없는 가치의 돈을 받아들고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다시 500을 더 내놓았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그동안의 모든 설움이 녹을 틈도 없이

저 하늘 높은 곳으로 증발해 버림을 느꼈다

그동안의 우리를 본다면 보상 가치에 코끼리 비스킷이라 할 수 있지만 반신불구로

틈틈이 모아왔던 나름의 전 재산을 내놓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의 용서였다

하지만 내가 용서받고 사랑받는 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가슴이 콱 막혀옴과 함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용서받고 편안해 하시는 모습에 말은 못하고 가슴으로 울었다

나에게 도움을 받아 미안해서 하는 척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고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마지막 도리를 하려했고

당신이 가진 것을 모두 놓고 가실 때 남은 것은 모두 네 엄마 줄란다. 하셨다

그리고  어머님을 빼앗겼다.

무엇이던 어머님과 같이하고 어머님 위주로 행한다.

우리와 식사를 하자고 해도 어머니와 교대하면 그때 같이 먹는다고 극구 사양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만 가고 어머니를 보내라신다.

40여년 만에 나이 80에 재회한 두 분은 지금 막 재혼의(?) 신혼이다

몇 일전부터 해질녘 오후에 기르는 개를 데리고 셋이서 공원으로 산책을 하신단다.

비록 아버지는 전동 휠체어에 밀짚모자를 썼지만 예의 그 당당한 모습으로 앞장서고

어머님은 개를 데리고 그 뒤를 따르리라.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 아름다운 구속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누구에게 신세지고 도움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 진정 서로 마음으로 의지하여

완벽한 人 을 만든다.

가난의 시기와 질투가 결국은 우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고 부자가 된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내가 부자로 돌아왔고

가난이 떠난 빈자리에는 우리 가족의 믿음의 벽돌이 하나둘 쌓여 갈 것이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보고 싶었던 모습이고 부러웠던 소원을 이제 직접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렁각시를 예뻐하고 나에게 고맙다고 두 분이 말씀 하셨다

먼저 할머님이 용서하였고 어머님과 내가 용서 하였고 우리 모두가 용서 받았다

우리를 배려해 갑작스레 자리를 비워주신 할머니가 너무너무 고맙고 불현 듯 보고파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마무리를 하기 위해 다시 앉는다.

용서는 스스로가 구하는 것이고

서로가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할 것이다

그 나머지는 오만이라 보고 나의 생각 끝자락에서 떨어 버린다.

그리고 미루어 오던 산사순례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할머니를 위해 시작한 108사찰 순례가 2회를 남기고 있어

이를 8월중에 마무리하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한 사찰순례로 이어 질 것이며

다시 3년여의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오로와 기우님들 그리고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여

오래도록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것으로 나의 슬픈 간병일기도 끝이다

내일은 두 분의 모습을 담으러 카메라를 준비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