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소리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고향집 소 울음소리다

다음으로 새벽길을 서성이던 소리.

찹쌀~ 떠~억.

그리고 예배당 종소리. 두부장수 종소리. 증기기관차 기적소리....

지금은 사라진 그래서 정겨운 소리들을 떠 올리다 문득 떠오르는 소리가 있다.

만원버스 안내양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오늘은 그 소리를 따라 40여 년 전으로 돌아 가볼까 한다.

까까머리 고딩3년을 경산에서 대구로 통학을 하였다. (최하 고딩3년은 채웠다는)

당시는 시골에서 자부심을 가지는 일이고 일종의 유학생이었다.

매일 다려 입은 교복은 아침이면 노친네 이맛살이 되고 만원버스는

늘 그렇게 타기를 망설이게 하였다.

하지만 즐거움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 시달리면서도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요즘은 성추행이라 몰아붙이지만 당시는 그런 소리는 가당치 않은 시절이었다.

오라이~

안내양의 신호에 버스기사는 왼쪽차선으로 버스를 바짝 붙여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버린다.

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원버스에 죽자고 실어 논 짐짝들을 차안으로 밀어

넣기 위함으로 문짝에 사람들을 안고 매달린 안내양은 그 틈을 이용해 문을 닫는다.

움직일 틈도 없다. 곰탱이 상철 이는 가방을 안고 내릴 때까지 서서 잘 수 있다.

눈치 빠르면 꽃밭에서 한 시간쯤 행복할 수도 있다.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진 안내양 요즘은 뭔가 어감이 그렇다고 도우미라 하지만.

여튼 한사람이라도 더 태우려 밀어 붙이던 그들이 버스옆구리를 탕탕 치며 하던 말.

오라이~

일본말인 듯한 그 말이 왠지 정겹게 느껴지고 그리워진다.

그때의 추억이 버무려진 향긋하고 구수한 풍경들과 소리들 중 하나라 여긴다.

같은 시간대에 자주 만나는 안내양 하고는 친분도 있었고 막연한 호감도 가졌다

나를 보고 늘 얼굴을 붉히던 주근깨 아가씨도 지금은 많이 늙었겠지.

그녀와의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떠오른다.

만원은 기본이니 시간상 꼭 타야하는 버스가 있다. 멀리 종점에서 오는 친구들이

창가에 앉아 있으면 무거운 가방부터 맡기고 각자 각개전투를 하는데 요령이 있다

우선 한명은 안내양을 맡아야 한다.

안내양이 버스 옆구리를 두드리지 못하게 저지를 하고 어떻게든 매달려야 한다.

버스 옆구리를 탕탕 두드리며 오라이~ 하면 끝이니까.

왁작 지껄한 소리 때문에 버스기사는 안내양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안에서 죽는다고

그만 태우라고 오라이 소리가 난발하니 믿지도 않는다. 백미러도 무용지물인 것이

앞뒤로 매달린 사람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데 용케 파트너 소리는 알아듣는다.

도저히 매달릴 상황도 아니고 내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안내양은 매달릴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 위험한 상황이 아찔하면서도 그녀들의 힘과 투지(?)는 대단했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그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밀어 붙인다.

“들어가이시더.”

“조금만 더 들어가이소”

애원과 명령어의 혼합된 목소리는 힘겨운 듯 점점 가빠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여기에 이르면 안내양의 몸부림도 더욱 격렬해진다

좌 3,3 우 3,3 위로. 아래로. 돌리고. 부비고. 밀어 넣고.

안내양 바로 앞에 있는 한 아저씨는 그저 천정만 쳐다보고 있다.

노련한 게 고수다.

“조케따”

열린 버스 승강구에 매달린 안내양의 사투에 버스기사가 지원에 나선다.

오라~이 하는 순간.

버스는 부~웅 하고 출발을 하면서 예의 방식대로 좌측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버리니 매달린 사람들이 원심력으로 버스 안으로 쑥 들어간다.

그렇게 문이 닫히면 모두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돌아간다.

이때 내가 히트 친 멘트가 있었다.

“안내양 니는 조을랑가 몰것지만 한사람만 더 태우면 내하고는 이혼이데이~”

만원 버스 안은 그것으로 웃음바다가 되었고 버스도 휘청 하였다.

하지만 이날은 그 멘트도 고수의 자리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황이 내가 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안내양은 나를 쳐다보더니...

그냥 버스 옆구리를 탕탕 쳐버렸고 매몰차게 소리를 지른다.

“오라~이.”

졸지에 매달리지 못한 까까머리 매미는 가방만 학교로 보내고 홀로 남는다.

그리고 주변의 어색한 눈초리가 거북해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우선 모자를 우로 45도 돌려 위로 30도 치켜세우고 앞단추도 두어 개 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 이빨 사이로 찍~ 침을 튕긴다.

그 정도하고 주변을 힐끗 돌아보면 모두 내 눈을 피한다.

분위기는 됐고.

이왕에 늦었으니 오늘은 엄지를 만나 까치나 되자.

발걸음을 돌려 다시 동네로 향하며 뒤통수가 간지러워 벅벅 긁으며 걸었다.

사실 다시 돌아 볼 자신도 없었고.

만화방에서 이현세 만화를 후벼 파고 있으면 오후에 친구 놈이 찾아온다.

가방과 함께 교무실 출두 명령서 지참으로.

어차피 가방 없이 들어가다 교문에서부터 쥐 터지면서 하루 종일 시달릴 거 없었다.

그 후로 그 안내양을 만나면 누가 보면 살림하는 줄 오해할 정도로 씹어댔다.

“인자 니하고는 이혼이데이~”

이제는 오라~이 소리도 사라지고 까까머리 민둥산의 추억도 희미하다

승차권 30원의 행복은 이제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공중전화 한통도100원이니까.

그 열배 백배 풍요로워야 하는데 그 이상으로 가난하고 빈곤해졌다

그 당시 만석지기 차를 몰고 은행에 빚 갚으러 다닌다.

똑같이 남의 집 셋방살이를 하면서 나아진 건 그렇게 원하던 부자흉내 내기다.

몰래 적금통장을 꺼내놓고 불은 횟수를 손꼽아보는 마음속 깊은 곳 울림소리

진짜부자의 소리와 말라버린 꿈과 이상을 겉치레로 덮어와 이제는 숨구멍조차

막아버렸나 보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허영과 가식과 이기심의 방부제 붕대를 휘감은

움직이는 미이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 온 것이 아니라 죽어 온 것이다.

가끔씩 추억 나부랭이를 부여잡고 잠시 쓴 웃음지어 보는 것이 행복이 되었나.

오늘은 누군가 불러서 소주나 한잔 해야겠다.

근데.

누굴 부르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으면 누가 나를 알아보고 찾아오지?

아...!

나만 감고 있으니 찾기는 쉽겠군.

근데.

정작 누굴 부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