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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독백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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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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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독백
2010-05-27 오전 6:41 조회 4817추천 7   프린트스크랩

 

 

구원(救援)의 독백

 

 구원이란 말이 있다.

 남을 돕거나 구해준다는, 주로 종교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영혼이 주제가 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해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영혼을 구원한다는 말은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게 또한 우리들의 인식이요, 삶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긴가민가하지만 천국(極樂)과 지옥이 있음을 알고는 산다.

 죽으면 누구나 죄에 대한 심판을 받는 것도 알고 있고, 죄인(惡人)은 지옥으로, 의인(善人)은 천국으로 간다는 것도, 사실은 알고 산다.

  더구나 죽음 이후를 고민해 본 사람은, 지옥은 고통이 그치지 않는 불 못이란 곳도, 천국은 에덴동산 같은 낙원이란 곳도, 대충은 알고 산다. 다만, 절박하지가 않아서 그저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뿐이다.

 그런데, 다 짐작일 뿐인데도, 지은 죄가 많아 마음이 편치가 않다. 죄업은 부처님도 스스로 해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육신의 삶을 접고 출가하여, 마음을 닦아 부처가 되는 깨달음의 길로 정진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들은 그 길을, 따라 갈 수도, 따라 할 수도 없어 걱정이 더 하다. 그래서 그저 착하게 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구나, 할 뿐이다.

 그런데, 성경은 아니라고 했다.

 죄는 마음이라 했고, 죄 짓는 마음은 이미 타고 났다고 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그래서 지옥도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무리 착하게 산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人)이 하(爲)는 선(善)은 한자(漢字)의 구성처럼 모두가 위선(僞善)일뿐, 참(眞) 선(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의 시작인 아담과 하와(이브)가 하나님께 순종치 않았든 죄가 죄의 씨앗(罪性)이 된 까닭이라 했다. 모세에게 준 계명도 죄인임을 알고, 회개(悔改) 하라고 준 것이고, 털끝(毫釐)만한 죄도 심판 받아야하는 게 하나님의 공의(公義)이라 했다.

 죄는 어떤 것과도 상쇄 할 수 없다고 했고, 이런 게 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법이라 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는 심판을 면 할 수도, 지옥을 피 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막아만 놓은 것이 아니고, 살길은 열어놓았다고 했다. “네 죄니 네가 알아서 하라”가 아니고, “네 힘으론 어쩔 수 없으니, 내가 이미 갚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2천 년 전,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셔서 세상죄를 지고가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로 이룬 구원이라 했다.

 죄로 죽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公義)이고, 대신 죽게 하신(代贖)것은 하나님의 사랑(仁, 慈悲)이라 했다. 다만, 주께서 하신 이 일을 믿고 그 사랑과 은혜를 깨닫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얼마나 참람하고 기막힌 일인가? 매일 자고나면 더 가까이 다가서 있는 죽음을 보면서, 죄로 인한 절망감에, 얼마나 아닌 체 마음 조려왔던가?

 오랜 세월이 흘렀다. 비로소 보이는 살길에, 막혔던 숨길이 터지면서 눈앞이 어려 온다. 북 받히는 뜨거움 때문이다. 얼마나 고맙고 황송하며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였던가?

 그런데도 내 공로 하나 없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만 받은 이 구원에, 무엇으로 보답 할 수 있을까?

 읽어보지도 않고, 한낱 경전으로 폄하했든 성경이, 이스라엘 역사요 세계사며, 인류사이면서 인생지침서라는 데서는, 내 교만이 부끄러웠고, 인류의 시작과 끝이 기록된 대로 진행되어 왔다는 역사의 고증과 장래사 또한, 현실을 보면서 고개가 숙여졌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서 가슴이 뛰었고, 천지만물을 창조했다고 한 이가 누가 또 있으며, 그 역사를 미리 말 한 이는, 또 누구인가? 빠진 것 없이 일일이 밝히고 있는 창조의 비밀과, 그곳에 배어있는 광대하고, 섬세하며, 정교한 창조주의 신성까지 다 내 믿음의 뿌리가 된 까닭이다.

 창조한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해 준 지극한 사랑도, 자식을 보는 눈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죄 없는 주님을 대신 죽게 하신 서릿발 같은 공의도, 엄격함에서 오는 참 사랑으로 가슴을 울렸다.

 어려운 길을, 평복으로 따라 간다는 자체가 무리라는 세상이치도 거들었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구원의 손길은, 손만 잡고 있으면 되는 것을, 여태 마음만 조려온 내 고민이, 너무 억울했다는 깨침도 한 목 했다.

 사실, 내 오랜 고민은 왜 사느냐였다. 처음엔 돈 벌고 출세하는 것인 줄 알았으나, 나이가 들수록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삶의 참가치를 찾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긴 세월이 흘렀다. 문을 닫을 시간, 비로소 그 해답을 얻은 듯하다. 그렇게도 아껴온 내 몸조차도 내 것이 아니라는 인생이고, 오직 영혼과 죄업만 남는다는 우리내 인생이다.

 7-8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영혼을 거두어 갈 때, 죄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질 그 영혼을 구하는 일이야 말로 인생의 목적이고, 정답이 아닐까 해서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영원(靈魂)을 팔아(賣) 7-80년(肉身)을 사(買)는 딱한 삶이 아니라, 7-80년(肉身)을 팔아(賣) 영원(靈魂)을 사(買)는 삶은, 단순한 산술로도 남는 삶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게, 내 문학의 깊이를 위해 성경을 읽어보라던 그 선배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뒷날 어떻게 마무리 될까? 아찔하기만 하다.

 그러나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며 복음을 당부한 말씀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유일한 구원의 길도 어떻게 전해야할지 참으로 답답하고, 두렵기만 하다.

 답답한 것은, 옳고 그름조차 알려고도 하지 않은 체, 완고한 자신들을 지선(至善)으로 착각하는 삶들 때문이고, 두려운 것은,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든 데서부터 인류의 죄가 시작되었다는 그 말씀을 이제는 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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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돼지 |  2010-05-27 오전 7:02: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등이네요......감사 합니다.  
youngpan |  2010-05-27 오전 7:12:5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침묵하시드니..
여셨군요

종교란 각기 특성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부디 한 종교적 시각으로 타 종교를 보시는 분이 없기를 바라는 맘 언제나 있습니다

각기 그 가르침을 따라서
열심히 힘쓰시면 오히려 넘칠 것입니다.

뛰어난 향기는 자랑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보게 된다고 합니다.

뛰어난 향기 되시옵기를..  
팔공선달 |  2010-05-27 오전 11:13: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올만에 오셨읍니다 굽벅^^=  
못안 |  2010-05-27 오후 2:53: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글 잘 읽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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