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을 하였더니 한결 편하다..

이발이라는 낱말을 처음 접할 무렵에

머리털을 자르는데, 理라는 글자를 쓴다는 것이 낯설었던 기억이 있다..

무에그리 다스릴 게 있다고 理발 씩이나 한다는 것인가? 참 생경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이발이라는 한자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나 머리모양을 다스리는 것이나 혹은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나

매사에 다스린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이로정연하게 만들어놓고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理라고 할 만하다...

정신병적인 매조히즘이 다스리는 것은 아니니까..

도보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옛날 생각을 하면서부터 였다..

이전에 몇 번 가본 호수가 있는데, 당시에는 그곳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다. 다만 학교급우의 집이 있어서 함께 가본 일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인간관계의 불협화음이 의미롭게 개입하고 있어서인지, 자연환경의 매력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그곳은 지금은 지하철도 근접하였고, 또

사용하기 편리하게끔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도 들리고 해서 탐색을 해보았더니

이전과는 상황이 천양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어디로 어떻게 간다는 것이야? 하고 살펴보는데

요즘은 인터넷자료들이 많으니까, 그 길이 저 길을 안내하고, 저 길은 또 다른 길을 안내하여

마침내 전체를 하나의 큰 규모로 디자인하는 설계도조차가 나와버렸다..

그랬는데, 알고보니

일본에도 전통적인 순례길이 멋진 것이 좀 있고, 또 그러다보니

널리 알려진 산티아고 가는 길도 언제인가는 가보게 될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뿐인가? 서점에 들러서보았더니

술익는 향기님이 아이디어로 제시한 지리산길이 이미 진행중이었다... 두어 해가 지나면 전체를 두른다는데

전체길이는 300 정도가 될 거라나...

제주길은 보니 아직 남은 구간이 있는데, 아마도 서둘지 않으면 거기도 지리산길과 어슷하게 완공이 될 모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추고 진행한다면

도보여행, 혹은 순례여행 자체가 깊은 인식의 전환의 기회가 될 것이 틀림없게 느껴진다..

그러고보면 원래 그런 작용은 오래 전해져오고 있다.. 출가자들의 운수라는 개념이 바로 그런 것인데

한 철의 입선기간이 끝나면 다른 총림으로 걸어서 가는 그 길이 바로 운수요 순례가 아니었겠는가?

사람은 집중이나 깊이 만으로 요리가 되지 않는다.. 입선이 있으면 방선을 통하여 음양의 균형이 맞는 세월이 주어질 필요가 있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일상에도 언제나 그런 구조가 주어진다..

지난 날의 등하교길이 그런 것이었고, 또 거기에는 아카시아 이파리 따는 가위바위보도 있었고, 지금에야 고마운 줄 아는 아름다운 석양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도보여행이었을 줄이야...

우리가 거주하는 집이라는 것을 가만히 음미하면, 여행지에서 사용하는 텐트가 단단해진 것이다..

그리고 여관은 집의 침실기능이 분리독립 보편화된 것이고, 식당은 주방기능이 보편화된 것이다..

일하다가 이동하는 시간은 짧은 여행이고 휴식이고, 마땅한 대책이 없어서 담배를 습관화하는 사람의 속내도 알고보면 바로 마음의 전환연습인 셈이다..

여행은 다만 이동이 부각되지만, 거기에도 잠을 잘 때엔 침실이 있고, 먹을 때엔 주방기능이 있다..

여행과 주거는 다른 일이 아니라 같은 디자인의 상대적 차별에 불과한 것이다..

인셉션에 관한 이노라는 사람의 소감도 구조는 닮았다..

잠을 잘 때엔 의식이 육체를 떠나서 다른 의식이 주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현상에선

그렇게 떠난 의식체가 다시 돌아오기 곤란해졌을 뿐, 기본구조는 잠의 구조와 닮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일에도 죽음이 날마다 공존한다는 견해인 셈이다..

그리고 그 모든 메시지의 뿌리에는 생사의 뿌리를 보라는 본원적 관점이 있다는 통찰도 의미롭다..

장자의 호접몽을 접한 후에도 나에겐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접하고 보니

나비를 말한 것도 장자를 말한 것도 아니었다..

22일로 나도작가에 글을 쓴 지 1년이 지났는데, 어떤 글이 씌어질 지가 궁금하였는데

써놓고 보니 관계,라는 글이 씌어졌다..

몇 가지 경로를 통하여 주어지는 관계에서 잘 참구하여

의타기성을 벗어나 원성실성을 구현하자는 말인 듯하다..

의타기성이 자각되면 원성실성으로 가고, 스스로 그 속에 있는 의타기의 구조를 모르면 변계소집성이 구현된다..

2010년도에 글을 쓰고 있는데, 과연 2020년도에도 쓰고 있을까?

이 동네는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아서, 참여할 때에도 마음이

일단 일년 후에도 쓰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10년 전의 주요이슈는 외환위기와 미국의 부쉬가 아니었던가?

이제 세월은 흘러서 부쉬는 그다지 관심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고, 그가 주창했던 몇 가지 이슈들도 막연한 공상처럼 들린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었다..

한국의 일상은 외환위기 이후에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사건사고는 많이 있었다..

향후 10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은 틀림없다..

북한도 필시 변할 것이고, 10년 후에는 오바마도 일단 물러난 뒤가 될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도 바뀌었을 것이고, 4대강 공사는 되었거나 말았거나 할 것이다..

일본의 수상은 여러 차례 바뀌었을 것이고, 월드컵도 두 차례 더 열렸을 것이며

아마도 12년에 올림픽이 런던이면, 2020년에는 다시 올림픽이 열리는 해가 될 것이다..

지리산길과 제주올레는 정착된 지가 오래일 것이고

일이 원만하다면 지금 알게 된 모든 순례지를 나는 다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때쯤에 과연 나도작가 코너는 어떻게 되어 있을 지...

심성구조에 대한 통찰도, 건강의 문제도, 경제활동의 문제도

도보여행의 즐거움도 나빠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이발 후의 즐거움을 기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