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바퀴를 하러 나갔다가 길가 수퍼에 들러서 캔 커피를 하나 꺼낸다..

온기가 손에 전해져 오면서 눈길에는 다시 밤이 있다..

- 이건 얼마예요?

- 벌써 다 드셨어요?

- 아니 아직 남았지만...

......

밤을 어떻게 드세요? 쌩으로?

아니죠.. 삶아서 먹쟎아요?

귀찮아서 어떻게? 저도 밥에 넣어서 먹어보고 싶은데, 까는게 귀찮아서...

아니 칼로 까면 되쟎습니까?

밤을 왜 자꾸 먹느냐는 분위기이길래, 밤은 그 모양처럼 근골에 좋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이 구절에 관해서는 한 장면이 떠오르는데

우리가 먹는 음식이라는 것은 실은, 일종의 사랑이라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88년 경이 아니었나 싶은데 며칠을 굶은 적이 있었다.. 그때 느낀 것으로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표현 상으로는 인간이 무엇을 먹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둘이 섞이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밥을 먹는 것은 밥과 내가 반죽이 되는 것이다..

사흘 쯤을 굶었을 적에 그런 간단한 이치가 떠올랐던 셈이다..

그 이전에 건강법에 관한 책을 보다가 밤이 근골에 좋다는 구절이 눈에 띈 일이 있었는데

그때 굶으면서 보니까 그건 별다른 이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밤을 먹으면 밤처럼 내 몸이 변한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때 쯤부터인가

먹는 일이 단순해진 것도 같다.. 밤을 내가 먹으면 내가 밤처럼 되고

내가 물을 먹으면 몸이 물처럼 된다.. 정말 단순하지 않은가?

밤을 먹으면 근골에 좋다고 보았다고 말하면서 생긴게 그렇지 않냐고 했더니 끄덕이면서 답하는 주인의 말은

테레비에 보니까 밤의 속껍질이 좋다는 말을 보았다고 말해주었는데

그런 상세한 것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옆에 배가 있길래, 아마 이런 것을 한방 책에 보면 이뇨작용에 좋다고 나올 거라고 했더니 끄덕여 주었다..

가게 주인의 분위기로는, 밥먹기도 바쁜데, 언제 그렇게 밤을 자꾸 먹을 시간이 있느냐는 뜻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쌀중심주의적 편견이 아닐까?

인간은 밥벌레 혹은 쌀짐승이 아니다.. 먹어서 체중을 관리하고 영양을 보존하면 그만이다.. 그게 밥이지 꼭 쌀을 불려서 먹어야 하나?

밥 즉비밥 시명 밥,이라고 말하면 좋았겠지만 들을 사람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

2킬로 쯤 될거라는 밤을 5천원에 준 주인에게 잘 먹겠다고 인사하고 길을 나서서 생각해보았다..

체중관리도 일종의 식사다..

가령 표준체중보다 10킬로 쯤 더 나가는 사람이 체중을 조절해서 영양효율이 10퍼센트 증진하면, 그게 식사가 아니고 무언가?  식사는 인체와 음식의 관계개념이지 음식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인 기술^^인 것이다..

또 건강의 문제가 항상 부각될 필요도 없다..

어떻게 모든 장면을 프로처럼 두나? 대강적당히 틀을 짜놓고, 몇 가지 포인트 체크 혹은 형세판단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 계절을 보내고 한해두해를 보내면 될 것이다.. 추울땐 체중을 좀 늘리고

더울 땐 좀 미리 빼기도 하고.. 배추가 비싸면 원래 지구엔 배추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보기도 하고

머 그렇게 잘 죽어가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죽으나 사나 매한가지로 맨들어가면 될 것이다..

바둑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아마도

반집만 이기면 된다는 사실일 것이고

그 다음의 교훈은 또한 바둑을 두지 않아도 된다는 일이기도 하리라.. ^^

 ** 댓글이 또 안 써지네요...

나중에 오로볼을 사용하든지 하겠습니다.. 

사진제공- 팔공선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