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란 거, 조금 생소하시죠?"

"네, 사실 좀 그렇네요."

“우선 바둑의 기술적인 것보다는 바둑에 익숙해지고, 바둑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기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렵죠?”

혜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경제뿐만이 아니고 여러 방면에서 혼란스러운 시기인 것 같아요.”

바둑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기영이 혜린이 던진 의외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하지만 돈이 많은 부자들은 이런 시기를 극복하는 것이 한결 수월할 거에요. 그렇죠?”

“아무래도 그렇겠죠.”

"바둑판을 보세요. 여기 이렇게 선이 교차하고 있죠? 그 교차점이 바둑알을 놓는 곳이고, 이 곳을 한 명이 자신의 바둑알로 둘러싸면 ‘집’이 돼요. 바둑에서의 "집’은 돈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쉬워요.”

"어떤 점에서요?"

"많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열심히 노력하면 많이 생기거든요."

혜린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바둑에서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요?”

"그럼요, 처음부터 돈이 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나중에 많은 돈을 한번에 벌기위해 기초를 닦는 일을 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들으니 정말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하게 들리네요."

“바둑의 핵심은, 상대보다 많은 집을 짓는 거에요.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효율적으로 집을 짓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거구요. 쉽게 말하면, 적은 돌로 많은 집을 짓는거? 어떻게 보면 조금 일하고 많은 돈을 버는 거죠.”

기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건 그냥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하는 설명이고,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에요."

"그래도 정말 그럴 듯 한걸요."

"바둑이 어느 분야에 들어가는지 아세요?"

"바둑은...... 보드게임 아닌가요?"

"어떻게 보면 맞아요. 예전에는 바둑을 예술이나 도의 하나로 보았지만 근대로 올수록 게임으로 인식 되고 있어요. 요즘에는 두뇌 스포츠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전반적이구요.”

“두뇌 스포츠라면 체스나 브리지를 얘기하는 건가요?”

“네, 그 두 게임은 바둑엔 비할 수 없겠지만 확실히 두뇌 스포츠이긴 하죠. 하지만 정말로 두뇌스포츠라고 불릴 만한 것으론 바둑을 따라올 것이 없다고 봐요."

혜린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바둑이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는 뜻인가요?"

"음, 그것도 맞아요. 그리고 바둑의 과정에는 이야기가 있어요. 실수도 있고,

무리수도 있고, 승부수도 있죠. 여느 운동경기가 그렇듯이 말이에요."

"이건 조금 이상한 질문이겠지만요, 바둑이 도대체 얼마나 어렵길래 그렇게 다들 어렵다고 하는 거죠?"

"바둑판에 교차점이 몇 개 있는지 아세요?”

기영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기 바둑판을 보세요. 세로 19줄, 가로 19줄이 있어서 정확히 361개의 교차점이 생겨요. 바둑의 깊이는 바로 여기서 비롯 되는 거죠. 한 번 둘 때 둘 수 있는 곳이 361곳, 그 다음엔 360곳, 그 다음엔 359, 358…… 이런 식으로 계속 계산해서 바둑의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와요. 그 동안 수억이 넘는 바둑이 두어졌지만 똑같은 판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죠.”

“그렇군요. 이 까만 점들은 뭐죠?”

“아, 그건 화점이라고 불러요. 여기 한 가운데에 있는 건 천원이라고 부르고요. 그건 흔히말하는 돈 천원이 아니고 하늘 천에 으뜸 원으로 하늘의 중심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일본에서는 화점을 ‘성점’ 이라고 부르는데, 별 성자를 써서 그런 거에요. 일본에서는 바둑의 세계가 우주와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우주라……”

“그만큼 바둑의 깊이와 오묘함을 높게 평가했던 거죠. 바둑의 신비는 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드러나거든요.”

“왠지 걱정이 되는데요.”

“벌써부터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차차 알게 되실 거에요.”

“이렇게 신비한 게임을 배울 생각을 하니 너무 기대되요.”

혜린이 안심시켜주자 걱정된다며 진지한 표정을 짓던 기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환한 표정으로 눈을 빛내는 기영이 돌아왔다. 

“이제 알을 볼까요? 바둑에선 흰돌을 백, 검은돌을 흑이라고 불러요.”

혜린이 바둑돌을 하나씩 집어서 기영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한자의 음을 그대로 사용하네요?”

“네, 그리고 흑과 백이 한 수씩 번갈아 가면서 두는 거에요.”

“흑이 먼저 두나요?”

“네. 예외인 경우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기본적인 것부터 할게요.

그 흑돌을 바둑판 위에 놓아보세요.”

기영이 엄지와 검지로 바둑알을 잡아 바둑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보세요. 이렇게 검지와 중지로 바둑알을 잡아서, 이렇게 놓는 거에요.”

혜린이 시범을 보이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음, 이렇게요?”

기영이 어설프게 따라 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고 부자연스러웠다.

“연습하다 보면 쉬워질 거에요. 가끔 보면 바둑알을 바둑판에 있는 힘껏 때려가면서 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안 좋은 매너에요.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거든요. 하지만 너무 살살 놓는 건 자신감이 없어 보이니까 적당함을 유지하는 게 가장 좋아요.”

“배울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네요.”

“이제 시작인걸요. 앞으로도 배울 게 산더미에요.”

“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니까 이제 반만 더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기영이 웃자 혜린도 따라 웃었다.

까페 안을 맴돌던 클래식 음악은 그들의 이야기를 질투하는 듯 그들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커피 두 잔이 진한 향기를 풍기며 열기를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