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하네요.”

기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식당을 정말 잘 찾은 것 같아요.”

“운이 좋았어요.”

“회전 초밥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초밥 좋아하세요?”

“좋아하지만 저도 자주 먹지는 못해요.”

“네.”

“저…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기영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요.”

“혜린씨는 바둑을 언제부터 둔 거에요?”

“음, 7 살 때 처음 배웠어요. 그러고보니 벌써 18년이 다 되어 가네요.”

“와, 그렇게 오랫동안이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정말 오래 했죠......바둑을 빼고는 제 인생을 말할 수 없을 정도니까요.”

“그럼 프로기사는 언제 되신 거에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했어요. 17살에.”

“그렇게 어린 나이에 프로기사가 될 수 있나요?”

“17살은 어린 나이가 아니에요. 보통 정도의 나이죠. 빨리 하는 기사들은 중학생 때 많이 해요.”

“프로기사가 되는 건 힘들겠죠?”

“힘들다면 힘들고 쉽다면 쉽다고 할 수 있어요. 프로기사를 선발하는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면 되거든요.”

“1등이요?”

“여자들의 경우엔 그래요. 남자들은 대회에 따라서 2등까지 되기도 하구요.”

“왜 남자를 더 많이 뽑아요? 그러면 여성 분들이 반발이 있을 것 같은데.”

“아뇨. 겉보기엔 그래 보여도 합리적인 거에요. 프로기사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성 비율이 10대 1정도도 잘 안되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까 정말 아저씨들이나 할아버지들께서 두시는 건 많이 본 것 같은데 여자분이 두는 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그러실 거에요. 요즘에도 별로 없지만 예전엔 더더욱 없었으니까요. 정말 드물었죠.”

“바둑 어렵지 않아요?”

“어려워요. 어려운 게 매력인 게임이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해요. 그나저나 자꾸 물어보지만 말고 얘기도 좀 해보세요. 무슨 일 하세요?”

“회사 다녀요. 취직한지 한 일년 즈음 됐을 거에요.”

“바둑은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으세요?”

“네. 한 번도 없었어요. 큰아버지께서 좋아하시긴 하는데, 명절이 아니면 뵐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대충 어떤 건지는 알아요. TV에서 언뜻 보기도 하고, 거리에서 두시는 할아버지들도 몇 번 봤으니까요.”

“좋아요. 그럼 바둑판이나 바둑알도 없으신 거네요?”

“네. 하지만 그 정도는 제가 준비해야죠.”

"그럼 바둑판 세트를 하나 구입하시겠어요?"

"네, 어떤 걸 사면 좋을까요?"

“음..바둑판은 다리가 안 달린 얇은 판 중에서 조금 좋은 걸로 고르시고요, 알은 그냥 마음에 드시는 걸로 사세요. 종류가 많으니까요. 참, 온라인으로 배우실 수도 있는데, 그러면 굳이 판과 알을 준비하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온라인이라면 저한테 배우시는 것 보다는 초보자를 가르치는 사이트가 많으니까 그런 곳을 이용하시는 편이 좋을 거에요.”

“인터넷보다는 이렇게 혜린씨도 만날 겸 직접 만나서 배우고 싶어요.”

“회사 다니느라 바쁘지 않으세요?”

“주 5일제라서 괜찮아요. 일요일엔 교회에 가야 하니까 토요일마다 배우면 어떨까요?”

“토요일……괜찮을 것 같네요.”

“수업료는……?”

“글쎄요, 이건 다연 언니가 부탁한 거고 저도 돈 때문에 하기로 한 건 아니니까……이렇게 하면 어때요? 만날 때마다 커피나 식사 같이 돈 드는 일이 있으면 계산 하는 거에요."

“그럼 저야 좋지만, 괜찮으시겠어요?”

“대신, 바둑 공부 열심히 하셔야 돼요.”

“그야 물론이죠.”

"사실 바둑에 대해 잘 모르시겠지만요, 프로기사에게 개인지도 받기 어려워요. 값도 무척 비싸구요. 그러니까 어디가서 제가 그냥 가르쳐준다고 소문내시면 안돼요, 아셨죠?"

"네, 약속할게요."

“그럼 다음 주부터 시작 할까요?”

“네. 혜린씨만 괜찮으시다면.”

“저도 일주일 중 토요일이 가장 한가해요. 예전엔 토요일마다 젊은 프로기사들 모임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기서 빠졌거든요.”

“네…음…우리 나라에 프로기사가 몇 명 이에요?”

“230명 조금 안 돼요. 그 중에 여자기사는 35명 남짓.”

“아. 어쩐지 프로기사가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정말 적군요.”

“좀 적긴 적죠? 요즘 입단자를 늘리려는 움직임이 있긴 한데, 쉽진 않을 것 같고.. 아무튼 프로기사가 된다는 거 쉽진 않아요. 음 자랑하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시지 마세요.”

혜린이 쑥스러운듯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그나저나 바둑 배우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바둑은 체스나 장기와 달라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오랫동안 배워야 어느 정도 둘 수 있어요. 동네 기원 같은 데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바둑 좋아하시는 아저씨정도 두려면 2년은 공부 해야 할 거에요. 물론 그 것도 열심히 해서.”

“바둑이……”

기영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려는 찰나 혜린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다연 언니네요. 전화 좀 받을게요.”

“네.”

“응 언니.”

혜린이 핸드폰을 귀에 대며 얘기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먹을 자리가 없더라구. 그래서 그냥 나왔어.”

“응 그래. 일본 잘 다녀오고.”

“내 선물 사오는 거 잊지 마.”

“농담이야, 건강 조심하고, 즐겁게 놀다 와.”

“응”

혜린이 통화하는 동안 그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그들밖에 남지 않은 식당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고 간간이 들리는 낭랑한 혜린의 목소리만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입증하듯 그들의 테이블 위에는 빈 접시가 꽤 쌓여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키위와 사과가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담겨 있는 접시가 하나 들어와 얼른 집었다.

앞을보니 어느새 혜린이 통화를 끝내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연이 언니가 찾았었나 봐요. 조금 미안하네요.”

“네……”

“그치만 뭐 이 좋은 날에 그런 일로 서운해 하지는 않을 거에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다연 언니나 성준 오빠, 그렇게 소심한 사람들 아니니까요. 아, 참 아까 무슨 얘기 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네? 아.. 다음에 물어볼게요.”

"뭔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오늘은 제가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우연히 시계를 본 혜린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여기 과일 있는데 이것만 같이 먹고 일어나죠.”

기영이 방금 집은 과일 접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혜린이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맛있게 드셨어요?”

잠시 후 식사를 끝낸 기영과 혜린이 다가오자 계산대의 종업원이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다음에 기회 되면 또 올게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식당 밖으로 나오자 쌀쌀하면서도 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오늘 점심 맛있게 잘 먹었어요, 다음주 토요일 전에 한 번 연락 할게요.”

환한 미소와 함께 혜린이 말했다.

“네. 조심해서 가세요. 저는 저 쪽에 차를 세워 놔서……”

“네. 그럼.”

작가의 말- 연재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번째 글을 올리네요. ^^

                   부족한 글이지만 지금껏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서론이 좀 길었죠? 이젠 정말 바둑 레슨이 시작될 거에요!!

                    '그녀의 달콤한 바둑 레슨' 많이 기대해주시구요,

                   다음 글은 작가의 사정으로 조금 늦어질거에요. ^^;;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