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없이 쉬고 있는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래도 그 사이에 몇 차례 집에 돈을 갖다 준 적은 있었으나 겨우 2년 정도였었고 그냥 생업 수단없이 마냥 시간을 죽이고 있는 셈이다.

강태공은 때를 기다리느라 빈 낚시대 일망정 물에 잠그며 세월을 낚고 있었고 강태공이 집에 돈을 못벌어주니 그릇이 작은, 아니 어느 여인들도 쉽게 견뎌기 힘들 듯, 그의 아내는 지지리 못나 보이는 남편 강태공을 떠났고 나중에사 강태공이 늦게 수상에 발탁이 되어 가마 타고 가는 옛 남편의 의젓한 자태를 훔쳐 보고는 늦게사 후회를 하며 그 녀는 군중속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도 그의 신세와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얼마간의 저축이 있어서 우리 마누라는 나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실업자라고 해도 이제 몇 년을 그냥 어슬렁거린 바람에 이미 사회 정년 퇴직 나이를 지났으니 이웃들 눈치는 덜 보이는 편이지만 사실 지금처럼 놀 때가 직장 다닐때 보다도 그간 못돌아 다니던 여행을 비롯하여 남는 시간 취미생활및 많은 시간 술자리며 그래도 실업자란 티내지 않기 위한 품위 유지비등 내 개인적 시간이 늘어나 그 씀씀이는 오히려 직장 다닐 때보다도 훨씬 많이 들어 가는 편이다.

직장을 그만 두면 월급 봉투만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지위까지 모두 박탈을 당한다.

취미 생활 또는 재충전을 위하여 학원에 가더라도 예전의 직장 지위는 삭탈 관직을 당하여 모두 도매금으로 '아저씨'란 지위로 자유낙하를 해 버린다.

나는 요즘 놀며 생활에 보탬을 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틈틈이 돈들여 영어및 중국어 강의도 들러다니기도 하고 주로 오전에는 주로 인터넷서핑및 글을 쓰고 오후에는 운동 삼아 탁구를 치러 다닌다.

탁구장에 가면 나와 매일같이 나와 탁구를 치는 여자분들 중에는 나를 '아저씨'라 칭하는 사람들이 한둘있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아저씨'라 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매일 같이 나와 같이 얼굴 마주 보고 운동하며 가끔씩 식사및 술을 나누는 여인이 나를 '아저씨'라 부르면 나는 응근히 부아가 끓어 오른다.

탁구 30년에 탁구 동아리에서도 회계, 총무, 회장, 고문 등을 섭렵했었고 직장에서도 지사장, 상무, 이사, 부장 등을 지낸 것을 뻔히 알고 있는 그들이 나를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호칭을 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을텐데 그냥 '아저씨'라고 호칭을 해버리는데 만약 나도 그 녀들을 향해 '아줌마'라고 호칭하거나 또는 탁구장에서 매일 같이 '○○엄마'라고 부른다면 아마 그들도 그리 탐탁히 여기지는 않으리라.

사실 상대에 대한 호칭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두리뭉실하게 '선배님', '선생님', '여사님', '○○씨' 등으로의 호칭도 가능할 것이고 좀더 친숙해지고 나면 '오라버니' 호칭도 무난할 것으로 보이는 데 단순 이런 면에서만 본다면 자신의 시아버지라도 그냥 이름을 부르는 서양이 한결 간편해 보인다.

어쨌던 이런 무료한 실업 생활을 영위하는 나도 바쁘게 사는 직장인들 눈에는 선망의 대상이 되던지 나를 보고 부럽다고 이야기를 건네는데 그 말은 다시 나에게 비수로 변하여 내 가슴을 후비며 아프게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하는 말가운데 나중에 큰 기쁨 또는 행복을 한꺼번에 누리기 위해 초년고생을 감수하라들 하는데 이것은 딱히 들어맞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행복은 우리가 사는 순간순간에 들어 있고 살면서 그 보물을 열심히 캐도록 노력하라고 일러 주는 것이 백번 옳을 듯 싶다.

고생 끝에 살만하니 죽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고 나같은 사람은 30년 직장 생활의 대부분이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출근 준비및 저녁 10시 가량 퇴근을 하는 바람에 한마디로 지금과 같은 여유시간이 주어졌어도 직장만 다니며 놀지를 못해 놀 줄도 모르는 빈충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과 같이 오전에는 글 좀 쓰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는 일률단편적인 생활은 나는 죽음의 연습이라고 믿고 싶다. 다시 말해서 어제의 생활이 그대로 오늘이 되고 오늘의 생활은 그대로 내일로 옮겨져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이런 천편단률적인 생활은 가히 죽음을 향한 거듭 반복적인 숨쉬기 운동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내 보기에 인생은 자전거 바퀴와 같다. 자전거 바퀴를 돌려 주지 않으면 그 자전거는 땅에 드러눕기 마련이고 땅에 누워 있는 자전거는 조만간에 녹이 슬어 그 수명을 다한다.

자전거는 항시 페달을 밟아 주어 땅을 굴러 다니게 하여야 하며 설령 페달을 밟고 있더라도 나처럼 오전에 글과 씨름 오후에는 운동 하는 식의 도서관과 체육관만을 오가는 생활이 아닌 공원이며 박물관 등 세상 곳곳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자전거 튜브가 많이 닳아 버리면 병원에 들러 새 튜브로 갈아 끼우면서 여러가지 토양을 접하면서 아스팔트를 만나면 아스팔트에 맞게 맨 땅이면 맨 흙에 맞는 공기압을 자전거 튜브에 알맞게 유지해 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