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본 단풍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마도 대학시절에 소백산맥에서 본 것인 듯하다.
능선을 따라 걷다가 아래를 보니
단풍이 마치 푹신한 그 무엇처럼 진을 치고 있는데
아마도 정신이 혼미한 때라면 그리로 떨어지고 싶지 않을까 싶었었다..
아마도 몸을 일순 기분으로 던지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따금 생각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철쭉길이 인상깊던 곳도 있다..
담양에 갔을 적에 식영정에서 소쇄원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상당히 장거리에 걸쳐서 철쭉이 도열해 있었다..
마치 나를 환영하는 사열을 열병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어서 공연히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식영정에서 내려보는 풍경도 좋았었고
소쇄원 아래의 전시관 같은 곳의 잉어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한때였다..
당시에 함께 갔던 친구는 소식이 없는데, 돌이켜보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함께 즐겼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추억하게 된다..
다른 곳의 산속 철쭉도 한 곳이 기억에 있는데, 어딘지를 잘 모르겠다..
지리산 어딘가 였던 듯도 하고
아니면 앞서 보았던 단풍과 같은 행로에서 본 듯도 하지만 기억이 두렷하지 않다..
우리 동네 어느 뒷산에서도 만개한 철쭉이 좋던 기억이 있는데
금년에는 그곳에나 다시 가보게 될지..
동해안 열차를 발견하고 탄다는 것을 미루다가 보니, 어느 새 그 긴 길에 도보길이 열리고 있으니, 이제 우리 남한반도를 순환해서 걷고 타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어가는데
생각해보면 조금 정비를 하고 조금씩 큰 그림으로 양보를 하면
나름대로 살 만한 공동체가 될 기본여건은 있는 것 같은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으니, 뾰족하게 기여할 도리도 없어서, 이렇게 하릴 없이 이따금 타자나 치고 있구나..
삼국지 서문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간략한 소감을 마친다.
굽이쳐 동으로 흐르는 긴 강물 滾滾長江東浙水
그물결에 일리듯 옛영웅 모두 사라졌네 浪花淘盡英雄
옳고 그름 이기고 짐 모두 헛되어라 是非成敗轉頭空
푸른 산은 예와 다름 없건만 靑山依舊在
붉은 해 지기 몇번이던가. 幾度夕陽紅
강가의 머리 센 고기잡이와 늙은 나무꾼 白髮漁樵江渚上
가을 달 봄 바람이야 새삼스러우랴. 慣看秋月春風
한 병 흐린 술로 기쁘게 서로만나 一壺濁酒喜相逢
예와 이제 크고 작은 일 古今多小事
웃으며 나누는 얘기에 모두 붙여보네 都付笑談中
곤(滾)- 흐르다
浙(절)- 강이름, 쌀을 일다
淘(도)- 일다, 씻다
樵(초)- 땔나무
渚(저)-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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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李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