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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
2015-03-07 오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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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패배를 보고 있으니, 그다지 놀랍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느낌을 곧잘 풍겨주었기 때문인데
나로선 정상급 기사가 낙관때문에 진다는 말이 잘 이해가 안된다. 왜냐하면
바둑은 끝내기를 전제로 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중반 쯤에 내가 볼 때에 그가 앞선다고 하기에 계가를 해보았더니
내 수준에선 그다지 앞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소위 인간적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변수가 있는 상태였고
그렇다면 프로에다가 정상급에서도 내 수준 정도의 변수가 작동한다는 말인지 참 이해가 안된다..
내가 9급 정도로 기원에 처음 가던 시절
5급 두던 동네기원 원장이 곧잘 하던 말이, 매사에 불여탄탄이라는 말이었다..
그게 어느 세월인가?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인데
그 동네기원 5급의 발언에 걸려드는 일을 정상급 기사가 곧잘 한다는 말인가?
이 정도라면 프로에 대한 신화가 눈녹듯이 씻길 사건 중의 사건인 셈이다..
며칠 전에는 중국기사가 엉뚱한 초반 착수를 해서 처음부터 판을 망치더니
아니 초속기바둑도 아니고, 건강이 나빠진 이창호의 후반도 아닌데, 도대체 프로세계의 품질이 이럴 수 있는지 난 잘 이해가 안 된다..
매사는 뒤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바둑에서만 하는 말이 아니다.
전 주 쯤에는 하이데거에 대한 책이 왠지 끌려서 보니, 거기에서 하는 말도 내나 같은 말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세계내존재,라는 방식으로 산다는 것인데
옛날에 유명하던 이 말의 뜻을 보니 그냥 세간에 빠져서 대세관이 없이 부평초처럼 산다는 말이었다.. 그게 바로 세계내존재라는 말이고, 세계란 곧 무의식적 의미망이라는 말이었다. 이런 동네바둑을 해결하려면 죽음을 직면하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죽음을 직면하면 비로소 판세가 보이는데, 그게 양심이라는데, 그 양심은 아마도 세간의 습속적인 도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대세관이나, 왕양명이나 맹자의 양지, 혹은 성령, 비슷한 뜻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런 직관이 살아나면서 생의 전체를 보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 있음이 현실화되니 이걸 시간성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 자연히 평생의 옳고 그름이 명맥해지지 않겠는가?
바둑의 구조와 거의 흡사하다.. 끝내기를 의식해야 대세판단의 잣대가 나오고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다. 포석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뒤로 가면서 비로소 그 가치가 두렷해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직면하는 이런 가치를 인식하게 되면 비로소 결단이 가능해진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판단력은 죽음을 직면하는 것, 즉
착수의 판단력은 끝내기의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사문출유를 통해서 고민했다는 싯달타의 20대 이야기와도 같다.
생로병사를 눈앞에 보니, 그간의 생활을 생각해보게 되고 종내에 가치가 없다고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생사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일들에 대한 가치판단의 모든 기준이 없어지니 부평초같은 생활을 면할 길이 없어지므로
왕위계승을 앞둔 스물 아홉 살에 애가 태어나자마자 도망갔다는 것인데
당장은 욕먹을 입장이 되었지만, 아무런 생활의 잣대가 없는 애비가 애를 키우면
그 교육의 근거가 없을 것이고, 곧 왕위를 계승하면, 왕정을 할 잣대도 그에겐 없을 것이었으니, 그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어느 정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닌 셈이다..
결론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면
끝날 때까진 아직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는 말인데, 김지석의 나이도 이미 20대 중후반 쯤 된 것으로 들었는데, 이런 정도는 상식이 아닌지 정말 의심스럽다. 게다가 바둑이 직업이니, 내가 모르는 것도 체득한 바가 많이 있을텐데, 왜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래도 혼란스런 세상에서 안정된 직업이 있으니 일단 불행은 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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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는 지석9단의 바둑에서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도 문득문득 해봅니다. 자신과 공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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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팔공선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