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109, 병원 바둑캠프(1)

눈을 뜨니 아침 7시이다.

지난 새벽4시에 밤새 바둑 두던 것을 마치곤 거실의 바둑판들을 치우고 게스트하우스의 이부자리들을 거실에 폈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네 명은 나란히 누웠다.

여럿이 같이 잘 때는 코를 골까봐 걱정이어 자리에 누운 채로 잠이 들지 못했나보다.

오른쪽 옆 자리의 젊은 청년은 가르릉 거리는 작은 코고는 소리를 내며 벌써 깊은 잠에 빠졌나보다.

지난번 바둑모임에 처음 나왔던 그 청년은 당당함과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철부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난밤에는 전과 너무도 달라져있어 오히려 안쓰러웠다.

행정 총책임자인 상무께서 면접을 하시는데 특기가 바둑이라고 하기에 지난번 처음 바둑모임에 데리고 나왔던 청년이다.

그날의 초청인사중 하나였던 코세기 디아나 초단과의 다면기에서 세 점을 접힌 채 몇 집 지며 끝났던 판이 기억난다. 그 후 회식 뒤풀이 자리에서 젊은 코세기 초단과 서로 다음에는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며 호연지기를 뽐내던 청년은 왜 두 달 만에 저리 달라졌을까?

아직 정식사원으로 입사한 것이 아니고 인턴사원으로 임상병리과에 입사하였단다. 일 년간의 평가를 거쳐 정식 입사가 결정되는 것이니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 이제야 느낀 것인가 보지. 겸손함에 솔선수범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오히려 조직에 순응하게 만드는 세상의 벽인지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청년들은 배포가 있어야 더 멋있을 것 같은데.

어렸을 적 바둑교실에 2년을 다녔다는 청년은 자신의 인터넷 기력도 모른다. 두어 본 적이 없단다. 연구생 3조 실력 이었다는 코세기 디아나 초단에게 그것도 다면기에서 세 점에도 졌으니 연구생 1조 출신의 이 기자에게 4점에 두게 하였더니 9집인지 졌다. 다면기가 아닌 1:1대국이니 더 어려웠겠지. 나와의 대국에 4점을 놓는 것을 세 점으로 시작한다.

한 수 한 수가 허튼 수가 없다. 완전 군대말로 FM원칙대로만 둔다. 접바둑에서 이리 무참하게 초장부터 밀리며 져 본 적도 기억하기 어렵다. 오로 5,6단은 충분한 실력일 듯하다.

마지막으로 흔들며 던질 곳을 찾는다. 역시 완벽한 응수에 결국 던지고 청년의 질문에 답해준다. 하수에게도 최선을 다하며 바둑을 여러 판 두는 내내 무릎을 꿇고 두던 이 기자 보다 역시 나는 바둑의 모든 면에서 더 정진해야 하나보군.

일 년에 한 번 바둑캠프는 휘닉스파크 나 한솔 오크랜드 같은 계열사의 콘도에서 마음 편히 1박2일로 실컷 바둑만 두는 모임인데 가서는 저녁식사시간까지 아끼려 컵라면에 삼겹살과 소주로 바둑만 밤을 새며 두는 것이 정례였다. 이번엔 지방까지 가는 시간까지 아끼며 더 열심히 바둑만 두려고 병원인근의 게스트하우스를 빌려 행사를 했으나 오히려 금요일부터의 연휴에 젊은 회원들은 각자 흩어져 제 길을 가곤 나이 많은 과장 차장급들만 주로 참석했다.

평소처럼 프로기사를 초청하는 대신 한국바둑사를 집필하신 작가선생에게 강연을 부탁드리고 분위기를 살리려 물러도 주며 사교바둑을 두는 나이 많은 프로기사대신 정직할 줄 밖에 모르는 연구생출신의 여 기자를 초빙했다. 병원바둑동호회 회원들은 물론 생전 처음 듣는 바둑사와 여러 이야기에 기뻐하기 짝이 없다. 젊은 여기자의 바둑실력은 모두를 겸손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마5단인 임상병리과 교수이신 회장은 세 점에도 힘을 못 쓰고 돌을 거두셨다.

어린 이 기자는 생각과 부탁을 못 하여도 월간바둑 소속이라 하니 병원식구들은 병원에 들어오는 월간바둑지의 현황을 물어가며 바둑동호회 앞으로 몇 권을 신청하며 앞으로 병원도서실과 각과 대기 창구에 대시 환자들을 위한 책꽂이에 꽂히는 도서목록중 하나로 신청할 것을 서로 상의한다. 나조차 말을 안 하였어도 저리 알아서 먼저 배려하는 덕목들이 바둑인들의 자산이겠지. 교육수련부의 차장은 열심히 질문도 하며 설명도 한다. 역시 대단하신 분들이다.

새벽4시에야 잠이 들은 여러 회원들을 깨우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나 잠을 못 이루신채 책을 읽고 계신 이 작가와 같이 해장국집으로 나선다.

바둑으로 새운 밤!

내게 어울리는 밤이었지.

생각만 해도 즐겁고 같이 있으면 배움과 느낌이 큰 작가와 같이 이른 아침 나서는 해장국집 행은 즐겁기만 하다.(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