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꽃들의 전쟁에서


소목에 까만 장미 한 송이 놓일 때
하얀 벚꽃 하나 낙하, 화점에 탁!
반상 위 가로 세로 열 아홉 줄,
종횡무진 헤쳐가야 하는 生의 애환이 걸린
가시밭길, 외길, 황천길, 샛길, 주작대로... 
삼백 예순 하나 오묘한 눈금 안
변으로 진출하는 꽃들 피고지고
아무리 우주가 넓다한들
내 집 하나 못지키면 말짱 헛방이라네
꽃들이 시샘하며 낙점을 하네
꽃들이 피 흘리며 싸우고 있네
맥을 끊고 회돌이 치고 빵때림에 패싸움에
수담에 빠진 하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을 비우고 빈 허공을 끊어라지만
아찔하다 이, 기막힌 현기증이어
그물에 걸린 꽃은 첩첩산중 기절초풍
돌다리도 두들겨볼 새 없이 무거운
포도송이로 변하네
수 많은 길이 있듯 세상살이도 천태만상
바둑 또한 백 판 천 판 모두 다르지
한 점 두 점 엎어지고 자빠지며
실리를 쫓다보면 세를 잃어버리고
세를 쫓으면 실리를 잃어버리는
때로는 죽어야 이기는 조화 속에서
내 식솔들 좋은 행마로 이끌어보지 못하고 
시행착오 거듭한 부끄러움이어,
끝나면 보이는데, 이미 때는 늦어도
내일을 기약하고 복기해 보노라면
뒤돌아보고 다시 가다듬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