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물론 잘 지냈답니다.
잠깐만 쉬려던 소설은 이일 저일에 치여 잠시 휘청거리다가 이제 다시 출발해 보려고 준비운동 중이에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여름의 열기도 이제는 한풀 꺾이고,
지구촌을 뒤흔들어 놓은 올림픽의 여운도 사라져 가는 이 때,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던 한국 바둑계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도요타 덴소배 한국기사들 16강, 8강에서 중국기사에 전패.
우리는 그동안 우리 기사들이 이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중국기사, 혹은 일본기사에게 전승을 거두었다고 해서 놀라지 않았습니다.
잘했다고 박수 쳤지만, 환호성을 질렀지만 결코 감동적이거나 기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것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우리가 최강이라는 생각이 있고, 또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분야, 한 종목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것. 그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우승컵을 많이 가져오고, 상금을 많이 타 나라의 경제에 보탬이 되고, 위상을 높인다.
그것이 다는 아닐 것입니다.
저는 세상일을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가 최고라고 인정해주는 종목도 말이죠.
바둑은 동양의 전유물이었고, 전통으로, 문화유산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둑의 가치를, 그 희소성을 너무 과소평가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바둑 예찬론을 펼치지는 않겠습니다.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지적 게임이며 오묘한 변화가 무궁무진하게 이어지는......
이런 류의 설명은 이미 너무 많이 들어 감동적으로 와닿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다만 여기서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은 바둑이 가진 잠재성을 들춰보는 것입니다.
지구는 지금 몇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 그리고 인구의 노령화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은 이미 인구 노령화에 대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사회적, 경제적인 사항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약간은 더 가벼운 문제를 짚어보죠. 바로 여가 생활입니다.
만약 인류의 수명이 90세가 된다면, 60대에 은퇴하고 나머지 30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골프를 치고,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는 것도 좋겠지만, 또 티비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바둑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소일거리 중 하나입니다.
주변 사람과 쉽게 어울릴 수 있고, 신체적 활동이 필요치 않습니다.
계속 두뇌를 쓰며 가속화 되는 노화를 늦출 수도 있죠.
게다가 승부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짜릿함과 긴장감은 사회적 활동에서 벗어난 분들에게 새로운 기분도 전해줄 것입니다.
우리가 바둑의 진가를 제대로 알릴 수 있다면, 보여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분명 큰 관심을 가질 것이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바둑이 선진국의 힘을 등에 업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로 말이죠.
지금 우리는 분명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서양 바둑인들에게는, 그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는 일본기원보다, 물가가 저렴하고 바둑공부의 환경이 좋은 중국보다도 한국이, 한국기원에 국제 부서조차도 없는 우리 나라가 가장 매력적인 유학지입니다. 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최고의 곳에서, 최고의 선생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현재 한국에는 상당수의 서양인이 바둑을 공부하기 위해 체류 중이고, 또 다녀가고 있습니다.
문의도 점점 늘어나고 소문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죠.
현재 서양에서의 바둑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처럼 되어있습니다.
박사, 교수, 대기업 간부나 전문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들이 대부분이죠.
바둑을 좋아하는 그들은, 바둑을 좀 더 알고 싶어 한국을 찾게 되고, 한국을 좋아하게 됩니다.
저는 한국을 잘 모르던 외국인들이 바둑을 통해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접하고, 그 것을 좋아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젓가락질을 배우고 김치를 좋아하는 모습이 참 흐뭇하죠.
한국에서 바둑 공부를 한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하는 '친한파'가 됩니다.
한국사람들에게 우호적이 되고 한국 물건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죠.
바둑을 통해 서양의 지식인들을 '친한파'로 갖게 된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분명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적지 않은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바둑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또한 서양의 각종 바둑 행사에 프로기사를 파견하고, 각 지역에 아마 강자를 보내는 등의 일을 합니다. 이런 저런 일에 드는 비용도 아끼지 않는 편이죠.
그에 비해 한국은 뜻있는 몇 분이 개인적으로 추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지원이 없는 편입니다.
지금 세계에서는 한국이 세계최강이라고 인식하며 한국 바둑계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가간다면 언제든 환영해 줄 분위기죠.
하지만 우리에게 세계최강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없다면 이 일은 훨씬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번 도요타 덴소배의 결과를 보며, 우리가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힘과 효과를,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활용해 보지도 못하고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여러번의 경제 위기와, 악재들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제가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여러분 모두 아실 것입니다.
바둑은 물론 모든 나쁜 일들을 한꺼번에 뒤집을만한 큰 무기는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순서인 것처럼,
우리의 바둑을 잘 활용한다면 작은 힘으로부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요타 덴소배의 결과를 보며 허망한 마음에 쓰다 보니 글이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그녀의 달콤한 바둑레슨 2부' 로 다시 찾아뵙기 위해 이만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