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마을 담쟁이 덩굴 

동네 돌담길 담쟁이 덩굴을 보는 순간 머리에 꽃이 핀다
언제부터 생겼을까
담벼락을 완전히 삼켜버린 덩굴은 얼핏 지난 세월의 시행착오라든가
부끄러움의 얼룩을 위장시켜주기 위해 돌담 사이에 박혀 있는지도,
혹시 내 말이 맞다면 도피자들은 머릴 끄덕이며 술을 마실 것이다

덩굴은 어둠 속에서 더 자유롭지만 백주 대낮에도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숨길 수 있다 나의, 혹은 내 애인의 발걸음이
그앞에 멈추어서도 모른척 시치미를 떼며 팔만 벌린다
아무도 보지 못했겠지만, 비바람이 불어닥치면 벽에 기대어 운다

언젠가 덩굴 속으로 사라진 한 사내와 한 여인의 속곳이
돌담에 걸려 있었다면 전설에 가까울까?
담쟁이 덩굴은 이런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붙여준다
지금 마악 손짓 하며 나를, 너를 부르고 있다

- 그대여, 옷을 홀라당 벗고 내게로 오시게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입을 꼭 다물고 끌려들어갈 수 밖에,
부드러운 것은 단단한 것을 껴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겠다
방금 돌담 속에서 청아한 웃음소리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