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를 버리며


어느 날엔 늘 다니던 길도 낯설다 흐트러짐 없이 바로 걷는 길섶, 바람소리에도 깜빡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변함 없는 그대를 다시 쓴다 한결같이 가질 수 없는 사랑으로 기억된 그대, 흠집 없도록 이제 조금씩 꺼내 길가에 버린다 앙상한 가지 밑 썩어가는 낙엽더미, 혹은 쓸쓸한 공원벤치, 눈 흩뿌리듯 그대가 버려진다 길 끝, 우연히 그대를 마주하면 문득 발길에 채이듯 모든 것 낯설고 그 낯설음에 긁힌 마음, 설사 어제 보았던 얼굴이라 해도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인 것 마냥 다시 첫사랑에 가슴이 아릴 것만 같다 그댈 사랑하는 내가 더욱 버려진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