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접었다 폈다 접었다 폈다 겹쳐지는 틈새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왼손을 베이스 위쪽에서 빠르게 움직여 바이브레이션을 넣으면 제라늄 화분이 미소를 짓고 하얀 주름치마 같은 건반에서 나비가 튀어나와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잠 속에서 푸른 그네를 탄다 밤 늦게 화장을 지우는 얼굴 하나가 낯 익다 세숫대야에 물을 찰랑찰랑 채워 물거울을 본다 이내 그리워지다가 흐려진다 비누처럼 미끈거리는 건반이 조용히 읊조리는 독백에서 실타래가 삭아터지듯 폐허로 끝난다 잠을 깨니 늙은 바람이 불고 헬리콥터가 부르르 떨며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뜻밖에 쿠바나 아르헨티나로 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