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미(交尾)에 대한 기억


저리 시퍼런 파밭이 오뉴월 땡볕에 흥건히 젖어있다니
아랫도리 물컹대며 비지땀으로 뿌리내리고 있다니,
놀라워라
 
적막한 세상 한 낮의 적요 온몸으로 버팅기고 있으니
누가 빛나는 안경알 닦으며 흙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거대한 암호를 풀고 나서 노곤한 책장을 덮듯
푸른빛이 잠깐 누렇게 변할 쯤,
 
연어 떼는 파밭머리에서 여울을 만들며
어김없는 시간이라는 매운 술 한 독 다 마시고
 
긴 여행에 돌아와 마지막 몸을 푼다
 
돌아가는 길모퉁이, 쪼그려 앉아
담배 한 개비 거의 타들 무렵
파밭 고랑에는 잡초가 더욱 싱싱하게 꿈꾸는 세상
 
절정에 눈이 쓰려 제 눈 스르르 감으며
대궁끼리 몸 기대어 서로 일으켜 세우며
더러 무게에 겨워 비스듬히 한 팔을 꺾어 땅에 기댄 채
매운 파 한 쪽이 아린 맛을 내는
 
쓰린 눈물로 살아내야 하는
흙 속 자궁의 암호
싱싱한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를
제 몸 속 어디엔가 키우고 있는 까닭도,
살아내는 저 눈물겨움도 모두
놀라워라
 
시퍼런 파밭에 여울지는 연어 떼
 
그 아우성과 아린 몸속에 저런 용광로가 있다니,
 
쇳물을 부으며 무기가 되고 때로 도구가 되는
절정은 언제나 쇠는 쇠 끼리 배를 맞대고 두들기며
뜨겁게 달구어진다 힘차게 여울에서 죽는다
 
여울에서 빛나는 연어 떼
뜨거운 파밭을 쪼으며
잡초와 더불어 돌아가는
독한 파의 본성을 지키고자 하는 저 길
언제나 기억 속은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