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습니다.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살아가는 꿈이었습니다.
한쪽 발목에 금빛으로 빛나는 가락지 같은 것을 차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훈련한 끝에 누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는 표식이었죠.
다른 새들의 우러러보는 눈길을 느꼈습니다.
권위 있는 새, 나이 많은 새 혹은 모아 놓은 재산이 많은 새도 제게 존경을 표하며 저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습니다.
사실, 그 표식 외에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저 훈련에만 매달리느라 다른 것을 챙길 여력이 없었겠지요.
그런데 그 표식이라는 것이, 참 무겁더군요.
새라면 마땅히 푸른 창공을 누비는 자유를 누리기 마련인데, 저의 그 표식은 그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특권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한번은 그 번거로움에 질려 표식을 떼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한사코 말리더군요.
누구나 하는 비행을 위해 저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그 표식을 희생시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표식을 떼는 순간 모든 걸 잃을 것입니다.
저를 빛나게 해주었던 특별함을 잃을 것입니다.
비행 실력은 물론 어린 새들과 견주어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저 동경하고 있을 뿐이죠.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표식을 떼어내겠다던 용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았습니다.
많은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그 금빛 가락지를 받을 정도의 실력이 되기를 꿈꾼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노래를 즐기며 스스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씩 연습을 하며 실력향상의 짜릿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아,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순수한 마음에 노래를 부르고 싶다가도 주변에 있는 다른 새들의 눈길을 인식하는 순간 그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저의 표식을 보며,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띄는 것이었습니다.
저만큼 훈련한 적이 없는 많은 새들에게 평가 받는 기분이 싫었습니다.
제 노래가 혹시 다른 새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저의 빛이 퇴색될까 두려웠습니다.
분명 전 노래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고, 그 표식을 받고자 하는 강한 열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노래도 부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표식이 제게 제공하는 많은 편의들 – 다른 새들의 존경과 대접, 사회적인 위치 – 을 즐기는 것만이 저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노래도 부르지 않고,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새가 되는 꿈을.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도 저의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이 기분은 왜일까요?